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냐 친중이냐” 전·현직 대통령 정면 충돌…한국과 판박이, 필리핀의 내분 [필동정담]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4. 1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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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를 고민하는 나라 중 하나는 필리핀이다.

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친미 성향인 반면 전임자인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집권 시절 친중을 표방했다.

하지만 두테르테 딸이 2022년 대선에서 마르코스 후보 러닝메이트로 나와 현재 부통령을 맡고 있어 필리핀 내 친중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에 두테르테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긴장을 부추기는 미국 의도에 마르코스는 따라가기만 한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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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를 고민하는 나라 중 하나는 필리핀이다. 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친미 성향인 반면 전임자인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집권 시절 친중을 표방했다. 마치 우리나라 전·현직 정부가 각각 중국과 미국에 좀 더 가까운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두테르테 딸이 2022년 대선에서 마르코스 후보 러닝메이트로 나와 현재 부통령을 맡고 있어 필리핀 내 친중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해 7월 시진핑 주석이 퇴임한 두테르테를 중국에 초청해 만난 것도 필리핀 내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
문제는 마르코스와 두테르테 진영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두테르테는 마르코스가 개헌에 나선다면 남부 민다나오섬을 독립시키겠다고 했다. 마르코스가 개헌을 통해 그의 부친처럼 장기 집권을 꾀한다고 주장한다. 오는 2028년 대선에서는 자신의 집안에서 대통령을 낼 궁리를 하고 있는 두테르테로서는 개헌이 되면 마르코스 집안과 전쟁을 불사할 수밖에 없다. 현행 6년 단임의 대통령이 장기 연임을 가능하도록 하는 개헌은 지난 대선에서 친딸을 내주며 차기 권력 분점을 밀약한 것과도 어긋나는 것이다.

민다나오는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섬으로 두테르테는 그 곳 최대 도시인 다바오 시장을 7차례나 지내며 정치적 입지를 키워왔다. 이후 그의 자녀들도 그곳 시장을 지낼 정도로 민다나오는 두테르테 집안의 텃밭이나 다름 없다. 민다나오는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같은 과격 이슬람 무장단체 활동 무대로 치안이 불안하고, 전통적으로 반정부 정서가 강하다.

반면 마르코스는 지난해 미군에 군사기지 4곳을 추가 개방했고, 양국 간 합동군사훈련도 실시했다.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서 탈퇴도 했다. 두테르테에 대해서는 중국과 짜고 영토 분쟁중인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 접근을 용인했다고 비판한다. 실제 중국 배 수백 척이 암초에 정박해 위세를 부릴 때도 두테르테는 미온적 대응으로 비난을 샀다.

그러나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트롱맨(철권통치자)’인 두테르테는 마르코스를 ‘애송이 정치인’ 취급한다. 2022년 대선 당시 대통령이던 두테르테 지지와 자신의 딸을 후계자로 앉히지 않은 덕분에 마르코스가 집권할 수 있었다고 여긴다. 이로써 마르코스가 21년(1965~1986) 장기 독재자 아들이라는 멍에를 벗고 대통령이 되는데 두테르테 지분을 강조한다. 두테르테가 마르코스를 ‘마약중독자’라고 지적하자 마르코스는 해당 발언이 “(두테르테) 펜타닐 부작용 때문에 나왔다”라며 맞받아치기도 했다. 결국 남북으로 나뉜 지역 기반과 대외 노선 차이, 2028년 대선 전 개헌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는 중이다.

11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중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오른쪽),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왼쪽)<AP·연합뉴스>
지난 11일 마르코스는 워싱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3국 간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마르코스는 미-필리핀 합동군사훈련에 일본 자위대 참가를 환영한다고 했다. 일본과 필리핀은 상호 병력 파견을 위한 협정을 추진중인데 이는 얼마전 미군과 자위대 간 지휘·통제 연계 방안에 이어 나온 것이다. 당연히 3국 회동은 중국 견제로 읽힌다. 이에 두테르테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긴장을 부추기는 미국 의도에 마르코스는 따라가기만 한다”고 비난했다. 미·중 사이에서 곤란할 때가 많은 우리나라는 필리핀의 외교 향배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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