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맞아 물오른 버드나무 40그루 벤 뒤…5만평 모래톱 쑥대밭으로
전주의 자랑 버드나무 ‘학살’ 현장
이른 봄 냇가의 보송보송 버들개지(버드나무 꽃)들이 서둘러 흰색 털을 떨군다. 자세히 봐야 보이는 작고 노란, 수십 개의 꽃밥 무더기가 일제히 일어선다. 잔뜩 힘줬던 꽃밥이 터지면 짝을 찾아 바람을 탄다. 봄기운이 완연한 2024년 3월15일 전북 전주에는 그러나, 봄을 무색게 하는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가를 따라 버드나무숲이 우거지고 물억새숲이 자연스러운 하천 풍치를 이루던 우리나라 대표 생태하천인 전주천이 베어진 버드나무 수백 그루의 밑동만 휑뎅그렁하게 남은 척박한 땅으로 변한 것이다.
이 허망한 광경을 살피던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여기 좀 보라”며 밑동 하나를 끌어안았다. 한 아름이 훌쩍 넘는다. 대체 왜 이 아까운 거목들을 베었을까.
밑동에 물이 잔뜩 올라 불그스름한 채로…
“보름 전인 2월29일 새벽 6시30분 갑자기 (전주)시에서 버드나무 40그루 정도를 베어냈어요. 저희(전북환경운동연합)가 제보를 받고 달려온 게 오전 10시였죠.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였어요. 시가 작은 나무들을 야금야금 베기 시작하길래, 2월14일 (전주시 조례에 의한 협의·자문 기구인) 전주생태하천협의회에서 ‘버드나무를 그대로 두라’고 공식 의견을 냈어요. 작년(2023년) 3월에도 이미 아름드리 버드나무 260여 그루를 포함해 1천여 그루를 베어냈어요. 전주천 일대에 펼침막이 붙고 시민들 항의가 엄청났습니다. 담당 국장은 ‘많이 혼났다. 조심하겠다’고 했어요. 우범기 전주시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무차별 벌목은 없을 것’이라 했고요. 이렇게 야음을 틈타 또 공사를 벌여 남은 버드나무까지 전부 베어버릴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죠.” 이정현 공동대표가 말했다.
한옥마을 입구 쪽인 남천교 앞으로 가보니 줄지어 베어진 버드나무 밑동들이 하나같이 깨끗했다. 흔한 동공(나무 속 썩은 구멍)도 흠집도 하나 없는 튼튼한 나무라는 방증이다. 시민들이 ‘학살’이라고 반발하는 까닭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남은 밑동이 물이 잔뜩 올라 불그스름하다는 점이다. 씩씩하게 물을 빨아들여놓고도 보낼 곳을 잃고 어찌할 줄 몰라 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하천으로 내리뻗은 버드나무의 무성한 잔뿌리 속으로는 물고기들이 들락거렸다. 물가가 서식지인 버드나무는 땅 위로는 새의 집이 있고, 물 아래로는 다양한 곤충과 수서생물, 물고기가 집을 짓는다.
전주시는 무슨 명분으로 이 버드나무들을 벌목했을까. 김성수 전주시 하천관리과장은 “최근 치수 패러다임이 ‘환경(보호)보다는 인명·재산이 더 중요하다’로 바뀌었다”며 “나무는 비가 많이 오면 쓰러질 수 있어 제방 등 하천 시설을 손상할 수 있다. 벌목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버드나무와 홍수 위험성에 대한 아무런 근거 자료가 없는 점, 전주생태하천협의회를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벌목을 강행한 점에 대해서 김 과장은 “홍수 예방이 시급하기 때문”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는 버드나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충북 청주 오송 참사(2023년 7월)까지 거론하며 “홍수로 인명피해가 나면 다 저희 책임이 된다”고 항변했다.
