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신흥 강자 다이소, 올리브영 왕좌 노린다

김민지 뉴스웨이 기자 2024. 4. 19. 09: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통 인사이드] 싸고, 많고, 쉽다

● 로드 숍 天下 끝내고 왕좌 차지한 올리브영
● 초저가·균일가·접근성 무기로 떠오른 다이소
● 오프라인·온라인 아우른 ‘옴니채널’ 전략 강화
● 올리브영 이어 ‘K뷰티 성지’ 도약 가능성 有

국내 화장품 시장의 대세가 로드 숍에서 헬스앤드뷰티(H&B) 스토어로 옮겨간 지도 수년이 지났다. CJ올리브영(이하 올리브영)이 '랄라블라(구 왓슨스)' '롭스' '부츠' 등 경쟁업체를 모두 무릎 꿇리고, 야심만만하게 한국 시장에 진출했던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글로벌 뷰티 편집 숍 '세포라'마저 철수했다. 올리브영의 독주를 막을 업체는 이제 없는 듯했지만 최근 떠오르는 신흥강자가 있다. 생활용품 판매점 '다이소'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생활용품을 판매하던 다이소가 어떻게 화장품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나게 됐을까.

‘루이비통 뷰티 편집 숍'도 꺾은 올리브영 저력

2000년대 국내 화장품 시장을 장악한 것은 로드 숍이다. 로드 숍은 자사 브랜드 제품을 가두점에서 판매하는 화장품 매장을 일컫는 말이다. 2000년 에이블씨앤씨는 '뷰티넷'이라는 홈페이지를 열고 '미샤' 브랜드를 론칭했다. 이후 2002년 이화여대 앞에 첫 직영점을 열었다. 미샤는 '3300원'을 내세운 저가 제품과 할인 행사인 '미샤 데이'가 인기를 끌면서 빠르게 세를 불렸다.

그러자 곧바로 비슷한 형태의 로드 숍이 우후죽순 생겼다. 2003년 더페이스샵, 2004년 스킨푸드, 2005년 에뛰드하우스와 이니스프리 등이 차례로 로드 숍을 냈다. 2010년대 로드 숍은 'K뷰티' 인기에 힘입어 황금기를 맞이했다. 2010년대 중반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이 대거 유입됐을 당시 로드 숍은 필수 방문지로 꼽혔다. 쇼핑에 집중한 유커들은 명동 거리에 자리 잡은 로드 숍에 들러 말 그대로 제품을 '쓸어'갔다.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로 거침없는 성장세에 제동이 걸렸다. 중국인 단체 관광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주요 고객인 유커들이 빠지며 대부분 로드 숍의 성장세가 꺾였다. 이후 2019년에는 코로나19로 화장품 시장 자체가 위축됐다.

국내 소비자들이 H&B 스토어로 돌아서기 시작한 것도 로드 숍 쇠퇴에 영향을 미쳤다. H&B 스토어의 인기 요인은 한곳에서 여러 브랜드 제품을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1999년 최초 한국형 드럭스토어로 시작한 올리브영은 17년 만인 2016년 매출액 1조 원을 돌파했다. 왓슨스와 롭스도 H&B스토어 시장 성장세에 힘입어 꾸준히 몸집을 불렸다. 업계에 따르면 2014년 7000억 원이던 H&B스토어 시장규모는 2018년 2조1000억 원까지 증가했다. 로드 숍 쇠락과 시기가 맞물린다.

서울 중구 명동 올리브영 명동타운점. [CJ올리브영]
이 가운데서도 올리브영의 독주가 두드러졌다. 올리브영은 1990년대 후반 이미 오프라인 매장을 내고 H&B 스토어 사업 모델의 지평을 열었다. 뒤늦게 뛰어든 랄라블라나 롭스 등은 올리브영의 선점 효과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결국 랄라블라와 롭스는 2022년 모든 오프라인 매장의 문을 닫았다. 롭스는 현재 롯데마트 내 숍인숍 형태 '롭스 플러스'로 10여 개 점포만 운영하고 있다. 세포라는 5월부터 단계적으로 온라인몰, 모바일 앱 스토어, 오프라인 매장 운영을 종료하며 시장 철수를 진행한다.

