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가면 더 흥미로운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리빙센스 2024. 4. 1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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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으면 모르는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 공간사용설명서 06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과거 이곳에서 스러져간 이들을 기억하고, 오늘날 찾아오는 이들에게 경건함은 물론 예술적 감동마저 선사하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으로 떠난 기행. 아픈 역사를 껴안고 예술로 다시 꽃피운 건축물이 주는 장엄한 아름다움 속으로.

공간의 일부가 되어버린 조각상.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는 실내 전시실은 물론 외부 공간에서도 건축물과 하나 된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 땅은 꽤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잊혔습니다.

이 공간에 서린 아픈 역사를 다시 돌이켜보기 위해

만든 건축물인 만큼 이곳에 켜켜이 쌓인 기억을

꼭 먼저 살펴본 후에 공간을 둘러봐 주세요.

이규상 소장

호서대학교 건축학과 부교수. 2004년도부터 지금까지 보이드아키텍트건축사사무소를 이끌어오고 있다. 세브란스어린이집, 서울대학교 버들골 풍산마당 원형 공연장 등 공공성이 짙은 건축물을 주로 설계했다.

2014년도부터 2019년까지 인터커드 건축사사무소의 윤승현 소장, 레스 건축사사무소의 우준승 소장과 함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완공했다.

앞쪽에는 철도,  왼쪽에는 서소문고가가 자리한 서소문밖 네거리. 2018년 9월 아시아 최초로 교황청 승인을 받은국제 순례지이다. 지상에는 성지를 찾는 천주교 신자와시민을 위한 역사문화공원이, 지하에는 서소문의 역사와 문화를 전달하는 박물관이 자리한다.

조선시대 공식 참형장이자 천주교도를 포함한 수많은 이들이 박해받아 목숨을 잃은 서소문 밖 네거리. 오랜 세월 죽음의 역사가 이어진 이곳은 1974년 근린 공원으로 지정되었지만, 지하의 재활용 쓰레기 처리장과 주변의 철도, 고가다리로 인해 접근성이 떨어지며 마치 버려진 땅처럼 시민들에게 잊혀졌다. 국내 단일 순교지 가운데 가장 많은 성인을 배출한 성지가 이처럼 방치된 걸 안타깝게 여긴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염수정 추기경은 2011년 서울시 중구청에 서소문 공원을 탈바꿈하자고 제안했고,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국제현상 설계 공모가 시작됐다. 294개가 넘는 출품작 중에서 당선된 건 인터커드 건축사사무소, 보이드아키텍트건축사사무소, 레스 건축사사무소 세 팀이 함께 완성한 설계안. 3명의 소장이 공통으로 가장 중시한 건 땅에 서린 아픈 역사를 끌어 안는 건축물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제안한 공간은 순교한 성인의 유해를 모신 '콘솔레이션 홀'과 하늘이 트인 '하늘정원'을 서로 마주 보게 하는 순환구조로 설계해 이 터에서 목숨을 잃은 영혼들이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의미를 담았다. 이러한 의도가 높은 점수를 받아 2014년 본격적으로 디테일한 박물관 설계가 시작됐다. 보이드아키텍트건축사사무소 이규상 소장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처럼 규모가 큰 공공건축물이 대형 건축사무소와 협업하지 않고 작은 규모의 아틀리에 간 연대로 완공까지 맡은 건 국내에서 보기 힘든 사례라고 말했다.

"건물은 설계 단계에서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없어요. 결국 시공에서 설계안을 잘 추슬러야만 완성도 높은 건축물이 나오죠."라는 이규상 소장. 하지만 관공서와 같은 많은 공공건축물이 설계사무소가 아닌 감리 전문 회사들에게 시공 감리를 맡겨버리고, 그 과정에서 비용 절감 등의 이슈로 기존 설계안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국내 공공건축물에서 건축적으로 탁월한 성과를 이뤄낸 프로젝트가 손에 꼽히는 이유이다. 하지만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천주교 측의 도움으로 원 설계자가 시공 과정에 참여하여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보직 이동이 잦은 행정직 공무원이 아닌 천주교 서울대교구 원종현 신부가 관장을 맡고, 실무자로서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는 점 역시 박물관이 지금의 모습이 되는 데 기여했다. 원종현 신부는 지금도 건물에 변화가 필요한 시기마다 각각의 소장에게 의견을 구한다. 또한 3명의 소장 중 천주교 신자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전면에 내세운 전형적인 종교 건축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처럼 이례적인 사례가 모여 완성된 이곳은 개관한 해에만 '2019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 '2019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 부문 본상을 수상하며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뤘다. 이제는 천주교인은 물론 건축적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시민, 건축학도와 미술학도, 사진학도까지 다양한 이들이 찾아 매일 활기를 띠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앞으로도 이 땅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위로하는 종교적 포용력을 발휘하며 시민들의 문화적 소양 제고를 위한 예술적 시도를 이어갈 예정이다.