남천교에서 동북쪽으로 전주천을 따라 6㎞가량 걸으면 삼천과 전주천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나온다. 이날 이곳엔 준설공사가 한창이었다. 굴착기가 모래톱을 파 뒤집고 덤프트럭이 먼지를 풀풀 날리며 모래를 나르고 있었다. 이 공사도 “홍수 피해 예방”이 목적이다. 2023년 1월부터 2024년 5월까지 두 하천을 따라 13㎞에 걸쳐 15만9611㎡의 모래톱을 없애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고수부지 위 안내판에 쓰인 ‘법정보호종 흰목물떼새가 사는 전주천’이라는 글귀가 무색했다. 강가 모래톱에 사는, 몸길이 20㎝가량 흰목물떼새는 과거엔 흔했지만 광범위한 준설공사로 서식지를 잃고 현재는 우리나라에 2천 마리(전세계 1만 마리)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이 됐다.
물고기는 알 붙일 곳 잃고, 꽃·열매 먹는 곤충은 어쩌나
이정현 공동대표는 말했다. “곧 물고기 산란철이에요. 이렇게 하천의 지형 자체를 바꿔버리는 준설을 하면 강바닥에 알 붙일 곳이 없어져요. 바닥을 긁어내니 먹이까지 빼앗기는 거죠. 버드나무도 베어냈으니 떨어진 버드나무 꽃·열매를 먹는 곤충과 수서생물들 먹이도 줄어들겠죠. 곤충과 수서생물은 물고기나 흰목물떼새 같은 새들이 먹고, 수달 같은 큰 동물이 그 물고기를 먹고 삽니다. 전주천의 생태계가 뒤흔들리는 거죠. 이걸 멸종위기종 서식지 보존 의무가 있는 시장이 사전조사·대책도 없이 거버넌스(의사결정 체계)를 무너뜨리면서까지 ‘일상적인 하천관리’라며 밀어붙인 거죠.”
전주시의 전주천 준설공사 및 벌목은 지방자치단체가 하천을 관리할 때 반드시 따르게 돼 있는 ‘하천기본계획’(전주천권역 하천기본계획, 2019년 12월 수립)과도 어긋난다. 이 계획을 보면 ‘대부분 구간이 홍수 소통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전 구간에 걸쳐 인위적인 하상절취계획은 지양하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하상변동 양상을 유지한다’는 점 등이 적혀 있다.
백경오 한경국립대 교수(토목안전환경공학)는 이렇게 말했다. “하천의 모든 공사는 하천기본계획을 따르게 돼 있어서 지금 전주시의 준설공사는 법 위반으로 보입니다. 일상적인 관리는 예외라지만, 하천 지형을 바꾸는 공사를 ‘일상적인 관리’로 보긴 어렵죠. 준설하고 싶었으면 기본계획을 바꾼 뒤에 했어야죠.”
그는 지적을 이어갔다. “버드나무 자르는 건 나무를 잘라서 홍수위(홍수 위험이 클 때의 수위)가 얼마나 줄어든다는 등의 과학적 근거, 구체적 숫자가 있어야 해요. 그게 없잖아요. 그리고 홍수를 예방하는 데는 제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전주천의 어은골 ‘쌍다리’는 홍수위보다 1.5m나 낮아요. 제방도 없습니다. 제방을 쌓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꾸준히 지적한 곳이에요. 쌍다리가 홍수에 휩쓸리면 나무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험합니다. 먼저 다리를 높이고 제방을 쌓진 않으면서 나무가 위험하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소리죠.”
이번 벌목·준설에 대해 시민사회는 우범기 시장이 재선을 위해 업적을 쌓으려고 무리하게 생태하천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본다. 우 시장은 2024년 2월6일 ‘전주천·삼천 명품하천 365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전주천변에 각종 문화·체육시설을 세우고 △갈수기에도 하류 쪽 물을 끌어올려 늘 물이 가득 차 있도록 채우고 △조명을 밝게 하는 등 현재의 자연식생을 없애야만 실행이 가능한 내용을 담고 있다.
