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페미니즘에 "싫어" 말 못하는 사회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4. 19. 16: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자로 살다가 性전환후
女격투기대회 참가 비판땐
혐오자되는 세태 불만 제기
동성애 인권·페미니즘 등
무조건 수용 강요는 '위협'
진보·보수서 극단의 평가
게티이미지뱅크

이 책은 첫 문장부터 도발적이다. "거대한 군중의 정신 착란을 살펴볼 것이다." 신간 '군중의 광기'의 저자 더글러스 머리가 말하는 '정신 착란'이란, 답을 찾지 못한 질문에 대해 사람들이 너무 빨리 해법에 도달해버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가 질타하는 주제는, 놀랍게도 동성애 인권과 페미니즘이다. 잘못 읽으면 동성애와 페미니즘을 광기로 표현했다고 오독할 수 있으므로 그 위험성부터 일단 구분하며 읽어야 한다. 그래서 그만큼 논쟁적이다.

책의 주장은 이렇다. 저자에 따르면, 21세기는 '거대 서사'가 무너진 시대다. 사람들은 공동체를 지켜온 거대 서사의 힘을 몽땅 의심하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기존의 중심과 변방의 역전을 가속화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소위 '변두리'에 자리했단 사고들이 하나의 신념으로 옷을 바꿔 입었고, 그 뒤 세상 무대의 전면에 섰다. 젠더, 인종, 정체성과 관련된 '급진적인'(이 표현 역시 논쟁적이다) 생각들이 인정받고 동조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책은 질문한다. '그것은 사회적 합의인가, 아니면 사회적 강요인가?' 더 빠르게 평등한 사회에 이르기 위해, 더 강하게 개선하기 위해 사람들은 불의를 정의로 바꾸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회 정의에 의문을 제기하면 '사회 불의를 원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돌아오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 결과, 세상은 평평해지고 있다. 이것이 정의일까. 더 깊이 들어가보자.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동성애자의 평등을 위한 싸움은 종결됐다고 저자는 본다. '성적 지향이 차별을 잉태해선 안 된다'는 인간 존엄의 가치는 이 전쟁에서 승리해 과거의 불의를 뒤엎었다. 그런데 쟁투는 도대체 끝나지 않는다. '동성 결혼'에 동의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된다. 관습에서 이탈하면서도 낙오되지 않으려면 깊은 감수성이 필요한데 그 과정이 생략된 채 강요당한다는 게 저자의 불만이다. 책은 쓴다. "운동은, 그저 빠르게 바뀌는 데 만족한 듯하다. 이제 그들도 과거 적들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군중의 광기 더글러스 머리 지음, 유강은 옮김 열린책들 펴냄, 2만8000원

페미니즘은 어떤가. 근래 약 30년간 여성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여전히 세상은 차별적이고 더 바뀌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어제까지 여성과 남성들이 보았던 모든 것이 '신기루'에 불과했고,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모두 근거 없는 지식이라고 말하는 것이 합당한가"란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어제만 해도 거의 논란이 없던 일이, 오늘 갑자기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는 것의 정당성'을 책은 묻는 것이다.

팰런 폭스라는 트랜스젠더를 저자는 깊이 들여다본다. 폭스는 '남자'로 태어난 해군이었고,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러던 그는 2013년 트랜스젠더로 스스로 커밍아웃했다. 그건 본인의 선택이며 타인의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논란은, 폭스가 종합격투기선수(MMA)의 '여자 선수'로 링에 오른 뒤 불거졌다.

'남자'로 살면서 그가 축적했던 골밀도와 근육량은 투약이나 수술로 사라지기 어렵다. 그런데 폭스가 링 위에서 여자 선수를 '때려눕히며 승리하는' 일은 과연 합당할까.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폭스의 MMA 진출에 의문을 제기한 비판자는 즉시 '트랜스 혐오자'가 된다. 혐오자의 낙인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밝힌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끄덕여야만 한다는 것.

"합의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의 본질은 실제로 합의될 수 없는 것이다. 각각의 문제는 현재 우리 사회가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더 무한정 복잡하고 불안정하다. 이 문제들을 새로운 도덕과 형이상학의 주춧돌로 모아 놓으면 광기의 토대가 된다. 우리는 각각에 대해 합의를 이루고 해결을 했다고 말하지만, 각각의 내부에서 끝없는 모순과 조작과 환상이 빤히 보인다."

책 제목이 '군중의 광기'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 책이 혐오의 감정을 확대 재생산하려는 것이 아님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나마 간파된다. 인종, 성별, 성적 지향으로 인해 한 인간의 능력과 열망이 가로막혀선 안 된다고 저자는 쓴다.

다만 저자는, 주장을 강요하고 그것을 불수용하면 혐오자의 딱지를 붙이는 건 '위협'이라고 정면으로 들이댄다. 저 위협에 굴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공주옷을 좋아하는 남아를 트랜스 섹슈얼 대기자로, 톰보이 같은 특징을 드러낸 젊은 여성을 수술 전의 트랜스 섹슈얼로 여겨서도 안 된다고 일갈한다.

외신에 따르면 이 책 '군중의 광기'는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 중이다. "좌파 현대주의 신앙의 과잉을 폭로하는 뛰어난 통찰력"이란 호평과 "눈이 먼 우익 선동가의 환상"이란 악평이 서로를 찌른다. 심지어 추천사를 조던 피터슨이 썼다. 한국에서도 논란이 불가피한 책, 그래서 더 꼭꼭 씹어 읽어봐야 할 책이다. 원제 'The Madness of Crowds'.

[김유태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