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동조자’, 아이러니·패러독스·부조리성 강조한 작품”

2024. 4. 1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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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 수상 원작…베트남 이중간첩 이야기
베트남인 배우 캐스팅이 가장 어려워
‘1인 4역’ 로다주…“이보다 좋을 순 없다”
박찬욱 감독이 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배우들한테 가장 강조했던 건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아이러니, 패러독스, 부조리성이에요.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겉과 반대되는 내적 의미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고 제일 많이 얘기했죠.”

박찬욱 감독은 17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의 ‘부조리성’에 가장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쿠팡플레이에서 1화가 공개된 ‘동조자’는 박 감독이 영화 ‘헤어질 결심’ 이후 처음 내놓는 작품이다. 박 감독은 이번 작품의 공동 쇼러너(Showrunner,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제작부터 각본과 연출까지 모두 이끌었다. 총 7부작으로 구성된 시리즈 가운데 연출은 1~3화를 맡았다.

‘동조자’는 2016년 퓰리처상을 받은 베트남계 미국 작가인 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명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작품은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던 당시 이중간첩으로 살던 대위(호아 쉬안데 분)의 삶을 그린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대위는 반반의 정체성을 지닌 채 살다가 남베트남의 비밀 경찰이자 북베트남의 이중 간첩으로서 또 다른 반반의 삶을 살아간다.

[쿠팡플레이 제공]

박 감독은 소설을 영상 작품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 쉽지 않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이번 작품은 2018년 ‘리틀 드러머 걸’에 이은 박 감독의 두 번째 시리즈물 도전작이다. ‘리틀 드러머 걸’과 ‘동조자’는 유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학 작품엔 맘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많이 적어 놓기 마련이에요. 행동이나 대사만으로 이뤄진 영화 각본과는 다르죠. 그렇게 때문에 문학만이 가지고 있는 풍부함을 옮기기엔 참 어려움이 따릅니다.”

다만 ‘동조자’의 경우 소설의 네러티브 특성을 영화적 기법과 결합시켜 한층 수월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작품은 대위가 강압적으로 자술서를 쓰고 심문 당하는 시간을 내러티브 장치로 활용했어요. 관객들에게 영화 도중 진술서 형식이라는 걸 일깨워주며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누군가 이를 멈추고 ‘왜 이번엔 다르게 대답하지?’라며 질문하죠. 그러면 화면이 되돌아가선 방금 전과 다른 정보를 제시하도록 했어요. 이렇게 문학 장치에 영화적인 기법을 결합시켰습니다.”

[쿠팡플레이 제공]

작품이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베트남과 미국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박 감독은 “근현대사의 공통점을 가진 나라의 국민으로서 동병상련의 맘이 있었다”고 말했다

“냉전이 끝났다고 하지만 결코 끝나지 않았어요. 남한 사회의 이념 갈등이 얼마나 격렬한가 생각해보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죠. 군사적 긴장, 이념 투쟁, 강대국 영향 등은 우리에게 공기처럼 둘러싼 환경이에요. 원작을 잘 구현하는 데는 적어도 제가 미국인보다 적임자라고 생각해요. 동시에 베트남인이나 미국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적당한 거리감도 가질 수 있었고요.”

[쿠팡플레이 제공]

이번 작품엔 국내에서 ‘로다주’로 잘 알려진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출연한다. 다우니 주니어는 극중에서 1인 4역을 맡으면서 화제를 모았다. 그에게 네 개의 배역을 맡긴 배경에 대해 박 감독은 “훌륭한 배우가 많아도 다양한 역할이 구별되도록 개성 강하게 표현하는 배우는 찾기 어렵다”며 다우니 주니어의 연기력을 극찬했다.

“교육자, 영화감독,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하원의원 등 네 사람의 백인 남성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들이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보여주는 네 개의 얼굴이고 결국 하나의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청자들이 이를 단박에 알게 하고 싶었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죠. 동료들이 절 ‘미친 X’ 취급할까봐 고민했는데 다행히 좋은 반응을 보였어요.”

[쿠팡플레이 제공]

박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는 배우 캐스팅을 꼽았다. 등장 인물 대부분이 베트남인들이어서 세계에 포진돼 있는 베트남계 배우들은 물론, 연기를 접하지 않은 베트남인들까지 섭외해야 했다. 이 중엔 미국 디즈니의 웹 디자이너부터 베트남의 유명 영화 감독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비(非) 배우들이 포함됐다.

“프로 배우가 아닌 그들을 믿는 용기가 참 필요했어요. 이들이 촬영하다가 힘들다고 도망가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죠. 현장에서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쳐야 할 때도 많았고요. 그런데 그만큼 보람도 커요. 그들의 연기가 성장하는 걸 느끼면서 함께 성장한다는 즐거움을 많이 누렸죠.”

최근 몇 년 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작품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것에 대해선 ‘파친코’,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의 영향을 언급하면서도 그는 시대적인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그동안 대중문화에서 특정 집단이나 특정 인종의 목소리만 들려줬어요. 이에 대한 반성이 너무나 늦었지만 생기고 있죠. 또 소수 집단이 점점 힘을 가지게 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낼 통로를 찾게 됐어요. 1억 달러가 훌쩍 넘는 자금이 투입된 시리즈물에 처음 보는 베트남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고, 대사 절반 이상이 베트남어인 이런 일이 가능해졌다는 건 정말 어찌 보면 놀랍고 너무 늦은 일이죠.”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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