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작동’ ‘관저 정치’ 논란 부른 윤 대통령 인사 난맥

김종일 기자 2024. 4. 1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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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양정철 기용설에 尹-홍준표 만찬까지
‘패싱’당한 대통령실 정무라인

(시사저널=김종일 기자)

"이상하다. 국정 쇄신에도 전략이 있다. 국민에게 반성과 쇄신이 효과적으로 전달되려면 콘셉트가 있어야 한다. 즉 형식·내용·순서·방향 등이 서로 맞아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그래야 감동이 생긴다. 그런데 현재까지 나온 쇄신책은 이 모든 게 엉켜있다. 뒤죽박죽이다. 총선의 실패가 재현되고 있다. 오히려 '대통령은 바뀌지 않는다'는 여론이 굳어지고 있다. 지금은 왜 우리가 졌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결정적 순간이다." 

4·10 총선 참패 후 국정 쇄신을 강조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용산 대통령실이 내놓고 있는 다양한 메시지와 대응책 등을 유심히 지켜보던 국민의힘의 베테랑 당직자들은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현재 여권에서는 총선 참패로 인한 후폭풍을 잠재우고자 후속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데, 국민의힘 내부에서 흥미로운 관점이 제시된 것이다. 총선 전에 민심을 돌아서게 했던 주요 요인들이 총선 이후 쇄신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도 반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여권 입장에서는 '아픈 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생 강조하면서 '경제라인' 쇄신은 전무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까지 윤 대통령과 용산이 내놓은 국정 쇄신과 관련한 메시지와 수습책들은 ①방향(비경제 이미지: 정무라인 교체만 하고 경제라인 쇄신 부재) ②내용(오만의 이미지: 반성과 협치 부재) ③형식(불통의 이미지: 대국민 소통 부재) 등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여당 내부에서도 우려를 사고 있다. 특히 여권에서는 쇄신의 첫 단추가 잘 끼워지는지 여부에 향후 국정 운영의 안정성이 달렸다고 본다. 절대적 여소야대 구도에 곧 닥쳐올 '채 상병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등 야당의 파상공세를 막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으로 신음하는 민생경제의 해법을 찾아 밀고 나가려면 성난 민심을 달래고 당·정·대(대통령실)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취재에 따르면, 여권 내부 전략통 사이에서 지금 쇄신의 방향을 두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대목이 바로 인적 쇄신이 '정무라인'에만 집중되고 '경제라인'은 무풍지대로 남아있는 점이다. 지금 인적 쇄신의 초점은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 후임에 맞춰져 있다. 정책실장, 경제부총리나 금융위원장 등의 후임은 거론되지 않고 있다. 총선 참패의 원인이 정무와 전략, 홍보 등 정치적 영역에 있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제시한 국정 쇄신의 핵심에는 '민생'이 자리한다. 윤 대통령은 4월16일 총선 관련 메시지에서 "국정의 최우선은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 셋째도 민생"이라며 "어려운 국민을 돕고 민생을 챙기는 것이 바로 정부의 존재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경제와 민생 부문에서 미흡함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경제 회생의 온기를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확산시키는 데까지는 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다" "정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정책과 현장의 시차를 극복하는 데 부족함이 많았다" 등의 발언이 나왔다.

시사저널이 접촉한 여권 관계자들은 대통령의 메시지와 쇄신의 방향이 불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경제와 정책 파트에 관여했던 한 여권 인사는 "'정권심판론'이 작동한 핵심 요인에는 어려웠던 경제 상황이 자리한다. 대파값 논란이 대표적"이라면서 "지금 용산이 진행하고 있는 인적 쇄신의 방향을 보면, 총선 참패의 원인과 책임, 향후 대책 마련에 경제와 금융 파트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메시지를 사실상 국민 전체에 발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무라인만 교체하면 대통령이 가장 중시한다는 민생과 경제 문제에서 해법이 도출될까. 그 전의 문제점들은 바로잡힐까"라고 반문했다. 국민의힘의 한 당직자는 "대통령은 민생을 중시한다고 하면서 정작 민생과 경제를 담당하는 자리는 내버려두는 인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메시지와 인사 쇄신의 방향 둘 중 하나는 지금 잘못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4월16일 비공개 만찬 회동을 했다. 사진은 지난해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 ⓒ연합뉴스

이동관→원희룡→양정철→장제원…인물난 논란 자초

총선 참패 이후 여권의 후속 대응 중 가장 발 빠르게 나온 방안이 바로 인사 교체 카드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총선 패배 바로 다음 날인 4월11일 사의를 표시했다. 정부 부처와 대통령실을 총괄하는 권력의 두 꼭짓점이 서둘러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자 윤 대통령에게는 일말의 숨통이 트였다. 야당의 '내각 총사퇴' 공세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물론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총선 패배의 원인과 책임'에서 '후임 총리와 비서실장은 누구인지'로 일정하게 옮겨가는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총선 패배의 책임을 두 사람이 떠안고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도 있었다. 

