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개발자 변신 이세돌 “알파고 한판 더 이기는 것 가끔 상상… 최정과 맞대결도 해보고파”[M 인터뷰]

김인구 기자 2024. 4. 1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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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보드게임 개발자 변신 이세돌 바둑 9단
프로기사 은퇴후 다른삶 꿈꿔
바둑 응용한 보드게임 만들어
‘추상적 전략게임’ 바둑은 예술
둘이서 하나의 작품 만드는 것
고민없이 수 두는 알파고 보며
벽에다 테니스공 치는듯 느껴
AI 개발땐 ‘공공선’ 원칙 둬야
국내 여자 기사들 활약에 관심
보드게임 개발자로 변신한 천재 기사 이세돌 9단이 지난달 26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바둑을 응용해 자신이 직접 만든 보드게임을 설명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인터뷰 = 김인구 체육부장 clark@munhwa.com

지난 2016년 3월 13일 천재 기사 이세돌(프로 9단)과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네 번째 대국을 맞이한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 분위기는 사뭇 가라앉아 있었다. 앞선 3차례의 대국에서 이세돌이 예상 밖으로 알파고에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AI가 발전했어도 최고의 지략 경기인 바둑에서는 아직 인간에게 어림없다고…. 특히나 ‘인간계’ 최고의 이세돌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애초의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만큼 잇단 패배의 충격은 대단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AI의 디스토피아를 떠올리게 됐다. 공포가 확산했다. 그런데 또 한 번 반전이 일어났다. AI의 압도적인 플레이에 속절없이 무너졌던 이세돌이 네 번째 대국에서는 불계승을 거뒀다. AI를 상대로 한 인간의 짜릿한 승리. 이 승리는 이후 인간의 유일한 승리로 남았다. 알파고는 인간과 74차례의 경기에서 73승 1패를 기록했다. 이세돌은 당시 “한 판 이겼는데 이렇게 축하를 받아본 것은 처음 같다”고 멋쩍어했다.

그로부터 8년. 이세돌을 어렵게 만나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었다. 2019년 바둑계를 은퇴한 그는 현재 보드게임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5월 ‘그레이트 킹덤’ ‘나인 나이츠’ ‘킹스 크라운’이라는 3가지 종류의 보드게임을 만들어 출시했다.

―어떻게 보드게임을 만들게 됐나.

“2019년 11월 프로 기사에서 은퇴한 후 다른 삶을 꿈꿨다. 그런데 곧바로 코로나19가 본격화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계획했던 모든 게 빗나갔고, 한동안 좀 힘들었다. 그러다가 2021년 초쯤 코리아보드게임즈라는 회사로부터 보드게임을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평소 관심 있던 분야였고 흥미로워 보였다. 그때부터 직접 해보고 연구하다가 게임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세돌은 원래 10세 무렵부터 카드 게임을 즐겼다. 그의 바둑 스승으로 지난해 초 별세한 권갑용 9단이 장려했기 때문이다. 카드 게임에서 자신의 패를 숨기고 블러핑(Bluffing·거짓으로 강하게 하는 베팅)하는 것을 바둑에도 응용해보라는 취지였다. 이세돌의 기풍(棋風)은 상대를 혼란시키는 호전적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창호 9단이 느긋하면서도 안정된 계산으로 끝내기를 한다면, 이세돌은 압도적인 수읽기로 판을 흔들어 상대를 제압한다.

―역시 천재는 천재인가 보다, 그래도 게임을 하는 것과 만드는 것은 다르지 않나.

“지금은 게임 3가지가 나와 있지만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다양한 보드게임을 연구했고, 고민을 거듭했다. 홀덤(Holdem·카드 게임의 일종)도 해봤다. 우선은 바둑을 응용한 게임을 생각했다. 그게 ‘그레이트 킹덤’이다.”

