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 잊고 좋은 일만 생각하기[살며 생각하며]

2024. 4. 1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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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인간 심리는 ‘부정편향’이 강해
성공·강점보다 실패·약점 예민
인생은 좋고 나쁜 일 섞였지만
부정편향 작동 땐 ‘이생망’ 자책
행복은 받는 게 아닌 발굴하는 것
지난 삶 속 긍정적 의미 찾아야

올봄은 더디게 와서 많은 사람이 마음을 졸였다. 예년에 피던 시기에 꽃이 피질 않아 꽃축제를 준비하는 행사 관계자들이 애를 태웠다. 벚꽃 없는 벚꽃 축제가 열리고, 축제가 끝난 후에야 벚꽃이 피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나 계절의 순환은 변함이 없어, 늦었지만 올해도 산과 들에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어나고 벚꽃이 만개하여 세상을 꽃동산으로 만들었다.

올봄에는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꽃도 활짝 피었다. 4년 만에 총선이 치러져 정당과 후보자를 홍보하는 다양한 색깔의 플래카드가 거리를 장식하고, 후보자들의 열띤 유세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살벌한 말이 오가기도 했지만, 정당과 후보자들은 엎치락뒤치락하는 판세에 마음을 졸였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더니, 활짝 피었던 벚꽃이 어느새 모두 떨어졌다. 세상을 화사하게 장식했던 벚꽃이 채 열흘을 못 버티고 사라지고, 그 자리를 철쭉과 영산홍이 대신하고 있다. 뜨거웠던 총선의 열기도 식고 새 정국이 열리고 있다. 앞으로 4년간 국회를 이끌 여야 의원들의 새 진용이 갖추어졌다.

제행(諸行)은 무상(無常)하다. 변화의 빠름과 느림이 있을 뿐 모든 것은 변한다. 자연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고, 우리 인생도 변한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도 달라진다.

그런데 나쁜 변화가 좋은 변화보다 우리 마음에 더 강한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공평하게 똑같이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데, 이러한 심리적 성향을 ‘부정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한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심리학 학술지에 ‘나쁜 것은 좋은 것보다 강하다’는 제목으로 16가지의 부정 편향을 제시한 바 있다.

부정 편향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현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선, 사람들은 이득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다. 주가가 오를 때의 기쁨보다 같은 폭으로 내릴 때의 쓰라림이 훨씬 더 강하다.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폈을 때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조용히 미소 짓지만,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길거리로 나서 큰소리로 저항한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몇 년마다 집권 세력이 바뀌게 된다.

무릇, 인간은 성공보다 실패에 더 민감하다. 합격의 기쁨보다 낙방의 아픔이 훨씬 더 강렬하다.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의 기쁨은 짧지만, 낙선한 사람의 쓰라림은 오래 간다. 또한, 인간은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더 잘 기억한다. ‘은혜는 물결에 새기고 원한은 바위에 새긴다’는 말이 있듯이, 은혜는 쉽게 잊어도 원한은 가슴속에 오래오래 간직한다.

인간은 자신이든 타인이든 강점보다 약점을 더 잘 포착한다. 한 연구에서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가능한 한 많이 열거해 보라고 했더니 자신의 약점은 평균 11개를 제시했지만, 강점은 5개에 불과했다. 이처럼 자신의 강점보다 약점에 주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낮은 자존감을 지니고 살아간다.

인간은 타인의 강점보다 약점에 더 예민하다. 그래서 주변에 성격이 이상하거나 무능한 사람이 많다고 느낀다. 또한, 타인에 대한 부정적 정보가 긍정적 정보보다 전반적 인상 형성에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선거철에 후보자들이 자신의 강점을 제시하기보다 상대 후보의 약점을 드러내어 공략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정 편향은 위험이 많았던 원시사회에서는 생존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을 불행으로 이끄는 심리적 오류로 작용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도 ‘신은 세상을 창조할 때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할 의도가 없었다’고 했다.

행복의 관건 중 하나는 부정 편향을 잘 이해하고 극복하는 것이다. 우선, 자신의 약점뿐 아니라 강점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실패뿐 아니라 성공에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부정 편향을 지니기 때문이다. 부부관계 연구자에 따르면, 한 번의 비난으로 상한 배우자의 마음을 회복시키려면 최소한 5번 이상의 칭찬과 아부를 해야 한다. 행복한 부부관계를 위해서는 배우자의 단점보다 장점을 발견하려고 애써 노력해야 한다.

노년기가 되면 지나간 삶을 돌아볼 때가 많다. 좋은 일도 많았고 나쁜 일도 많았다. 나름의 성취도 있고, 소망했지만 성취하지 못한 것도 있다. 과거를 돌아볼 때 부정 편향이 작동하면, 자신의 인생이 실패한 것으로 느껴져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들 수 있다. 그래서 ‘이생망’(이번 生은 망했다)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신의 삶을 평가할 때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인생의 출발점이 다르고 삶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주어진 상황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삶을 살아왔다. 되돌이킬 수 없는 지난 삶에 대해서는 나쁜 것보다 좋은 것에 주의를 기울이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고 발굴하는 것이다. 과거의 삶이든 현재의 삶이든 그 속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하고 긍정적인 의미를 발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지혜롭다.

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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