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미 연준과 정말 ‘다른 길’ 가나[조은아의 유로노믹스]

파리=조은아 특파원 2024. 4. 1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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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ECB) 본부 야경. ECB ‘X(옛 트위터)’ 캡처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큰 변수가 없으면 곧 금리를 인하할 것임을 시사해 눈길을 끌었다. ECB가 금리 인하를 시사한 게 이번은 처음은 아니었지만 시장은 갸웃하는 분위기였다. 세계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기류를 주도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를 계속 시사했다가 돌연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ECB가 미 연준의 금리 방향과 비슷하게 움직이던 통상의 공식을 깨고 정말 다른 길을 가려는 것일까.

● 힘 받는 ECB ‘6월 금리 인하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ECB) 본부에서 11일 기자회견 중인 크린스틴 라가르드 총재. 프랑크푸르트=AP뉴시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16일(현지 시간) 미국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 둔화)이 예상대로 진행되고, 큰 충격이 없다면 제한적 통화정책을 완화할 시기로 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가상승 둔화세와 유가 급등 등 여러 변수를 좀더 살펴봐야 하지만 현 상태가 유지되면 금리를 인하하겠다는 의미다.

금리 인하 시기에 대해서는 “추가 충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합리적으로 짧은 시간 내”라고 도 설명했다. 시장이 전망하는 ‘6월 금리 인하’에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라가르드 총재는 6월 금리가 인하된 뒤 추가적으로 금리가 인하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16일 CNBC에 “나는 그 점을 매우 분명히 밝혔으며 고의적으로 어떤 금리 경로도 미리 약속하지 않는다”며 확답을 피했다. 또 “외부에는 큰 불확실성이 있다”며 “우린 이러한 (변수의) 확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데이터를 살펴보고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라가르드 총재가 금리 인하를 시사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ECB는 11일 기준금리를 연 4.50%로 5차례 연속 동결한 뒤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목표치에 수렴하고 있다는 신뢰가 더욱 높아진다면 현재 (금리) 수준을 낮추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금리 인하 방침을 처음으로 공식 언급한 것이다. 이어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ECB가 연준에 의존하지 않으며 데이터에 의존해 금리를 결정한다고 당당히 밝혔다.

투자자들은 이런 발언에 주목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16일 “인플레이션이 2%로 낮아진다는 더 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존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며 당장 금리 인하가 어려울 것임을 시사했기 때문.

● “유럽 인플레, 미국과 본질적으로 달라”

독일 베를린 도심에서 할인 행사 중인 매장 앞을 한 소비자가 지나가고 있다. 베를린=AP 뉴시스

ECB가 독자적인 길을 가려는 공식적인 이유는 우선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고 있어서다. 유럽연합(EU)이 17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 확정치는 전년 동월 대비 2.4% 상승해 전월 상승폭(2.6%)에 비해 둔화됐다. 외신들은 이 수치가 ECB의 6월 금리 인하를 유도할 것으로 봤다.

유럽의 인플레이션은 미국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달라 크게 우려할 상황이 아니란 분석도 있다. 칼 웰런 아일랜드 더블린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11월 유럽의회의 ‘ECB와 미 연준의 통화정책 비교’ 보고서에서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은 공급 측면에서 더 영향을 받고 강한 수요엔 덜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보통 임금 상승 등 수요가 주도하는 물가 상승이 더 심각한 것으로 인식된다.

웰런 교수는 이어 “시장은 연준이 ECB보다 통화정책을 더 완화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올해 그 반대의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CB가 연준보다 금리를 더 내릴 수 있다고 이미 수개월 전에 관측한 것이다.

이 외에 유럽의 성장속도가 미국보다 느리다는 점도 고려 요소다. 유럽의 경제 우등생으로 꼽히던 독일과 영국마저 경기침체를 겪는 등 유럽의 경기가 녹록치 않다. 이에 ECB는 그간 유지해온 금리를 낮춰 경제에 활력을 줘야 할 때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는 17일 한 회의에서 유로존과 미국 경제가 상당히 격차가 남을 지적했다. 2008년 이후 미국 경제는 유로존 경제보다 75% 더 많이 성장했다. 로베르트 홀츠만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도 지난달 30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유럽경제가 미국보다 더 느리게 성장하고 있어 유럽이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했다.

● 변수는 ‘유가급등’, ‘3개의 전쟁’

다만 ECB는 최근 고조된 중동 긴장에 따른 유가 상승을 주시하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16일 인터뷰에서 “모든 원자재 가격이 (물가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그러한 움직임에 극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유가는) 분명히 에너지와 식품에 직접적이고 빠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유가가 예상 외로 급등하면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금리 인하 결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ECB 정책위원 올리 렌 핀란드 중앙은행 총재도 성명을 통해 6월 금리 인하 여부는 인플레이션 하락에 달려 있다면서 ECB 통화정책의 가장 큰 위험으로 이란-이스라엘 긴장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꼽았다.

일각에선 ECB가 연준을 따르지 않았다가 유로화 가치가 심각하게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의 통화정책 장기 완화가 유로화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했다. ECB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17일 한 대담에서 “ECB는 환율을 목표로 삼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는 그것을 매우 면밀히 살펴본다”고 설명해 시장의 우려를 달래려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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