‘그레이트 킹덤’은 바둑을 모티브로 한 1대 1 게임이다. 가로, 세로 9칸의 보드 위에서 각 40개의 기물과 1개의 벽을 포석해 자신의 집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대결한다. 19줄의 바둑판을 9칸으로 줄이고 흑백의 돌 대신 파란색과 오렌지색의 기물을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영락없는 바둑의 축소판. 그러나 패싸움 같은 것을 없애 보다 단순화했다. 그리고 ‘나인 나이츠’는 숫자 게임, ‘킹스 크라운’은 빙고를 응용한 게임이다.

―게임에 대한 반응이 어떤가, 스스로 만족하나.

“이제 출시한 지는 10개월쯤 됐다. ‘그레이트 킹덤’의 경우 바둑에서 비롯한 만큼 바둑 특유의 ‘추상적 전략’을 담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어려워도 곤란해서 타협점을 찾았다. 호불호가 있는 것 같다.”

이세돌은 현역에서 은퇴한 지 5년이 됐고, 프로 바둑은 거의 두지도 않는다고 했지만 바둑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목소리의 데시벨이 높아졌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강조하는 말이 있었다. 추상적 전략 게임인 바둑은 ‘예술’이며 ‘둘이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가 AI 알파고에 지고 3년 후 은퇴를 결심한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다.

―AI가 나오면서 바둑의 예술은 사라졌다고 했는데 여전히 같은 생각인가.

“나는 예술로서의 바둑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변화의 수가 어마어마한 추상적 전략 게임에서 정답을 모른 채 어떤 선택을 하는 예술이다. 그래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AI가 바둑을 장악하면서 요즘은 프로 선수들도 AI 기보를 보며 연구한다. 해설도 AI로 한다. 그런 시대에 바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세돌은 요즘 프로 기사를 상대로 AI가 2점을 깔아주고 하는 ‘2점 바둑’을 예로 들었다.

“이제는 2점을 두고 해도 프로 기사가 AI에 진다. AI는 신이나 다름없다. 정답이 정해진 것은 예술적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알파고와의 맞대결에서 아쉬운 건 없나.

“지금 알파고의 수준은 훨씬 더 높아졌으니 쉽지 않다. 다만 8년 전 대국은 좀 아쉽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준비가 돼 있었다면 한 판은 더 이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최근 바둑계의 한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세계 유일의 바둑학과인 명지대 바둑학과가 내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기로 했다. 1997년 개설된 명지대 바둑학과는 19명의 프로 기사를 배출했지만 경영 악화와 바둑 인구 감소 등으로 폐과를 결정하게 됐다. 대한바둑협회에 따르면 바둑을 둘 줄 아는 인구의 추산 비율은 2000년 32%에서 올해 19.4%로 뚝 떨어졌다.

―요즘 바둑의 인기가 너무 떨어진 것 같다.

“바둑에 많은 시간을 쏟는 게 어려운 시대다. 주변에 할 게 많아지면서 어쩔 수 없게 된 것 같다.”

―그럼 이제 바둑 본연의 가치는 사라진 것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만약 예술적 가치를 잃었다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학습의 용도는 남아 있다는 것이다. 바둑을 가르치는 학부모들이 아직 있다.”

알파고와의 대국 8주년을 맞아 지난달 중순 구글코리아가 ‘AI 시대 서막을 알렸던 이세돌 vs 알파고, 그 후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이세돌 인터뷰 영상을 올렸다. AI로 인한 삶의 변화, 그리고 AI가 가져올 미래 변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세돌은 “당시 당연히 (인간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국을 좀 쉽게 생각한 부분도 있다. 그런데 막상 승부 호흡도 없고 고민도 하지 않고 (알파고가) 바로 수를 두는 모습을 보니, 정말 벽에다 테니스공을 치는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세돌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는 AI 기술에 대한 생각도 공개했다. 그는 “공공선을 위한 AI 개발이 AI의 핵심 원칙이 돼야 한다”면서 “제대로 준비가 안 돼 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속도 조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AI를 두려워하는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알파고 대국의 패배가 은퇴에 영향을 미쳤나.