대통령실에서는 선(先) 비서실장-후(後) 총리 후보자를 발표하는 안을 애초 고려했다고 알려진다.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비서실장을 먼저 발표하고, 검증 과정에 시간이 더 필요한 총리 후보자를 이후에 발표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총리·비서실장 인선이 윤 대통령의 국정 쇄신 의지의 첫 가늠자로 여겨지는 만큼 발표는 늦어지지 않을 방침이었다. 그런데 이후 후임 인선의 윤곽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대통령실은 언론에 후임 후보군을 흘려 여론 동향을 탐색하는 방식의 인사 검증을 시도했다. 

정가의 관심은 총리 후보자보다는 대통령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 후임 비서실장에게 쏠렸다. 여권에선 비정치인이었던 전임자들과 달리 윤 대통령에게 전략적 판단과 정무적 조언을 해줄 정무형 비서실장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윤 대통령에게 물러서지 않고 "노(No)"라고 얘기할 수 있는 설득형 비서실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야당과의 관계가 원만한 인사를 기용해 협치 의지도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언론을 통해 처음 흘러나온 비서실장 후보군은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었다. 여론의 반응은 대통령실의 기대와는 반대로 움직였다. 여권과 야권 모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세 사람은 모두 야당과 악연이 있다. 야당에서는 이동관 전 위원장과 이상민 장관을 '언론 장악'과 '이태원 참사'라는 틀 안에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원희룡 전 장관은 이번 총선에서 이재명 대표를 "범죄자"라고 공격했다. 당장 야권은 "국민과 싸우겠다는 건가"라는 거친 반응을 내놨다. 여권에서는 세 사람 모두 자질을 떠나 윤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수족처럼 움직였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과연 윤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며 '노'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표가 제기됐다. "국정 기조를 전환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에 가깝다고 본다"(김재섭 국민의힘 서울 도봉갑 당선자)는 평가도 나왔다. 

이후 여건은 용산에 더 나쁘게 흘러갔다. 인선이 지연돼 '인물난'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실 내부에서 전혀 다른 목소리까지 나오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4월17일 총리와 비서실장에 각각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유력 검토되고 있다는 일부 언론보도가 화제가 됐다. 야권과의 협치를 염두에 둔 구상이지만, 여권 내부의 반발은 거셌다. 두 사람 모두 문재인 정부 핵심 인사라는 점에서다. "많은 당원과 지지자분께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당의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인사는 내정은 물론 검토조차 해서는 안 된다"(권성동 의원), "야당 인사를 기용해 과연 얻어지는 게 무엇인지, 또 잃는 것은 무엇인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권영세 의원) 등의 비판이 나왔다.

논란이 거세지자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검토한 바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실 일부 관계자는 "유력하게 검토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 동일 사안을 두고 일부 다른 입장이 나오면서 외부에 혼선을 준 셈이다. 일각에서는 '비선 논란'마저 제기됐다. 여권에서는 대통령실의 공식 라인이 박영선·양정철 기용설을 아예 몰랐고, 윤 대통령이 최근 관저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의 '관저 정치'가 반복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이 사안은 단순한 일회성 해프닝이 아닐 수 있다"면서 "일부 대통령실 인사가 공식 입장과 다른 의견을 언론에 흘리면서 혼선을 주는 일이 반복된다는 사실은 대통령실 내부 기강이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는 조기 레임덕이 바깥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을 앉힐 수 없고, 기밀이 자꾸 새나가는 것을 꼽았다. 

박영선·양정철 기용설이 충분한 사전 조율 없이 흘러나온 것을 두고 여권에서조차 인물난을 겪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팎에서 협치와 통합을 주문하지만, 힘이 떨어지는 가운데 마땅한 인물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여권에서는 운동장을 넓게 쓰되 '여당 안의 야당' 같은 카드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권 감사까지 했던 이회창 전 감사원장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권에 쓴소리를 자주 했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각각 총리로 발탁했던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하마평이 나온 후보군 면면을 보면, 지금 윤 대통령과 용산은 국정 쇄신의 큰 그림과 콘셉트가 부재한 것으로 보인다. 총선 때처럼 민심과 괴리된 길을 걷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한편 윤 대통령과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4월16일 만찬 회동을 한 사실이 알려져 주목받았다. 홍 시장은 총리 후보로 김한길 대통합위원장, 비서실장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을 추천했다고 한다. 비서실장 임명이 완료되면 윤 대통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회동 준비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무위원 앞 비공개회의에서 한 대국민 사과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제시한 쇄신에서 가장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지점은 바로 형식이다. 우선 타이밍이 늦었다. 윤 대통령은 4·10 총선 후 엿새 만인 4월16일에야 총선과 관련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형식도 국민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더 낮은 자세와 유연한 태도로 보다 많이 소통하고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했지만,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기자회견 방식을 피했다. 대국민 담화 형식도 아니었다. 

대통령의 인식을 두고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민심이 원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16일 낸 대국민 메시지의 주된 내용에는 국정 정책 방향과 기조 설정이 옳았지만, 국민이 체감할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인식이 깔려있었다. 

윤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국민 앞에서 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국민께 죄송하다. 무엇보다도 대통령부터 국민의 뜻을 잘 살피지 못하고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는 비공개회의 때 나온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했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국무회의 비공개회의 때 국무위원들 앞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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