팔순이 넘은 노교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국내 어류학 권위자인 김익수 전북대 명예교수(생명과학)가 말했다. “전주천 버드나무숲은 시민들이 쉬는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새들과 각종 무척추동물이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전주시는 ‘홍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증거도 없이 직감 같은 말만 할 뿐이죠. 이런 생태공간에 놀이공간·체험공간을 만들겠다는데 참….”
전주천은 1960∼1980년대 극심한 오염에 시달렸다. 1999년 전주시가 물을 막아 오리배를 띄우고 각종 편의시설을 조성하는 ‘전주천 공원화’가 발표됐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막아나섰고, 시도 전향적으로 나서 이미 설계까지 끝낸 사업을 폐기했다. 시는 2000년 ‘자연형 하천 조성사업’으로 급선회한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이 동참했다. 여울과 소를 만들고 물억새·갈대·갯버들 등을 심었다. 불과 3종밖에 살지 않던 전주천 어류가 20여 년 만에 30여 종으로 늘어났다. 쉬리·모래무지 등 1급수에만 사는 어류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수달·삵 같은 천연기념물까지 전주천으로 돌아왔다.
김 명예교수가 이어 말했다. “1975년 전북대에 부임해 전주천을 조사했어요. ‘이대로는 물고기가 아예 사라질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이제 ‘쉬리가 사는 도심하천, 전주천’이라고 시민들이 자랑스러워합니다. 정부도 오염된 하천을 복원한 대표 사례라며 각종 상을 주고 많은 지자체가 와서 배워 갑니다. 화장실이 없다, 조명시설이 없다는 불만은 늘 있었어요. 그래서 어렵게 어렵게 시민들에게 생태적 가치를 설명하고 설득하면서 곤충과 물고기를 위한 자연적인 조건을 지켜왔어요. 새 시장이 오면서 이렇게 반환경적·반생태적 공사를 밀어붙입니다. 20여 년 노력이 수포가 되는 것 같아요.”
복원사업 20여 년 만에 천연기념물 돌아왔는데…
이정현 공동대표도 말을 보탰다. “저 나무는 누가 심은 나무가 아니에요. 여울과 소를 만드니 토사가 덮이고 자연이 씨앗을 가져다가 바람·햇볕·비와 전주천이 키운 나무예요. 물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 나무들이 살아남아 시민들이 곱게 키워온 건데…. 우범기 시장의 태도를 보면 환경 문제를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어요. 면담 요청도 지금껏 거부하고 있어요. 전북환경운동연합이 생기고 처음 있는 일이에요.”
‘어디든 가면 있는 체육·문화시설이 아니라 전주에만 볼 수 있는 저런 아름다운 자연이 필요한 건데…. 잘려나간 나무를 보니까 가슴이 미어지네요.’(lo***)
‘저렇게 아름다운 명소를 한순간에 묵사발로 만들다니…’(ea***)
‘왜 대체 왜 자꾸 없애는 거며 시민들을 위한다면 왜 그들의 동의는 받지 않는 거죠?’(in***)
‘동식물 보금자릴 인간 이기심으로 잃네요. 저런 눈먼 돈이 줄줄 새니 정말 필요한 저출산, 동물복지, 장애인복지 예산은 줄어드는 거겠죠?’(br***)
전주천 버드나무가 베어진 당일인 2월29일 ‘나무 수천 그루 벌목한 전주시’라는 제목의 인스타그램 글·사진 포스트에 1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조회수 200만 회에 ‘저장’ 1만, ‘좋아요’ 3만7천 개나 기록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이 포스트를 올린 사람은 전주천 주변에서 제로웨이스트(일상 속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모아다. 모아는 <한겨레21>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남천교 근처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정말 애정하는 곳이었는데, 작년(2023년)부터 나무가 저렇게 잘리니 내가 아무것도 못하는 것에 무력감을 느꼈어요. 앞으로도 원하지 않는 변화가 또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느껴졌고요. 애도하고 싶은 마음에 만들어서 (포스트를) 올렸는데, 저뿐 아니라 이 버드나무 숲을 소중하게 여기고 애도하고 싶은 분이 많다는 걸 알았어요. 오랫동안 그냥 뒀던 버드나무숲을 왜 이유도 없이 베는지 시민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대한다고 느껴져요. 왜 시민과 소통하지 않는지. 전에 오목대숲 벌목 때도 그렇고요. 정치가 그러면 안 되잖아요.”
