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GP 파괴 현장검증, 카이샷으로 생중계했다[박성진의 국방 B컷](5)

2024. 4. 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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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2일 강원 철원 중부전선에서 남북 시범 철수 GP 상호검증에 나선 남측 검증단이 북측 GP를 검증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진실의 문이 열릴 것.”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지난 1월 16일 KBS 라디오 <뉴스레터K>에 출연해서 한 발언이다. 신 장관은 “북한의 GP(최전방 감시초소) 복원 동향과 속도를 볼 때 지하시설은 그대로 존속할 가능성이 대단히 큰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머지않아 진실의 문은 열릴 것이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 장관이 언급한 진실의 문은 남북 GP 철거 이후에 북측의 지하갱도 등 파괴 여부를 철저히 확인했다고 한 국방부 발표 내용이 사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다. 이와 관련해 GP ‘진실의 문’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군사장비가 있다. 바로 ‘카이샷’이다.

카이샷은 헬멧 장착형 무선 영상송수신 장비다. 청해부대 소속 해군 특수전여단(UDT) 대원들이 2009년 2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작전(아덴만 여명작전)을 하면서 착용해 널리 알려졌다. 당시 카이샷 영상은 최영함에 있던 청해부대원과 서울 합동참모본부,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계룡대 해군본부, 진해 특수전여단 등으로 실시간 전송됐다. 이들 부대 지휘관들은 카이샷이 전송하는 화면을 손에 땀을 쥐며 지켜봤다.

이후 카이샷은 군 특수작전부대와 경찰 대테러부대 등이 주요 작전 시 사용하는 장비가 됐다. 도청이나 감청을 막기 위해 카이샷용 주파수는 군사 Ⅲ급 비밀로 지정되기도 했다.

일부서 “부실 검증 후 거짓 발표” 주장

군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른 북 GP 파괴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카이샷을 동원했다. 남북은 비무장지대(DMZ) 내 GP 각각 10개씩을 파괴하고, 1개씩은 원형을 보존하면서 병력과 장비를 철수시킨 뒤 2018년 12월 12일 상호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남북이 철수시킨 DMZ 안 상호 GP 거리는 580~1060m로 직사화기 사정권이어서 언제든지 우발적 군사충돌이 일어날 수 있었다.

당시 남측 지휘부는 검증단의 북측 GP 파괴현장에 대한 조사과정을 지켜보고자 했다. 그러나 휴대전화는 DMZ 북측 지역으로 가면 불통이 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장비가 카이샷이다. 남북 간 협상 과정에서도 현장 협상 실무팀이 각각 상부와 실시간으로 연락을 취하는 게 통상적 관례다. 군 당국은 북 GP 파괴 검증 현장에 카이샷을 투입했다. 청와대와 합동참모본부 등 상부 유관부서 관계자들은 검증단이 카이샷으로 보내온 영상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검증단은 파괴된 GP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입수하려 했다. 군 당국은 북한군 GP 1개당 7명씩 총 77명으로 검증단을 구성해 현장조사를 했고, “북 GP가 감시초소의 임무 수행이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됐다”고 발표했다. 당시 서욱 합참 작전본부장은 언론 브리핑을 통해 “북 GP 지상시설인 전투시설과 병영막사, 유류고, 탄약고 등 지원시설은 폭파방식 등을 통해 완전히 파괴한 후 흙으로 복토되거나 건물 흔적을 제거하고 정리된 상태였다”라면서 “지하시설은 출입구 부분과 감시소, 총안구(화점) 연결 부위가 폭파되거나 매몰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방부와 합참은 11개 검증반의 GP별 현장검증 결과를 토대로 통합 평가 분석회의와 전문가 토의 등을 한 뒤 그 결과를 발표했다.

정권이 바뀐 뒤 검증팀이 부실한 검증을 해놓고도 북 GP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거짓 발표를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북한이 ‘9·19 군사합의’ 파기 이후 지난해 11월 기존에 파괴했던 GP 상단에 목재로 된 감시소(경계초소)를 만드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 계기가 됐다. 보수층 일각에서는 북한이 빠른 속도로 파괴 GP 복원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지하시설이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신 장관도 올해 초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북한은 위에 보이는 감시소만 파괴하고 나머지 지하시설은 손을 안 댄 것으로 보인다”면서 “수리하면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정밀 검증 한계…감사원 조사 끝난 듯

전직 군 장성모임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은 지난 1월 문재인 정부가 북 GP의 지하 갱도 시설이 불능화되지 않았음에도 ‘북 GP는 완전히 파괴됐으며 군사시설로 활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왜곡된 내용을 발표한 것으로 의심된다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이후 감사원은 지난 3월 18일 특별조사국을 내세워 국방부를 포함한 관련 부서를 대상으로 북한 GP 파괴 부실검증 의혹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 특별조사국은 주로 전 정권 관련한 의혹 감사에 투입됐던 부서다.

당시 검증과정에서는 파괴된 북 GP가 국방정보본부가 파악하고 있던 정보와는 달리 완전히 지하요새화된 시설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북한군 유류고는 물론 숙소와 취사장까지 포함한 대부분 시설이 감시탑 수 미터 아래 지하에 있는 것처럼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지상에 위치했다. 군 정보당국의 일부 과장되거나 잘못된 정보 파악 능력은 논란이 됐다. 심지어 일부 위치 정보에서도 오류가 있었다는 말이 새 나왔다.

북한군은 ‘민경초소’라고 부르는 GP를 남측의 철책을 지키는 GOP(일반전초)와 유사하게 운용하고 있다. 남측 GP가 DMZ 안의 섬처럼 운용된다면, 북측 GP는 고도가 높은 산악지대 일부를 제외하고는 북측 철책선을 잇는 초소 역할을 한다. 남측 감시와 함께 주민들의 탈북 감시가 주요 임무다. 초소 뒤편에서는 병사들이 영농작업을 하는 모습도 관측된다. 모자라는 식량을 자급자족하기 위해서다. 북한군이 일부 GP는 지하 요새화해 운용할 수 있겠지만, 모든 GP를 지하 요새로 만들지는 않았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문제는 정밀 검증의 한계였다. 북 GP 파괴 현장 검증 당시 잔해를 일일이 파헤쳐가면서 확인하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었다. 이와 관련해 검증단이 가지고 갔던 지표 투과 레이더(GPR)나 내시경 장비 등의 관측 장비로 지하시설 파괴 여부를 확인했는지도 감사원의 감사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증단은 또 파괴된 GP 5곳에서 100~200m 떨어진 지점의 총안구를 식별했는데 북측은 이것이 지뢰지대 안의 사용하지 않는 총안구나 인접 GP의 총안구 등이라고 주장했다.

북 GP 파괴 검증과 관련해서 분석 문건은 물론 카이샷 영상 자료까지 보존된 만큼 감사원의 당시 상황 파악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검증단원들은 군내 최고 에이스 요원들과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됐던 만큼 검증 보고서 내용은 정확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검증단 보고서가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의 공식 발표에 어느 수준으로 반영됐는지가 주목된다. 철근 콘크리트로 완전 요새화된 남측 GP와 달리 북측이 파괴한 GP는 애초부터 남측보다 원상복구가 그리 어렵지 않은 구조라는 점도 변수다. 또 북측이 감시탑 등 지상시설로만 먼저 GP를 재가동했을 개연성도 있다. 감사원은 검증단의 보고서를 처리한 국방부와 합참, GP 철수 및 검증 상황에 대한 평가·점검을 총괄했던 청와대 국가안보실 등을 대상으로 실체적 조사를 사실상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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