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해협 문제엔 지금만큼…“굳세어라 신원식”
한국 해군, 미국 해군, 일본 해상자위대가 지난 11~12일 해상훈련을 했다. 한·미·일이 지난 12일 공개한 해상훈련 보도자료를 견줘보면, 훈련의 목적과 장소에 저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한국 해군 보도자료는 이 훈련의 목적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응 능력과 조난 선박에 대한 수색 구조능력 제고”라고 밝혔다. 일본 쪽 보도자료에는 ‘북한’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일본 해상자위대 보도자료는 훈련의 목적을 해상자위대의 전술기량 향상 및 미 해군, 한국 해군과의 제휴 강화라고 밝혔다.
미국 해군 보도자료는 “동맹국과 협력국 간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이와 같은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군 보도자료에는 이번 훈련에 참가한 한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서애 류성룡함 함장 백준철 대령의 소감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북한 위협 대응’을 언급했다.
3국은 훈련 장소를 두고도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한국은 “제주 남방 공해”라고 밝혀, 훈련 장소가 한반도 근처 바다란 점을 강조했다. 일본은 훈련 장소가 “동중국해(東シナ海)”라고 밝혔다. 제주 남방 공해상과 동중국해는 같은 바다를 다른 명칭으로 부른 것이다. 동중국해는 제주도 남쪽부터 대만에 걸쳐 있는 서태평양 연해이다. 이 곳은 산둥성 칭다오가 모항인 중국 북해함대와 저장성 닝보가 모항인 중국 동해함대가 태평양으로 나오는 길목이다. 미국 처지에서는 동중국해가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전략적 요충지다.
미 해군 보도자료는 이번 훈련이 “공해상에서 국제법에 따라 진행됐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해 4월 한·미·일 해상훈련 때는 장소를 “동중국해(EAST CHINA SEA)”라고 발표했다. 이번에 미국이 훈련 장소를 ‘공해’라고만 밝힌 배경에는 중국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지 않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주 미국 워싱턴 디시(DC)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미·일·필리핀 간 정상회의에선 중국을 한층 촘촘하게 견제하는 방안이 논의됐고, 중국은 “중국을 겨냥한 악의적 공격과 비난”이라고 반발했다.
한·미·일이 해상훈련 장소, 목적을 각각 다르게 설명한 것은 각자 처한 위협과 국가이익이 다르기 때문이다. 3국이 겉으로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한목소리로 강조하지만 한국은 북핵 위협 대응, 미국과 일본은 대중국 압박이 주된 관심사다.
대만해협의 긴장이 높아지면 동중국해의 긴장도 높아진다. 대만해협 문제는 바다 건너 불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긴밀히 얽혀 있다. 수년 전부터 경기 오산 미군기지 소속 고공정찰기(U-2S)가 대만해협 인근 동중국해 상공에서 정찰비행을 하고 있다. 주한미군기지가 중국을 견제하는 발진기지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외 연구기관에서는 대만 유사시에 주한미군 투입과 한국군 개입 가능성도 제기한다. 지난해 1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발간한 중국의 대만 침공 워 게임 보고서는 대만 유사시 주한 미공군 4개 전투비행대대 중 2개 대대가 대만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1월 공개된 한국국방연구원과 미국 국방대 국가전략연구소(NDU INSS)가 공동연구한 ‘대만위기 시나리오’를 보면, 미국 쪽은 중국의 대만에 대한 합동타격 작전, 해상봉쇄 작전, 상륙 작전 등 세 가지 시나리오로 나눠 한국에 대한 기대를 설명했다. 미국은 △합동타격 작전 때는 정보공유와 중국군에 대한 영해 폐쇄, 비군사적 군수지원 등의 지원 △해상봉쇄 때는 미군의 군사 물자를 수송하는 민간선박이나 민항기에 대한 군수지원, 비타격 작전에 투입된 선박 및 전투기에 대한 군수지원 △상륙 작전 때에 주한미군을 재배치하고 한국군의 부품과 탄약 대여 등을 꼽았다.
상당수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대만해협 유사시 주한미군 투입은 당연하고 한국군도 일정한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와 달리 신원식 국방장관은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투입이나 한국군 개입 가능성을 부정하거나 거리를 두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신원식 장관은 지난 14일 한국방송(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대만 유사시 한국군 역할’과 관련해 “대만 위기 발생할 때 우리 군은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주한미군과 함께 확고한 연합방위태세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 장관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위기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동북아, 대만 그리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훨씬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우리는 대한민국 안보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 세계 안보를 지키는 것이란 생각을 하고, 거기에 전력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찰스 플린 미 태평양 육군 사령관이 지난 7일 국내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대만에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한국군이 동맹의 힘을 보여줬으면 한다”는 발언에 대한 답변이었다.
신 장관은 지난달 18일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대만해협 유사시 주한미군이 투입되면 한반도 안보 공백 우려가 있다”는 질문에 대해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대한민국이 외부의 침략을 받을 때 싸우게 돼 있다. 미국도 늘 그것을 확약하고 있고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서 한·미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지난 1월22일 국내 영자신문 ‘코리아헤럴드’ 인터뷰에서 ‘대만 유사시에 주한미군이 대만을 지원할 수도 있냐’는 질문에 대해 “대만을 둘러싼 충돌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한미군을 빼간다는 전제를 한 질문은 적절치 못하다.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하면 미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우리의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질문이다. 주한미군도 그런 얘기를 전혀 하지 않고 있고, 지나친 가정이다. 단호히 ‘노(No)’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원식 장관의 대북 강경기조와 이념 편향 행보를 두고 비판이 많지만, 대만해협 문제만큼은 “굳세어라 신원식”이란 반응이 나올 수도 있어 보인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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