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인지 강요인지 모를 사회정의… 군중을 광기로 내모는 시대[북리뷰]

박동미 기자 2024. 4. 19. 09: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관용과 용서는 사라지고, 비난과 복수가 반복되는 시대.

즉 책은 젠더, 인종, 정체성에 대한 지금의 수용 방식이 과연 합의인지 강요인지 질문하며 동시에 냉정한 판단과 자유로운 토론을 촉구한다.

왜냐하면 이 복잡하고 불안정한 문제들이 모여 결국 군중을 광기에 휩싸이게 하는 토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집단적 광기를 포착하는 책은 일견 후련하고, '사회 정의 전사의 시대'를 폭로하는 저자의 통찰력은 탁월하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군중의 광기
더글러스 머리 지음│유강은 옮김│열린책들

관용과 용서는 사라지고, 비난과 복수가 반복되는 시대. 책은 도발적인 분석을 내놓는다. 그 주요한 원인에 이른바 ‘사회 정의’가 있다는 것. 보다 정확하게는 ‘모든 문제’가 논의를 마친, 합의된 ‘사회 정의’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사회적 강요’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논의는 자꾸 ‘추잡’해지고, 더 많은 곤란을 야기하며 오늘날 가장 커다란 분열을 일으키는 쟁점으로 비화된다.

영국의 기자로 정치 평론에서 특히 명성을 쌓아온 저자는 주로 인종 평등, 소수자 권리, 여성권 등을 예로 들어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자유주의가 낳은 이 ‘최고의 산물’들이 때로 ‘평평한 경기장’을 만든다는 미명 아래 어떤 희생을 발생시키고, 또 어떤 불평등을 등장시키는지 말이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미국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이 사망한 사건은 경찰 개혁에서 출발해 백인 전반에 대한 공격으로 바뀌었다. 또 노벨상을 받은 한 저명한 과학자는 ‘남자와 여자가 연구실에서 사랑에 빠진다’고 농담을 했다가 학계에서 아예 퇴출당하고 만다.

그런데 저자는 ‘사회 정의’라고 불리는 대부분이 언뜻 합의된 것처럼 보여도, 그 본질은 실제로 합의될 수 없는 것들이라고 꼬집는다. 즉 책은 젠더, 인종, 정체성에 대한 지금의 수용 방식이 과연 합의인지 강요인지 질문하며 동시에 냉정한 판단과 자유로운 토론을 촉구한다. 왜냐하면 이 복잡하고 불안정한 문제들이 모여 결국 군중을 광기에 휩싸이게 하는 토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합의가 덜 된 ‘사회 정의’는 “의아한 일들”을 만들어낸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 중 하나는 한 집단이 또 다른 집단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일부 사람들에게 과제 해결의 최선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남성은 여성만큼 똑똑하지 않다’거나 ‘백인은 흑인보다 폄하되어야 한다’거나 ‘이성애는 동성애에 비해 약간 따분하다’등의 표현으로 문제를 과장하고 논리의 비약을 일으키는 식이다. 그리고 군중은 이에 동조해야만 하는 ‘광기’ 속으로 내몰린다.

작은 의문도 금물이다. 그는 사회 정의를 방해하는 사람, 사회 불의를 일으키는 사람, ‘혐오자’라는 딱지를 붙이게 된다. ‘올바른’ 견해란 이미 정해져 있으며 ‘깨어 있는(woke)’ 사람들은 ‘그릇된 사고’를 하는 이들을 찾아 눈을 번뜩이고 있다. 비난의 대상을 찾아 검증하고, 공격하고, 조리돌림 해야만 하니까. 이때 안전하고 싶은 본능은 우리를 ‘침묵’ 시키고 그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집단적 광기를 포착하는 책은 일견 후련하고, ‘사회 정의 전사의 시대’를 폭로하는 저자의 통찰력은 탁월하다. 다만 솔직하고 예리한 고찰에도 불구하고, 책은 끝내 그럴싸한 대책을 내놓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아쉬울 정도는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차이를 최소화하는 것은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척하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직시하는 것, 그리고 지금 보이는 풍경이 “더 신속하게 평등한 사회에 이르러야 한다는 압박”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거대한 ‘광기’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440쪽, 2만8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