CJ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올리브영의 지난해 매출액은 3조8612억 원으로 2022년(2조7775억 원) 대비 4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기준 올리브영의 매장 수(직영+가맹)는 1338개로 2022년(1298개) 대비 40개 늘었다.

초저가·균일가 전략 다이소, 올리브영 대항마로 급부상

박정부 아성다이소 회장. [아성다이소]
세포라마저 백기를 든 국내 H&B 스토어 시장에서 올리브영의 대항마로 떠오르는 곳은 다이소다. 다이소는 창업주 박정부 회장이 1992년 설립한 아성산업이 전신이다. 박 회장은 1997년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아스코이븐프라자'라는 이름으로 1호점을 내며 본격적으로 생활용품 유통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2001년 일본 다이소산교로부터 지분 투자(약 4억 엔·지분 34.21%)를 받으면서 회사 이름이 아성다이소로 바뀌었고, 간판에도 다이소를 달게 됐다.

현재 아성다이소와 일본 다이소산교의 관계는 완전히 청산된 상태다. 아성다이소의 최대주주인 아성HMP가 지난해 12월 일본 다이소산교가 보유한 지분 34.21%를 약 5000억 원에 인수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아성HMP 지분율은 50.02%에서 84.23%로 늘었다.

박 회장은 생활용품 사업에 뛰어들 당시부터 초저가로 판매해도 이익이 남도록 하는 '박리다매' 기본 원칙을 세웠다. 현재 소비자들이 다이소 상품이 저렴하다고 느끼는 이유 역시 균일가 정책에 있다. 다이소는 모든 상품의 가격을 6가지로 책정한다. 다이소 매장에서 어떤 상품을 집어 들었을 때, 그 상품의 가격은 △500원 △1000원 △15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가운데 하나다. 다이소는 5000원이 넘는 상품이나 900원, 1900원인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다이소가 균일가 정책을 20년 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패키지를 최소화하고 마케팅이나 광고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품 유통과정에서 생기는 거품을 줄여 소비자가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이소가 화장품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때는 2022년 4월 네이처리퍼블릭과 협업해 '식물원'을 선보이고 나서다. 지난해 말 기준 다이소는 총 26개 브랜드, 250여 종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모두 소비자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업체들의 제품이다. 기초화장품 브랜드로는 네이처리퍼블릭의 식물원, 제이엠솔루션, 다나한, 동국제약의 마데카21, VT 등이 입점했다.

색조화장품 브랜드는 조성아 뷰티 브랜드인 초초스랩, 클리오의 트윙클팝, 이넬화장품의 입큰, 투쿨포스쿨의 TAG(태그) 등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에는 '닥터지'로 유명한 고운세상코스메틱이 젊은 층을 겨냥한 스킨케어 브랜드 '랩잇'을 다이소에서 먼저 선보였다. 비건 색조 브랜드 '손앤박'도 다이소에 입점하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다이소의 화장품 매출(기초+색조)은 2022년 대비 지난해 약 85% 신장했다. 특히 최근 화제가 된 'VT 리들샷'은 지난해 10월 판매를 시작해 초도입고 물량이 약 2주 만에 완판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VT리들샷이 속한 기초화장품 카테고리 매출은 전년 대비 약 165%나 뛰었다. 이 같은 매출 성장세에 입점 브랜드 화장품 수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21년 브랜드 화장품 입점 수는 4개에 불과했으나, 2022년에는 7개, 지난해엔 19개까지 늘었다.

다이소 약진 비결 = 탄탄한 오프라인 + 온라인 강화

다이소가 올리브영과 비교되는 이유는 '알 만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VT 리들샷이 입소문을 타게 된 것은 올리브영에서 판매하는 리들샷보다 가격이 3분의 1가량 저렴하기 때문이다. 올리브영에서 'VT 리들샷 300' 50㎖는 4만3000원에 팔린다. 다이소에서는 이 제품 12㎖가 3000원이다. 올리브영에서 판매하는 제품과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성분은 같으나, 배합이 다르다. 소비자들이 제품의 효과를 실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훨씬 저렴한 다이소 제품을 먼저 구매해 사용해 본 뒤에 본 제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크다.

