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공깃밥에 빨간 준치회무침 쓱쓱…이제는 목포 대표음식

김용희 기자 2024. 4. 1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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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목포 선경준치회집
전남 목포시 온금동에 있는 선경준치회집에서 맛본 준치회무침 1인분 상차림.

전남 목포시 유달산 남쪽 자락에 자리한 온금동은 예부터 다순구미(따뜻한 구석이라는 전남지역 사투리)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목포항으로 일거리를 찾아 나선 선원들이 항구 인근에 모여 살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때에 맞춰 일하는 선원들은 한꺼번에 집에 들어왔다가 한꺼번에 바다로 향했다. 다순구미에 생일이 비슷한 주민과 제삿날이 같은 집들이 많은 이유다.

“예전에는 뱃사람들이 많이 보였는데 수협 위판장이 북항으로 옮겨간 뒤론 외지인들이 자주 찾네요. 주변에 있던 횟집들도 다른 데로 이사하고 우리만 남았어요.”

14일 다순구미 초입에서 23년째 선경준치회집을 운영하는 이후정(65·여) 대표가 바쁘게 손님을 응대하며 말했다. 오후 4시가 지난 늦은 오후였지만 10개 남짓한 테이블에는 손님들이 북적였다.

목포항과 목포수협 위판장, 조선내화 목포공장이 지척에 있는 온금동 일대에는 원래 해안도로 주변으로 횟집이 즐비했다. 이곳에서 위판을 마친 중개인들, 오랜만에 육지를 밟은 선원, 공장 노동자들이 회포를 풀곤 했다. 선경준치회집도 그중 하나였다. 이 대표는 안강망(조류가 빠른 곳에 닻으로 고정한 자루 모양 그물) 어선을 가지고 있었던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비어있던 집을 개조해 식당을 열었다.

전남 목포시 온금동 초입에 있는 선경준치회집. ‘썩어도 준치’의 준치 음식을 판다.

하지만 1997년 조선내화 주식회사가 목포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목포수협 위판장은 지난해 5월 북항으로 옮겨갔다. 이후 서산·온금지구는 재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횟집들도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러면서 홀로 남은 선경준치회집으로 손님들이 몰렸다. 밥때를 놓친 여행객, 목포여객선터미널 이용객들을 위해 여느 식당과 달리 브레이크 타임을 두지 않고 있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한 오전 10시30분부터 저녁 8시40분까지 문을 연다.

식당 대표 음식은 준치회무침, 병어회무침, 송어회무침이다. 모두 1인분에 1만원이다. 새콤달콤한 양념장에 오이, 양파를 썰어놓고 통깨를 뿌린 조리법은 같지만 물고기가 가진 고유의 맛은 제각각이다. 무엇을 먹어야 할까? 주인네는 식당 이름에도 들어간 준치회무침을 권한다. 어떤 연유로 목포 사람들이 준치회를 즐기기 시작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출항한 어선들이 많이 잡아오는 물고기다.

이 대표는 “목포 앞바다에서 잡은 것은 맛이 없어 동중국해에서 안강망으로 잡은 고기를 쓴다”며 “보름마다 한 번씩 배가 들어오는데 그제 들어온 배 2척에서 각각 175짝, 375짝을 사놨다”고 말했다.

전남 목포 선경준치회집 이후정 사장이 얼린 준치를 설명하고 있다.

준치는 음력 4∼7월이 제철이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주로 잡히기 때문에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는 준치를 ‘시어’라고 했다. 예부터 가장 맛이 좋은 생산으로 꼽혀온 탓에 ‘참다운 물고기’라는 뜻의 ‘진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식당 한쪽에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칼슘, 인, 철분,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어 몸이 허약한 사람이나 아이들, 노인의 기력을 보충해 주는 음식으로 추천한다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이 대표가 얼려놓은 준치를 쟁반에 담아 보여줬다. 큰 것은 길이가 40㎝, 작은 것은 20㎝ 정도다. 조기와 생김새가 닮았지만 배 부분이 더 통통하고 눈이 훨씬 크다.

준치는 몸 전체에 가시가 많은 생선이다. 이날 먹은 준치회무침은 뼈가 자주 씹히지는 않았다. 큰 것을 포 뜨는 방식으로 살만 발라냈기 때문이다. 작은 크기의 준치 무침은 다르다. 뼈째 썰어내는 세꼬시로 무쳐내기 때문이다.

반찬은 묵은김치, 볶음 김치, 고사리나물, 시금치나물, 어묵볶음, 파래무침, 풀치(갈치 새끼) 조림 7가지가 나온다. 양은냄비에 담긴 조기매운탕도 기본 상차림에 들어간다. 조기 두 마리를 넣고 쑥갓으로 비린내를 잡았다.

밥을 넣어 회무침을 비벼 먹을 수 있게 널따란 대접도 주는데, 안쪽에 참기름이 둘리어 있다. 참기름은 인근 방앗간에서 날마다 짜온다고 했다.

선경준치회집이 있는 전남 목포시 온금동 전경. ‘다순구미’(따뜻한 지역이라는 우리말)로 불리며 일제강점기 바닷일을 찾아 나선 선원들과 조선내화 공장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회무침과 밥을 따로 먹어도 되지만 주인네는 비벼 먹기를 권한다. 뜨거운 공깃밥에 넉넉하게 회무침을 넣어 비비면 밥의 온기에 준치회가 살짝 익어 고소한 맛이 더해진다. 밥은 빨간 양념으로 뒤덮여 있지만 간이 세지 않아 타지 사람 입맛에도 큰 거부감이 없다. 평소 비린 것을 싫어해 병어회나 전어회를 즐기지 않은 사람들도 준치회는 도전해볼 만하다.

회무침의 양이 푸짐한 덕에 밥 두 공기를 넣어 비벼도 부족하지 않다. 준치회를 큼직하게 썰어 넣은 까닭에 밥 한 숟가락마다 회 고유의 식감을 느낄 수도 있다. 밥 먹으러 왔던 손님들은 준치회 무침을 맛본 뒤 소주를 시키고는 한다.

준치회무침에 뜨거운 밥과 갓 짠 방앗간 참기름을 넣고 비빈 비빔밥. 목포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정태관 목포문화연대 대표는 “어떤 음식이 유명해지면 외지인들이 몰리고 맛과 식당 분위기가 변해 현지 사람들은 찾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준치회무침은 미식가로 소문난 목포 사람들이 자주 찾는, 대표 목포 음식으로 꼽을 만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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