“1, 2국은 알파고라는 상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고, 3국 때는 심리적으로 무너졌다. 4국은 운 좋게 이겼다. 당시엔 알파고가 낮은 버전이어서 이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사실상 이길 수 없다. 나는 바둑을 예술적·학문적 접근 방식으로 배웠다. 그런데 AI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그런 접근 방식이 가치가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알파고와의 대결이 은퇴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친 셈이다.”

―신진서, 최정 등 후배들이 AI를 이길 가능성은.

“내일 바로 대결하면 신진서라도 질 것이다. 연구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부하면 가능하다고 믿는다.”

―바둑이 항저우 아시안게임 채택 종목이자 마인드 스포츠로 분류됐다, 스포츠란 표현에 동의하나.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바둑은 스포츠라기보다는 추상적 전략 게임이고 예술이다. 하하.”

이세돌은 스스로 “바둑계의 왕따였다”고 했다. 정해진 룰에 쉽게 수긍하지도, 고집을 꺾지도 않았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바둑에 전념한 이유다. 그래서 프로 기사 시절에도 한국기원과 자주 대립했다. 2009년엔 기보 저작권, 대국료 등의 문제로 한국 바둑리그 불참을 선언했고, 2016년엔 프로기사회 탈퇴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지금도 바둑계와 불편한 관계인가.

“한국기원과의 불편함이라기보다는 다른 프로 기사들과의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훨씬 더 유연해졌다. 이전엔 작은 부분에서도 물러나지 않았다면, 이제는 ‘그래, 이런 거는 뭐∼’라며 이해하고 포용하려고 한다.”

―아빠가 됐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아빠인가.

이세돌은 전성기이던 2006년 김현진 씨와 결혼했다. 그리고 딸 하나를 얻었다. 그 딸이 벌써 고3이 됐다.

“친구처럼 지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시절,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무 아쉬웠지만 최대한 지원해주려 했다. 사람은 할 때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은.

“은퇴 후엔 프로 기사들과 바둑을 해본 적이 없다. 어린이 바둑교실에 들러 격려를 해준 것 빼고는 바둑 관련된 일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엔 국내 여자 기사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남자 중심이었던 바둑계에 최정 같은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여자 기사들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 여자 바둑은 어디까지 왔는지 경험해보고 싶다. 이를테면 최정과의 맞대국 같은 것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승부는 장담 못 한다. 은퇴 이전이야 당연히 이긴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기려면 요즘 바둑을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

―유튜브나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의 활동은 어떻게 생각하나.

“예능 프로그램에 안 나간다는 게 아니다. 가끔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게 시청자를 웃기는 재주는 없으니 ‘토크형’ 같은 게 어떨까. 유튜브도 지금 안 하고 있지만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세돌과의 인터뷰는 4·10 총선을 보름쯤 남겨둔 시점에 진행됐다. 당연히 정치에 관한 이세돌의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이세돌은 “박영선 의원과 친분이 있어서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를 떠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하고 싶다. 갈라치기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날 이세돌과의 대화는 저녁 식사 자리까지 이어졌다. 바둑을 비롯해 수많은 이슈를 더듬었다.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심지어 정치까지 두루 짚었다. 어떤 주제를 던져도 이세돌은 청산유수였다. 수다스럽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자신의 철학이 견고했다. 6시간의 기나긴 대화가 마무리된 후 이세돌과 손가락을 다시 걸었다. 다음엔 전남 신안에서 나오는 홍어와 탁주를 놓고 2차 라운드를 열기로. 그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 비금도다.

△이세돌 프로필

- 1983년 3월 2일 전남 신안군 비금도 도고리 출생

- 비금동초/비금중 중퇴

- 5세부터 부친 이수오(아마 5단) 씨에게 바둑 수업

- 1995년 12세의 나이로 프로 입단, 최연소 입단 역대 3위

- 최다 32연승 기록(세계 3위)

- 통산 우승 50회(한국 3위),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 14회(역대 2위)

- 2019년 11월 19일 현역 기사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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