“동학은 K-철학…130년 전 독자적 근대화 추구”

정대하 기자 2024. 4. 19. 17: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성환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교수
해월 최시형 선생. 한겨레 자료 사진

“‘서양의 길과 완전히 다르게 가야 한다’는 게 ‘척사파’고, ‘어쨌든 서양을 배워야 한다’는 게 ‘개화파’다. 동학은 중간 입장이다. 동학이 말한 ‘개벽’은 요즘으로 말하면 좌우가 아닌 ‘제3지대론’이다.”

조성환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조교수는 18일 오후 광주 비움박물관에서 사단법인 참배움터 주최로 열린 실개천 인문학 강연에서 ‘난세의 철학, 일상의 성화’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동학혁명 130주기를 맞아 수운 최제우(1824~64) 선생의 창도 배경과 해월 최시형(1827~1898) 선생의 전파 등을 설명했다. 조 교수의 강의를 문답으로 정리한다.

-동학 창도의 배경이 궁금하다.

“동학은 1860년 수운 최제우 선생이 창도했다. 중국에서 아편전쟁이 일어나 민심이 불안했던 시기다. 서양이 매우 막강하다는 소문이 도니까 중국이 멸망하면 ‘순망치한’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다. 선생은 ‘이들은 도는 서도(西道)라 하고, 학문은 천주(天主)라 부르고, 가르침은 성교(聖敎)라 한다’고 했다. 서양의 무력에 대한 경계심이 있으면서도 우리의 유교나 불교하고 비슷한 철학으로 긍정적이고 호의적으로 봤던 측면도 있다.”

수운 최제우 선생. 한겨레 자료 사진

-최제우 선생의 신비체험은 어떻게 전해지나?

“영화 ‘파묘’를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느낌이다. 무당들은 접신하는 경험을 한다. 기독교를 믿는 분들은 미신이라고 할 수 있고, 유학자들이나 무신론자들도 이걸 못 받아들일 수 있다. 갑자기 신령한 기운을 접하고 무슨 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는 실체와 대화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

-하늘님과의 대화, 천사문답(天師問答)을 말하는 것인가.

“최제우 선생은 그러면서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吾心卽汝心)’라고 하는데, ‘사람의 마음과 하늘님의 마음이 똑같다’는 뜻으로 배웠다. 기독교와 달리 동학의 하늘님은 조금 나약해 보이고 불완전해 보인다. 그래서 ‘내가 네가 필요해’라고 하는 협력관계라는 게 재미있다. ‘내 안에 하늘이 들어있다’는 게 최제우의 새로운 인간관이었다.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충격적이다. 그리고 ‘내 마음이 너의 마음이다’는 말을 ‘우리 모두의 마음이 하느님 마음이다’라고 일반화한 게 위대한 점이다.”

-최제우는 실제로 노비를 해방했다.

“당시 계급 사회에서 ‘누구나 다 자기 안에 하늘님을 모시고 있다’고 하니까 상황이 많이 달라지는 거다. 여기서부터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최제우 선생은 동학을 깨우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게 여자 노비 2명을 해방하고 며느리와 수양딸로 삼은 것이다. 세계 역사상 드문 사례다. 그래서 통치 계급의 입장에서 매우 위험천만하다고 본 것이다.”

조성환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조교수. 정대하 기자

-동학은 척사파나 개화파와 결이 달랐나?

“사람들이 ‘서도와 무엇이 다릅니까?’라고 묻는다. 대답이 의미심장하다. ‘완전히 다르지도 않고 완전히 같지도 않다.’ 이것이 동학의 스탠스다. ‘완전히 다르다’고 하면 ‘척사파’고, ‘완전히 같다는 건 아니고 어쨌든 서양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개화파’잖나. 동학은 중간 입장 같다. 개벽은 요즘으로 말하면 좌우가 아닌 제3지대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동학은 서학과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가?

