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권력 심판, 대통령 탄핵 말고 없을까?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2024. 4. 1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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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칼럼] 정치의 재구성은 권력구조 변경이 요체

22대 총선의 의석수는 야권 192석, 여당 108석의 비교 불가능한 차이지만 득표는 5.4%포인트 차에 불과했다. 소선거구와 다수대표제의 실상이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다.

승자독식의 문제는 부단히 지적되어왔다. 이런 선거제도는 사표를 다수 발생시키게 되고 합의제 정치와는 동떨어진 결과를 초래한다. 당연히 여야를 각각 지지하는 유권자 간의 균열이 발생하게 되고 이는 양극화와 진영정치라는 고질적인 병폐를 유지·강화시킨다.

사표(死票) 발생은 정치적 효능감을 약화시키고 정치적 무관심을 넘어 자신이 찍지 않은 정당에 대한 냉소와 적대로 이어진다. 불과 500표 내외로 승패가 갈린 선거구도 있다. 선거의 불가피성이라고 치부하기에 우리 정치의 적대와 증오의 정도가 너무 깊이 패어있다.

그렇다고 중대선거구제로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총선거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평가와 심판의 성격을 띠는 건데 여야가 동반 당선된다면 이 또한 선거의 의미가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역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는 온데간데없는 기형적 선거제도가 정치를 더욱 교란시킨다. 더불어민주연합의 경우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소속 인물과 더불어민주당 인물들을 공천해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당선이 됐지만 이들 군소정당들의 후보들은 각자 자신의 정당으로 복귀한다. 이른바 위성정당을 만들어 편법으로 당선시켰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제의 정신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국회의원이란 직은 여야의 보스에 줄 선 사람이 공천을 받아 봉건영주 시대의 영주에 비견될 정도의 위치로 전락하고 있다. 일본의 막부(幕府, 바쿠후) 시대에 장군(쇼군)에 줄 서서 대명(大名, 다이묘)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런 정치를 언제까지 계속하려는가.

압축성장의 반대에는 '압축쇄잔'이 있다. 이러다가 정치가 한국의 모든 걸 다 삼켜버릴 수 있다. 증오와 적대, 분노로 지지를 결집시키고, 이를 숙주 삼아 정치라는 업을 영위하려는 자가 제도의 틈새를 파고들어 원내 입성에 성공하면 민생은 포장이요, 실제는 알량한 권력에 탐닉하는 정치 기능인으로 전락한다.

보수와 진보로 분장한 자들이 상대에 대한 살기(殺氣)를 정치의 동력으로 삼고, 제도의 안온함속에서 스스로의 지위를 즐기는 위선적 기능인으로 왜소화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치'는 설 곳을 잃는다. 정치라는 명분으로 배를 불리는 기생정당들이 바로 위성정당들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 종국에 공산주의가 도래한다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논리를 폈다. 우리 정치도 이제 새로운 변증법의 지평을 열 때가 되지 않았을까. 지금의 권력구조와 선거제도로는 중위 수준의 어떠한 제도를 고쳐도 백약이 무효다.

대통령 5년 단임의 문제가 이미 노출될 대로 노출됐으면 새로운 권력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기껏 나오는 얘기가 4년 중임제인데 기본적인 대통령제의 틀과 뭐가 다른지 이해할 수 없다. 정당의 수준이 낮으므로 내각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지만 정당정치가 이토록 형해화된 이유는 대통령제의 양극화된 정치, 보스의 눈치를 살피는 공천정치, 5년마다 전국이 진영으로 갈라지는 진영정치의 탓이다.

내각제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무능한 정권을 쉽게 교체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는다. 내각제는 국회의원이 임기 4년의 고정불변의 의원직에 편승해서 출세의 단맛에 도취할 수 없도록 강제할 수 있는 국회 해산이라는 제도도 있다. 선진국은 대부분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내각제 역시 숱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이제 우리도 내각제란 제도를 생각할 때가 됐다. 대통령 탄핵이 가져오는 극단적 대치를 해결하려면 내각제 하에서 지지를 잃은 정권을 자연스럽게 교체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면 된다. 그리고 국회도 책임진다면 많은 부분이 해소될 수 있다. 특히 소선거구제와 다수대표제에서 발생하는 승자독식과 다수결이 가져오는 적대의 정치를 합의제 정치를 통하여 교정할 수 있다.

인적 쇄신도 중요하고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도 긴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한 차원 높은 근본 틀의 변화를 논의할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 4년, 5년, 그리고 중간의 지방선거까지 정치의 '과잉 속의 빈곤'이라는 역설적 상황에서 허덕여야 하는가. 이러다가 브레넌 교수의 <민주주의에 반대한다(Against Democracy)>라는 저서의 웅변적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할까 걱정이다.

▲'2024 총선시민네트워크'에 참여한 시민단체 대표자들이 총선 공천자 반대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ccr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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