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7000년 전 아라비아사막에는 지하 마을 있었다

이영완 과학에디터 2024. 4. 19.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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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연구진, 용암 동굴에서 인간 거주지 발굴
사람이 쓴 도구, 동물 뼈와 가축우리도 나와
용암 동굴은 달과 화성 기지 후보 1순위
인체에 해로운 우주방사선 막고 물도 제공
사우디아라비아 움 지르산 용암 동굴에서 과학자들이 손전등을 들고 내부를 탐사하는 모습. 용암 동굴은 최소 7000년 동안 유목민에게 쉼터를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Palaeodeserts project
과학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움 지르산 용암 동굴에서 인류가 최대 1만년 전에 살았던 증거를 발견했다./Green Arabia Project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NGC)이 2016년 방영한 과학(SF) TV 시리즈 ‘마스(Mars)’는 2033년 화성에 도착한 우주인들의 정착 과정을 그렸다. 우주인들은 천신만고 끝에 용암 동굴을 찾아 그 안에 첫 거주시설을 짓는다.

고대인이 드라마의 상상력을 뒷받침했다. 선사시대 인류도 과거 사막의 용암 동굴에서 수천 년 동안 안식처를 마련한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자들은 인류가 지구 밖으로 나가면 역시 고대인처럼 용암이 흐르면서 생긴 지하 동굴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용암 동굴서 석기, 동물 벽화 나와

독일 막스 플랑크 지구인류학연구소의 휴 그로컷(Huw Groucutt) 박사와 호주 그리피스대의 매튜 스튜어트(Mathew Stewar) 박사 연구진은 지난 17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 북부의 사막에서 처음으로 용암 동굴 안에서 인간이 거주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실렸다.

용암 동굴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겼다. 밖으로 분출된 용암은 곧 식어 굳었지만, 지하에는 여전히 뜨거운 용암이 만나는 모든 것을 녹이면서 흘렀다. 용암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거대한 빈 곳이 남는다. 바로 용암 동굴이다.

그로컷 박사가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에 있는 움 지르산(Umm Jirsan) 동굴을 탐사했다. 길이가 1.5㎞에 달하는 이 동굴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큰 용암 동굴이다. 연구진은 그곳에서 최소 7000년에서 최대 1만년 전의 동물 뼈와 석기, 도기 등을 발견했다.

고대인들이 거주한 흔적을 찾은 것이다. 용암 동굴에는 양과 염소가 그려진 벽화도 있었다. 실제로 동굴에서 사람이 머물렀던 거주지와 함께 가축우리 흔적도 나왔다. 스튜어트 박사는 “이 동굴에 사람이 거주했다는 증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 용암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 고대인이 기른 가축을 그렸다. (A) 양 (B) 염소 (C) 소 (D) 산양. 아래 그림은 식별을 위해 연구진이 원래 벽화 그림에 윤곽선을 추가한 모습이다./PLoS One

◇오아시스 오가는 정거장 역할 추정

연구진은 고대인이 용암 동굴을 잠시 머무는 정거장처럼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스튜어트 박사는 “사막은 덥고 건조하지만 용암 동굴에 들어가면 훨씬 시원하다”며 “용암 동굴은 오아시스 사이를 오가는 고대인에게 피난처로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초기 인류의 이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거장을 연결하면 도로를 파악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전역에서 움 지르산과 같은 용암 동굴이 수천 개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는 아라비아반도는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로 이어지는 인류의 이주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과학자들은 15년 이상 이 지역을 발굴했다. 앞서 지상에서 석조 구조물을 발견해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덥고 건조한 기후로 유기물들이 분해돼 연대 측정이 어려웠다. 연구진은 지하 동굴로 눈을 돌렸다. 예상대로 그곳에서 연대 측정이 가능한 유물들이 나왔다.

연구진은 2019년 움 지르산 용암 동굴에서 진행한 첫 발굴 작업에서 하이에나가 살았던 흔적을 발견했다. 하이에나의 먹이였던 새와 토끼, 가젤, 낙타 뼈도 나왔다. 연구진은 동굴에서 사람 두개골 조각도 두 개 발견했다. 스튜어트 박사는 하이에나가 사람을 사냥한 것이 아니라 무덤을 뒤졌다고 추정했다. 그렇다면 그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어야 한다.