“서학과 같은 천도다. 도(道)의 측면에서는 똑같은 천도(天道)인데, 학(學)은 동학과 서학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도는 신념 체계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왜 동학이냐면 동(東)에서 태어나 동의 하늘님으로부터 도를 받았으니까 동학이라고 한 것이다. 동방이라는 말은 신라 시대에 최치원이 처음 썼다. 그래서 동학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한국학이고, 케이 철학이다.”

18일 오후 광주 비움박물관에서 열린 인문학 강좌에서 조성환 교수가 동학 강의를 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동학은 지역화 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당시 불교나 유교가 작동을 안 했던 거다. 서양 것을 가져오려고 했더니 무기를 앞세워 폭력적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동학은 유학과는 다른 질서를 꿈꿨지만, 조선 시대 유학이라는 찬란한 문화 전통이 있어서 새로운 학을 만들 수 있었다. 선생은 공자는 중국 사람이고, 나는 여기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자랐으니 여기 학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지역화 운동이다. 발을 딛고 서 있는 여기를 중심으로 보고 학문을 시작한 것이다.”

-제자 해월 최시형 선생이 30년 넘게 동학을 전파했다.

“최제우는 4년밖에 활동을 못 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제자 최시형(1827~1898)이 ‘우리 안에 모두 하느님이 있습니다’라는 말에서 주어를 만물로까지 확장을 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생태 철학이라고 할 수가 있다.”

-스승의 사상 개념을 더 확장한 셈이다.

“공경한다는 개념도 사람을 공경하는 것도 괜찮고 마지막에 하늘까지 공경해야 도덕이 완성이라고 했다. 도덕도 확장한다. 그전에는 모든 초점이 인간에게 있었다. 유학에선 인간만 똑바로 잘하면 이 세계는 태평한 상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만물까지 도덕이 완성돼야 오히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다고 본 거다.”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군을 표현한 전북 정읍시 덕천면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안에 있는 ‘불멸-바람길’ 작품.영호도회소기념사업회 제공

-최시형 선생의 생각도 서양 철학과 결이 다르다.

“보통 유학이나 서양 철학은 인간과 인간 이외의 존재의 차이점에 초점을 맞춰서 인간이 똑똑한 성을 잘 발달시켜야 인간답다고 한다. 그런데 최시형은 정반대로 간 거다.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는 행위에 초점을 맞춰 철학을 붙였다. 제가 물을 마시는 것은 하늘이 하늘을 먹는 것, 하늘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거다.”

-최시형 선생은 제사도 자기를 향해 상을 차리라고 했다.

“1890년대 사람인데 제사를 차릴 때도 나를 향해 상을 놓으라는 ‘향아설’을 말한다. 최제우 선생이 ‘내 안에 하늘님이 있다’고 하셨잖나. 내가 신이 되는 거다. 그럼 제사를 받아야 할 대상도 내가 되는 거다. 내 안에 하늘이 있으니 세 끼 먹는 식사가 공양(제사)이 된다는 게 최시형 선생의 논리였다. 일상생활을 다 성스럽게 하려고 했던 게 동학이다. 김지하 시인은 이를 일상의 성화라는 말로 표현하신 거다.”

-130년 전 동학은 어떤 방식의 근대화를 추구했나?

“전 세계적으로 유럽 근대문명만 빼놓고 ‘파괴’라는 게 이른바 근대화 과정이었고, 일본은 그게 목적이었다. 동학식의 근대를 추구하는 게 전 맞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일본식의 근대를 추구했으면,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식민지 지배를 하라는 얘기잖나. 그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 동학꾼들은 후대들에 ‘절대 저런 길로는 가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근대화 지향이 달랐던 셈이다.

“어떤 학자는 ‘토착적 근대’라고 하는데, 우리의 전통적인 사상을 현대화해 만든 사상으로 저항했던 것이 동학이다. 그런 문화적 저력이나 창조성은 그 당시 중국이나 일본은 갖질 못했다. 일본은 서양을 수용하는 데 바빴고, 중국은 전통이 워낙 강했다. 우리는 동학이 장일순·김지하 선생 등이 현대화를 해 지금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