이 밖에도 브러시나 틴트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제품이 온라인상에서 비교 대상에 오른 지 오래다. 뷰티 인플루언서들은 이전부터 다이소 화장품으로 '풀메이크업(Full-makeup)'을 하는 콘텐츠를 유튜브 등에 업로드하기도 했다. 다이소 화장품 '추천템'을 공유하는 영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이소가 화장품 시장에서 약진한 이유는 가격뿐이 아니다. 접근성 측면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이소 전체 매장 수는 △2020년 1339개 △2021년 1390개 △2022년 1442개 △지난해 1519개로 계속해서 증가했다. 저렴한 가격, 가깝고 많은 매장 수라는 두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는 온라인에서 저변을 넓히고 있는 쿠팡이나 컬리와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쿠팡과 컬리는 온라인 뷰티 시장에 진출해 중저가에서 고가를 아우르는 브랜드 라인업과 빠른 배송으로 소비자를 모으고 있다. 올리브영 역시 2018년 업계 최초로 즉시 배송 서비스 '오늘드림'을 선보여 온라인 시장까지 저변을 넓히며 세를 확장했다. 올리브영의 매출에서 온라인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늘어 26%까지 성장했다.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은 올리브영이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이다. 온라인으로만 제품을 판매하면 소비자가 실제로 제품을 보고 살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온라인을 통한 화장품 구매가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화장품 시장에서 소비자의 오프라인 경험은 여전히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쿠팡이 '버추얼스토어'로 소비자와의 만남을 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이소의 태생도 오프라인 매장이다. 소비자들은 다이소 매장에서 제품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다. 이렇듯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하면서 다이소는 온라인 부문도 강화했다. 지난해 12월 다이소몰, 다이소 멤버십, 샵다이소를 '다이소몰'로 통합했다. 기존 다이소몰은 오픈마켓 형태로 다양한 판매자가 입점한 형태였지만 현재 다이소몰은 다이소 상품만 판매한다. 그러면서 온라인몰에서 판매하는 모든 상품을 평일 오후 2시 이전에 주문하면 다음 날까지 배송하는 '익일 택배'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울 중구 명동 다이소 명동역점. [아성다이소]

‘제2 올리브영' 도약 가능성 충분

업계는 다이소의 뷰티 시장 확대에 한계가 있다고 바라본다. H&B스토어 시장에서 지배력을 키우기에는 너무 후발 주자인 데다가 판매 제품 종류가 기존 업체 대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태껏 다이소의 성장을 견인한 균일가 전략도 되레 장벽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다이소는 H&B 스토어가 아니다. 다이소가 최근 뷰티 카테고리에 힘을 주고 있다고 하지만 이전부터 H&B 스토어로서 사업을 전개한 올리브영과는 다르다. 다이소는 생활용품에 초점을 맞춰 성장해 왔고, 뷰티는 다이소의 수많은 카테고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균일가 전략도 뷰티 카테고리에서는 장벽이 될 수 있다. 국내 뷰티 업계가 수익성 제고 방안으로 고급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5000원 이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가뜩이나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화장품업체의 수익성 제고에 기여하기는 어렵다.

K뷰티 시장에서 중소 화장품 브랜드가 약진하고 있다는 점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3년 중소기업 수출 동향'을 살펴보면 지난해 중소기업 수출 10대 품목 가운데 1위는 화장품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수출액이 2022년 대비 20.2% 증가해 53억8000만 달러를 찍었다. 중국의 경기침체와 중국 자체 브랜드 공세로 중국 수출은 14.4% 감소했으나, 미국(47.2%), 일본(12.9%), 베트남(28.6%) 등으로 수출국이 다변화됐다.

이는 마녀공장, 조선미녀, 코스알엑스 등 중소기업들이 선전한 결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현지 소비자들이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한국 중소 브랜드 제품이 가성비가 좋다며 입소문을 낸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브랜드 파워보다 후기와 입소문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중소 화장품 브랜드가 가성비를 앞세워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주목받는다는 점을 보았을 때 다이소가 '제2의 올리브영'이 될 여지는 충분하다. 유통시장은 소비자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만큼 변화도 빠르고, 그만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다. 다이소가 'K뷰티 성지'가 되는 일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김민지 뉴스웨이 기자 kmj@newsway.co.kr

Copyright © 신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