붉은색 벽돌을 쌓아 완성한 건물의 내벽과 외벽.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나하나 쌓아야 하는 조적식 구조로 이루어진 벽은 보는 이에게 그 노력이 알게 모르게 전해지면서 경건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를 위해 사용한 벽돌은 100만 장에 이르며, 단일 프로젝트로는 국내 최다 규모다.

붉은색 벽돌과 함께 가장 많이 활용한 마감 방식은 노출콘크리트. 흔히 노출콘크리트 하면 매끈한 단면을 떠올리지만, 이곳의 노출콘크리트는 표면이 우둘투둘하다. 이는 완성된 콘트리트 벽의 매끈한 표면을 일부러 기계로 다시 거칠게 재가공한 것으로, 서소문 밖 네거리가 품은 굴곡진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하늘광장은 일부러 벽을 높게 쌓아 주변의 건물을 가리고 시야에 하늘만 보이도록 설계했다. 서울시 건축 심의를 거쳐 기존에 계획했던 벽의 높이보다 3m 정도 낮췄는데도 보는 이를 여전히 압도한다. 드넓은 하늘만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곳에서 관람객은 절대적인 존재를 떠올리고 인간의 작은 존재감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하늘공원과 콘솔레이션 홀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두 공간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은 바닥에 설치한 유리로 덮은 지하 수로. 지하 수로는 서소문 밖 네거리에 흐르던 만초천이라는 하천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 만초천은 1995년 공주차장 건립을 위해 막아버려 현재는 볼 수 없다. 지나간 과거를 잊지 않고 현재의 공간에서 다시 돌아보게 만든 건축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

순교자들의 혼이 서린 콘솔레이션 홀은 어두운 역사를 품은 만큼 조도를 최대한 낮추었다. 동시에 이 땅에 묻힌 혼들이 맞은편의 하늘공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막힌 벽이 아닌 열린 벽으로 복도와 콘솔레이션 홀을 구분 지었다. 처마처럼 생긴 벽은 허리를 숙여야 입장할 수 있는 높이로 설정해 방문객이 더 경건한 마음으로 공간에 들어설 수 있게 만들었다.

조선 후기 화가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필치로 펼쳐낸 금강산의 전경이 콘솔레이션 홀 벽면에 비친다. 이미지가 뚜렷하게 맺히는 스크린이 아닌 철망에 이미지를 상영해 산수화가 은은하게 아른거린다. 순교한 다섯 성인의 유물이 재단 아래에 잠들어 있다.

순교 성인이 묻힌 재단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길은 마치 종묘에서 선왕들의 혼령이 걷는 길인 '선로'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박해받아 세상을 떠난 망자에게 건축가가 바치는 존중의 표현.

지하에 재활용 쓰레기 처리장과 공영 주차장이 있던 서소문 밖 네거리. 효율적인 주차 공간을 위해 만들었던 7.5×8m로 된 정사각형 모듈 구조는 건축물 설계의 모티프가 되었다. 박물관에서는 크기가 다른 정사각형 모듈 구조를 공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드 천장과 정육면체 형태로 된 기둥, 철제 구조물로 공간을 구획한 복도가 바로 그러한 부분.

알코브는 벽에 내장되어 있는 작은 공간을 의미한다. 건축가는 두 벽이 직각으로 만나는 모서리에 완만한 곡선의 벽을 세우고 공간 곳곳에 알코브를 심어 넣었다. 이를 통해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코너를 돌아 새로운 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게 동선을 유도하거나, 별도의 전시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위치 서울시 중구 칠패로5(의주로2가)

운영 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월요일 정기 휴무) 문의 02-3147-2401

CREDIT INFO

editor권새봄

photographer김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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