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의견 듣고 예산 짜는 지자체는 100곳 중 8곳 불과
주민감시 안돼 ‘괴산 가마솥’ 등 예산 낭비 사례 여전
주민참여예산제가 도입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예산 편성 단계 때부터 예산안을 공개하는 자치단체는 100곳 중 8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지역 살림을 짜는 데 주민의 참여와 감시가 보다 폭넓게 보장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나람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전국의 자치단체와 지방의회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 응답 지자체 236곳 중 20곳 만이 의회 의결 전에 전체 예산편성안을 홈페이지 등에 공개하거나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 등을 갖는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8.5%에 불과한 수치다. 특히 이 곳들 중 전체 예산안 내역을 파일 형태로 온전히 공개하는 곳은 8곳으로, 전체의 3.4에 불과했다.
지방의회 역시 예산안 의결 전에 예산 편성안을 공개하거나 설명한다고 답한 곳은 8곳으로 전체의 3.3%에 불과했다. 이렇게 되면 지역 살림을 짜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미리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거의 없게 된다.
의결 전 전체 예산 편성안 공개 여부는 자치단체의 재량이다. 2003년 광주 북구에서 처음 시도된 주민참여예산제는 법제화를 거쳐 2011년 의무화됐다. 243개 자치단체 중 236곳에 주민참여예산위원회가 구성돼 제도 운용에 관한 사항도 심의하고 있다.
그러나 의결 전 편성 단계의 전체 예산안 공개는 의무가 아니다. 법은 지자체가 주민참여예산제를 운영해야한다고 규정할 뿐, 그에 따른 세부 사항들을 조례에 위임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자치단체들은 전체 예산 중 일부만 떼어 내 주민 참여나 주민 공모 예산으로 운영하거나, 특정 사업에 한해 주민 의견을 수렴해 예산을 편성하는 형태로 주민참여예산제를 운영한다. 예산 편성 과정에 주민 참여를 보장한다는 취지로 행정안전부가 구축한 ‘주민e참여’ 시스템에 공개되는 예산도 이런 일부 사업 예산들뿐이다.
그래서 대다수 자치단체의 경우 전체 예산안은 의회를 통과해 확정되고 난 뒤에야 주민들이 확인할 수 있다. 그나마도 확정 예산에 대한 사업별 설명자료를 같이 제공하는 자치단체는 239개 자치단체 중 절반 좀 넘는 129곳에 그친다.
행안부 관계자는 “자치단체장의 의지나 지역 여건 등에 따라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운영 방식과 정도에 편차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방사무인데다 자치권 침해 소지도 있어 정부가 일률적으로 강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예산안 중에는 편성 단계에서 공개될 경우 이익집단이 개입할 우려가 있는 것들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의회 제출 전 예산 편성안 전체를 공개하고 있는 충남 당진시 관계자는 “이권 개입 가능성이 있는 사업의 경우 예산안을 공개하지 않아도 관계자들이 다 알고 민원을 대량으로 넣는다”며 “오히려 전체 예산 편성안이 투명하게 공개되면 반론도 같이 나오기 때문에 특혜 시비가 발생한 적이 아직 없었다”고 했다.
그는 “나중에 뒤탈이 나는 것보단 사전에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게 합리적이고 주민자치라는 측면에서도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구본승 나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의결 전) 사업예산안 공개는 예산안을 이해하고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으로 재정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요건”이라며 “지역 살림을 꾸리는 과정 전반에 주민의 참여와 감시가 보장돼야만 ‘괴산 가마솥’과 같은 예산 낭비 사례를 막을 수 있고, 진짜 살림꾼이 단체장으로 선출될 수 있는 길도 열린다”고 지적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오동운, 공수처장 후보 지명 직후 딸과 ‘3000만원 차용증’ 뒤늦게 작성 논란
-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핵심 신범철, 공수처 소환 임박하자 국민의힘 탈당
- [전문]민희진 “하이브, 뉴진스 보호하고 거짓 언플 멈춰달라”
- 나경원 “또 그 얘기, 고약한 프레임”···이철규 연대설에 불쾌감
- 인감증명서 도입 110년 만에…9월30일부터 일부 온라인 발급 가능해져
- ‘유시민 누나’ 유시춘 EBS 이사장 사무실 압수수색
- 김신영 날린 ‘전국노래자랑’ 한달 성적은…남희석의 마이크가 무겁다
- 이재명 ‘15분 발언’에 당황한 용산··“처음부터 반칙” “얼마나 할말 많았으면”
- 국가주석에 국회의장까지 권력 빅4 중 2명 숙청···격랑의 베트남 정치
- 수능 6등급도 교대 합격···상위권 문과생들 “교사 안 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