버드나무뿐만 아니다. 전주시는 2023년 1월에도 경관 개선을 위한다며 오목대숲의 아름드리 상수리나무와 느티나무 40여 그루를 베어내 시민사회의 큰 반발을 샀다.
모아가 말을 이어갔다. “제가 20대 중반이에요. 사실 제 일상과 정치가 연결돼 있다고 생각 안 했거든요. 저처럼 자기 일상에 벅차서 정치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20·30대가 정말 많아요. 이번에 (전주)시장이 바뀌는 게 내 인생에 이렇게 큰 영향을 준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저 말고도 많은 분이 공감하고요. 앞으로도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인, 전주시 막개발 실태 알리기로 공략하려 해요.”
버드나무류(버드나무속)의 라틴어 이름은 살릭스(Salix)다. 가깝다는 뜻의 ‘sal’과 물이라는 뜻의 ‘lis’가 합쳐진 말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도 물과 어우러지는 버드나무를 ‘물 고을 나무’라며 수향목(水鄕木)이라고 부른다. 겸재 정선도, 프랑스 화가 모네도 물가의 버드나무를 그렸다. 잘린 가지를 물에 띄워도 뿌리를 세차게 내려 꽃을 피우고 잎을 낸다. 물이 불어나면 부정근(뿌리 아닌 조직에서 발생하는 뿌리)을 뻗어 물을 흠뻑 빨아들이는 특성 때문이다. 그래서 예부터 하천변 치수를 위해 베지 않았고, ‘수해방지림’으로 키웠다. 버드나무가 홍수 위험을 가중한다는 주장은 모함에 가깝다.
“버드나무는 뿌리가 흙을 잡아줘서 토양 유실을 막아주고 홍수 때 물을 빨아들이는 일을 합니다. 오히려 유속을 떨어뜨려주고 하류에 유량이 넘치는 걸 막아주죠. 토목 하시는 분들은 나무가 있으면 하천 공간이 채워져서 범람 위험이 커진다고 하는데, 1995년 서울 양재천 복원 때부터 패러다임이 바뀌었어요. 그 기준대로 하면 체육시설이나 편의시설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자기들 하고 싶은 사업은 사업대로 하면서 홍수 예방을 얘기하는 건 하천 생태계를 초토화하면서 환경단체·시민사회의 비판을 무력화할 때 개발론자들이 자주 쓰는 핑계죠.” 최진우 생명다양성재단 이사가 말했다.
전주천에 모이는 주민들 마음
각박한 세상에 고집부리지 않고 가지를 축축 내리는, 부드러운 버드나무에 끌렸기 때문일까. 빈 전주천에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있다. “저물녘, 노을 진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버드나무 한 그루/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힘으로/ 그 밑을 지나왔던 기억을 되살린다”(이홍섭 시인 ‘버드나무 한 그루’ 일부분)
전주(전북)=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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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회색인 도시에 새들이 우짖습니다. 돌아보면 어김없이 키 큰 나무가 서 있습니다. 사방으로 잎과 가지를 뻗어 세상을 숨 쉴 곳으로 지켜줍니다. 곤충, 새, 사람이 모여 쉽니다. 이야기가 오갑니다. ‘나무 전상서’로 나무를 아끼고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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