예상대로 연구진은 용암 동굴에서 석기에 쓰인 흑요석 조각과 인간의 유골, 동물 뼈들을 찾아냈다. 동물 뼈는 사람이 잡은 사냥감이나 동굴에서 길렀던 가축으로 추정됐다. 실제로 인근 용암 동굴 입구에서 암벽화가 발견됐는데, 사람들이 개와 함께 소와 양, 염소를 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벽화에는 사람들이 영양과 산양을 사냥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었다.

유럽우주기구(ESA) 우주인들이 2016년 스페인 카나리아제도 란사로테섬의 용암 동굴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달과 화성에 있는 용암 동굴은 우주 방사선과 운석을 막아줄 수 있어 우주인의 정착지 1순위로 꼽힌다./ESA

◇달, 화성 거주지 1순위도 용암 동굴

과학계는 이번 발굴이 우주 탐사에도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과학자들은 지구와 마찬가지로 달이나 화성에서도 용암 동굴이 인간이 정착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본다. 대기가 희박한 달과 화성에서는 우주에서 날아온 강력한 에너지의 방사선 입자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인체와 전자장비를 공격한다.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운석도 골칫거리다. 동굴은 방사선과 운석을 차단해줄 자연 보호막이다. 특히 생존에 필수적인 물도 용암 동굴 안에 얼음 형태로 있을 가능성이 크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달 탐사 인공위성은 달의 중력 지도를 만들었다. 지하에 빈 곳이 있으면 밀도가 낮아 중력이 낮게 나온다. 과학자들은 중력이 다른 곳보다 특히 낮았던 현무암 평원에 과거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지하 용암 동굴이 있다고 본다. 나사는 화성에서도 용암 동굴로 이어지는 입구를 찾았다.

달과 화성의 용암 동굴은 지구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이탈리아 파도바대·볼로냐대 공동 연구진은 2017년 유럽행성과학대회에서 지구와 달, 화성의 용암 동굴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위성 정보를 토대로 지구의 용암 동굴은 폭이 최대 30m 정도이지만, 달에는 폭 1㎞의 동굴이 수백㎞에 걸쳐 이어져 있다고 밝혔다. 화성의 동굴은 폭이 250m 정도로 추정됐다.

파도바대 연구진은 “화성 동굴은 우주인 거주시설들이 들어선 거리를 세울 규모이고, 달에는 마을 전체가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세 천체의 가장 큰 차이는 중력이다. 밑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없으면 용암은 계속 부풀어 올라 큰 동굴을 만든다. 달은 중력이 지구의 17%에 불과해 엄청난 규모의 용암 동굴이 만들어질 수 있다. 화성은 중력이 지구의 38%이다.

우주 정착에 필수적인 물도 동굴에서 구할 수 있다. 나사는 2009년 달 남반구의 햇빛이 들지 않은 지역에서 올림픽 규격 수영장 1500개를 채울 수 있는 39억L의 물이 얼음 상태로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과학자들은 용암 동굴은 햇빛을 차단해 물이 얼음 상태로 있기에 좋은 조건이라고 본다.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도 필요하고, 수소와 산소로 분리해 우주선의 연료로도 쓸 수 있다.

용암 동굴은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의 란사로테섬과 하와이섬, 이탈리아 시칠리섬처럼 과거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곳에서 많이 발견된다. 유럽우주기구(ESA)는 이미 달이나 화성의 동굴 탐사에 대비해 란사로테 용암 동굴에서 우주인들을 훈련하고 있다. 유럽우주기구는 2030년까지 달에 우주인 6~10명이 살 기지를 세우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7000년 전 아라비아 사막에 살았던 고대인이 후손에게 우주로 갈 길을 알려준 셈이다.

화성의 성 파보니스 화산(Pavonis Mons) 경사면에서 발견된 구멍. 용암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이다./NASA

참고 자료

PLoS One(2024),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99292

Earth-Science Reviews(2020), DOI: https://doi.org/10.1016/j.earscirev.2020.103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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