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증원 비과학적이란 뜻"…의사들, '증원 자율 조정' 맹폭

정심교 기자, 박정렬 기자 2024. 4. 1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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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를 일부 조정할 수 있게 하자는 국립대학교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하기로 결정한 19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과대 학생들이 이동하고 있다.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의대 증원 관련 특별 브리핑을 열고 “대학별 교육 여건을 고려해 올해 의대 정원이 확대된 32개 대학 중 희망하는 경우 증원된 인원의 50~100% 범위 안에서 2025학년도에 한해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라고 밝혔다. 2024.4.1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 /사진=(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정부가 19일 대학별 배정된 의대생 증원분의 50~100%를 각 대학이 교육 여건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조정하도록 허용하기로 한 데 대해 의대 교수들 사이에서 "의아하다" "2000명 증원안이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간 의대 교수들은 대학 총장들에게 '의대 증원 신청을 보류해달라' '행정소송의 원고로 나서달라'고 요청한 데 대해 총장들이 줄곧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다. 이번에 '2000명 증원안'에 대해 정부와 대학 총장이 갑작스레 유연한 입장으로 돌아선 데 대해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게 의대 교수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앞서 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충남대·충북대·제주대 등 6개 거점 국립대 총장들은 전날 대학별로 의대 증원분의 50~100%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2025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건의문을 교육부에 보냈다. 의대생의 집단 휴학으로 대규모 유급이 현실화할 경우 내년도 강의 진행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찬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은 19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이번에 교육부에 건의문을 보낸 국립대 대부분이 지난달 초 '150~200명씩 증원해달라'고 신청했던 대학 총장들"이라며 "불과 한 달여 지나, 그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았을 텐데 그사이에 어떤 상황이 변화해 이번에 줄이겠다고 입장을 바꾼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의대협 소속 40개 의대 각 학장은 지난달 4일, 각 대학 총장에게 "의대 증원 신청을 보류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바 있다. 사회적 갈등이 수습되기 전까지 증원 신청을 유보해달라는 게 해당 공문의 취지였다. 그땐 공문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던 총장들이 '노선'을 바꾼 데 대해 의대 교수들은 의아해한다는 것이다. 신 이사장은 "교육부에 보냈다는 건의문 어디를 봐도 왜 그런 제안(의대 증원 규모 자율 조정)을 했는지 이유가 없다"며 "개강 연기, 수업 거부 등은 3월부터 있었다. 점입가경이다.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다"라고도 했다.

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은 "(큰 폭의 증원 시) 교육여건이 안 된다고 의대 교수, 의대 학장이 총장에게 계속 얘기해도 총장들은 정원만 받아두자며 독단적으로 신청했다"면서 "이제 줄인다니,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꼬집었다.

정부의 대학 총장들의 이번 결정에 대해 의대증원 반대 측 소송대리인인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는 "총장들과 정부의 태도가 갑자기 바뀐 이유는, 전국 32개 지방의대생 1만3000여 명이 32명 대학 총장들을 상대로 32개 지방법원에 시행계획(입시요강) 증원변경 금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형사고소 고발(수험생과 의대생에 대한 업무방해죄, 사기죄 등), 수백억대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할 것이라고 내용증명을 발송하자, 대학 총장들과 정부가 겁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의대생들은 예고한 대로 오는 22일 강원대·제주대·충북대 등 지방의대 10곳에 가처분 소송을 접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 허경 기자 = 한덕수 국무총리가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대증원 관련 특별 브리핑에서 거점국립대 총장 건의에 대한 정부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24.4.1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허경 기자

의대 교수들은 정부가 이번 건의문을 받아들인 데 대해 2000명 증원이 비과학적이란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신찬수 의대협 이사장은 "이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려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과학적이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라고 날을 세웠다. 빅5 병원의 흉부외과 A 교수도 "과학적 근거 없이 조정한다니, 정부와 총장의 합작품인 '2000명 증원'이 비과학적인 정책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전면 백지화와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를 통한 증·감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범석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 공보 담당(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교수)도 "의사들의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 요구는 정부가 이번에 조정안을 발표했어도 마찬가지다. 지금 숫자 조정은 의미 없다"고 했다.

자율적으로 조정하겠다는 규모인 50~100%가 주먹구구식이란 비판도 나왔다. 신찬수 KAMC 이사장은 "대학마다 증원 규모에 대해 서로 눈치 볼 것"이라고 우려했다. 증원분 조정을 일괄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논란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논란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한 '원점 재검토'를 주장해온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의 이번 결정이 원점 재검토의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도 저울질하고 있다. 김성근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정부의 의대 증원안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는지 보여준다. 정원을 조정한다고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원점 재검토가 맞는다는 점에 힘이 실린다"고 언급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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