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이티 이주민 본국 추방 재개···“사형 선고” 비판

선명수 기자 2024. 4. 1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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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아이티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콜롬비아와 파나마 국경 지대 ‘다리엔 갭’을 지나고 있다. 아이티는 갱단 폭력으로 무정부 상태에 놓여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아이티 출신 이주민들을 갱단의 유혈 반란으로 무정부 상태에 놓인 본국으로 추방하는 항공편을 재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아이티의 치안 및 인도주의 위기가 극심한 상황에서 본국 추방은 “사형 선고와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미 국토안보부는 18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아이티 국민 약 50명을 항공편을 통해 아이티로 송환했다”며 “미국에 남을 법적 권한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 경우만에만 추방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아이티 출신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하기 위해 항공편 운영을 재개한 것은 지난 1월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해상에서는 미 해양경비대가 지난달 12일 바하마 인근 해상에서 이민자 65명이 탄 선박을 아이티로 돌려 보낸 바 있다.

조 바이든 정부의 추방 재개는 오는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이 불법 이민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적극 띄우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갱단 폭력으로 비상사태가 발생한 아이티에선 주민들의 목숨을 건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정부 역시 아이티에 있는 자국민들을 탈출시키는 한편 미국인들에게 아이티를 방문하지 말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중남미 카리브해 최빈국인 아이티는 수년째 갱단이 활개치며 무정부 상태가 계속돼 왔다. 2010년 발생한 대지진과 이어진 콜레라로 극심한 혼란을 겪은 아이티는 2021년 조브넬 모이즈 당시 대통령이 암살되며 공권력마저 붕괴했다. 여기에 지난달 3일 갱단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국립교도소를 습격해 재소자 3000여명을 탈옥시키고 경찰서와 공항, 관공서 등을 공격하면서 폭력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지난 3월21일(현지시간)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경찰이 갱단과 대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갱단의 퇴진 압박을 받아온 아리엘 앙리 총리가 지난달 사임한 뒤 과도위원회 구성을 둘러싼 협상이 시작됐지만, 치안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갱단은 현재 포르토프랭스의 약 80%를 점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인권사무국에 따르면 아이티에선 올해 1~3월까지 1500명 이상이 갱단 폭력으로 사망했다. 유엔은 이번 사태로 1만5000여명이 집을 떠났으며 아이티 내 전체 피란민 수가 3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아이티를 탈출한 이주민들을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나탈리 코트리노는 “아이티의 재앙적인 인권 상황을 고려할 때 바이든 정부가 사람들을 계속 추방하는 것은 비양심적”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이주민 권리단체 알오트로라도는 “갱단은 수도를 장악했고, 사람들은 기근에 직면했다”며 “사람들을 아이티로 돌려보내는 것은 이들에게 사형 선고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 소속 코리 부시 미 하원의원도 지난주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 정부는 끔찍한 상황에서 탈출한 아이티 이민자를 돕기 위해 인도주의적 접근 방식을 채택해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며 추방 조치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국제이주기구(IOM)은 지난달 약 1만3000명의 아이티 주민들이 이웃 국가에서 아이티로 송환됐다고 밝혔다.


☞ ‘무법천지’ 아이티···갱단 폭력에 경찰마저 자경단에 의존
     https://www.khan.co.kr/world/america/article/202403191550001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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