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에 ‘말 없는 SOS’ 365번…“살고 싶다” 지적장애인 극적 구조

고경주 기자 2024. 4. 1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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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살고 싶어."

모친의 방임으로 인한 영양 결핍 등으로 생명이 위험했던 40대 지적장애인이 하루에 수십 통씩 112에 전화를 건 끝에 구조됐다.

경찰의 설명을 들어보면, 정신지체 1급으로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ㄱ씨는 최근 어머니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등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아 평소 다니던 장애인 주간 보호시설 등에 갈 수 없게 되자 경찰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집 안에는 라면, 과자 등 인스턴트 음식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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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방임에 지적장애인 영양결핍 등 건강 위험
3차례 방문한 경찰, 모친은 ‘별 일 없다’ 대화 거부
모친 외출 틈타 탈출…수색 끝 구조해 보호시설로
게티이미지뱅크

“엄마, 나 살고 싶어….”

모친의 방임으로 인한 영양 결핍 등으로 생명이 위험했던 40대 지적장애인이 하루에 수십 통씩 112에 전화를 건 끝에 구조됐다.

19일 제주 동부경찰서는 지난 2월 한 달 동안 365번에 걸쳐 112에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끊기를 반복했던 지적장애인 ㄱ(40)씨를 구조해 보호시설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설명을 들어보면, 정신지체 1급으로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ㄱ씨는 최근 어머니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등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아 평소 다니던 장애인 주간 보호시설 등에 갈 수 없게 되자 경찰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ㄱ씨는 말없이 전화를 끊거나 말을 하더라도 경찰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ㄱ씨의 신고가 계속되자 관할 파출소에서 ㄱ씨의 집으로 2~3차례 출동했지만 그때마다 ㄱ씨의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다’며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후에도 ㄱ씨의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오자 대처 방안을 고민하던 관할 파출소는 동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과로 지원을 요청했다. 2월28일 경찰과 관련 보호시설 등 6개 기관이 모여 긴급사례회의를 열었고 다음 날인 29일부터 3월4일까지 경찰과 관계 기관 담당자들이 세 차례에 걸쳐 ㄱ씨의 집을 함께 찾았다.

경찰의 도움으로 구조된 지적장애인 ㄱ(40)씨가 병원에서 긴급 수혈을 받고 있다. 제주동부경찰서 제공

이번에도 ㄱ씨의 어머니는 “ㄱ씨 얼굴만 확인하고 돌아가겠다”는 경찰의 설득에도 대화를 거부하며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경찰이 우유 투입구를 열어 확인해 보니 집 안에는 먹다 남은 컵라면 등 쓰레기가 방치돼 있었다. 결국 3월4일 경찰은 문을 강제 개방했다. 역시나 집 안에는 라면, 과자 등 인스턴트 음식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문제는 ㄱ씨가 집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알고보니 경찰이 방문해도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답답했던 ㄱ씨가 어머니가 잠깐 외출한 틈을 타 집을 나선 것이다.

경찰의 도움으로 구조된 지적장애인 ㄱ씨(왼쪽)는 건강을 회복하고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제주동부경찰서 제공

이 사실을 파악한 경찰은 곧바로 수색에 나섰고, 수색 하루 만인 5일 제주공항 인근 쓰레기통을 뒤지며 거리를 배회하는 ㄱ씨를 발견했다. ㄱ씨는 집을 나간 뒤 5일 동안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구걸을 해 배를 채운 것으로 확인됐다. 집에서도 과자나 라면 등으로만 식사를 해온 ㄱ씨는 키가 175㎝인데 몸무게가 45㎏에 불과했다. 병원 진료를 받아보니 ㄱ씨는 영양결핍에 따른 심각한 빈혈로 생명이 위험한 상태였다. 혈액암도 의심되는데다 탈장으로 인한 수술도 필요했다.

ㄱ씨의 집 안에 쌓여있던 쓰레기들. 대부분이 컵라면, 과자 등 인스턴트 식품이다. 제주동부경찰서 제공

응급치료를 위해 ㄱ씨 어머니의 동의를 받고자 했으나 계속해서 치료 동의를 거부했고 결국 지자체에서 그동안 연락이 끊겼던 ㄱ씨 아버지의 연락처를 확보해 동의를 받고 치료를 진행했다.

현재 ㄱ씨는 긴급 수혈 등 응급치료를 받고, 탈장 수술도 마친 뒤 한 보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ㄱ씨는 살겠다는 의지를 갖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라며 “(병원 입원 중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엄마 나 살고 싶어’라는 말을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고 전했다.

ㄱ씨의 어머니가 ㄱ씨를 집에 가두려던 이유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ㄱ씨의 어머니도 컵라면 등 인스턴트 음식만 먹고, 방 안에서만 생활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정신이 불안정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 ㄱ씨의 어머니도 응급입원을 시키려 했지만 본인이 입원을 거부해 실패했다. 현재는 복지관 직원 등이 날마다 집에 들러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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