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일본이 아니라 중국을 택했을까

남문희 편집위원 2024. 4.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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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6일 북한은 향후 일본과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3월20일, 일본과의 월드컵 예선을 평양에서 치르지 않겠다고 한 이후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해 9월13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북·러 정상회담이 열리는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 도착했다.ⓒREUTERS

지난 3월20일 아시아축구협회(AFC)는 북한축구협회로부터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다.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해 3월26일 평양에서 열기로 한 2026 북중미월드컵 일본과의 예선전 경기를 중립국 경기장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북한이 말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최근 일본에서 감염자가 늘고 있는 ‘연쇄상구균독성쇼크증후군(STSS)’ 유입을 우려해서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일본 측은 회의적이었다. 일본 외무성은 “평양에서 월드컵 예선전을 치르기를 원치 않는 것 같다”라고 막연하게 추측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의 의중이 좀 더 뚜렷해졌다. 3월25일 김여정 부부장이 뜬금없이 기시다 일본 총리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의향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만나고 싶다고 하여 다 만나주는 것은 아니라며 자신들의 주권적 권리 행사에 간섭하지 말고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더 이상 거론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여기까지는 점잖았다. 그런데 그다음 날 담화에서부터 ‘폭주’하기 시작했다. 3월26일 발표한 담화에서 느닷없이 “일본 측과의 그 어떤 접촉도 교섭도 외면하고 거부할 것”이라며 향후 일본과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핵·미사일 현안이라는 표현을 꺼내들며 주권 행사를 간섭하고” 해결이 불가능한 납치 문제를 계속 붙잡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그다음에 계속 이어졌다. 3월29일 리용남 중국 주재 북한 대사가 “지난 3월28일 중국 주재 일본 대사관 관계자가 우리 대사관 참사에게 전자우편으로 접촉을 제기해왔다. 우리는 일본 측과 만날 일이 없다”라고 말한 것이다. 김여정이 기시다 총리의 방북 의사 전달을 밝힌 것도 그렇지만 교섭 상대방의 실무적인 연락까지 까발리는 것은 신뢰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날은 최선희 외무상까지 등장해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향해 “해결할 것이 없는 문제에 집착하고 끝까지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라며 북·일 대화 의사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3월28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P Photo

북·일 관계와 관련한 북한 측의 갑작스러운 폭주의 배경으로 ‘그동안의 사전 물밑 교섭과 일본 고위급의 발언 등을 통해 납북자 문제를 의제로 삼으려는 일본 측의 태도가 완강해 북·일 정상 간 대화 추진이 쉽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과연 그럴까?

북한과 일본은 지난해 3월과 5월, 6월에 만났다. 3월과 5월은 중국과 싱가포르에서 노동당 관계자가 참여한 예비회담이었다. 6월에는 동남아 모처에서 여러 차례 실무회담을 했다. 그동안 쟁점이 되어온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당연히 얘기했고 거기서 모종의 돌파구를 찾았다는 얘기가 북·일 관계 소식통 사이에 알려졌다. 그런 바탕이 있었기에 김여정 부부장이 지난 2월15일 담화에서 기시다 총리의 평양 방문도 가능하다고 했을 것이다.

그 뒤의 추가 접촉에서 새로운 장애가 생겼을 수는 있다. 그런데 일본 측 태도에서 그런 낌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3월20일 북한이 월드컵 예선전을 취소했을 때 일본은 그 이유에 대해 긴가민가하는 눈치였다. 무엇보다 김여정이 기시다 총리로부터 정상회담 제의를 받았다고 발표한 3월25일의 담화에 대해 당시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참석 중이던 기시다 총리는 이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이날 기시다 총리의 방북 의사 전달만 얘기했던 김여정이 이튿날 담화에서는 갑자기 일본 측과 만날 일이 없다고 강경하게 돌아섰다는 점에서 양측의 교섭이 있었다면 바로 이 이틀 사이였을 터이다. 이때 납치 문제 등에 대한 절충이 실패로 돌아가 김여정이 폭주하기 시작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여정은 양측 사이에 교섭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상대방 수장의 방북 의사를 까발리는 담화를 발표하고 상대방은 그런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북·일 정상회담 파탄을 알리는 3월26일의 김여정 담화 후 침묵을 지키던 기시다 총리는 이틀 후인 3월28일 “일·조(일본과 북한) 간 성과를 내는 관계 실현은 쌍방 이익에 합치한다”라면서 정상회담 추진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리용남 주중 북한 대사가 밝힌 일본 대사관 관계자의 접촉 시도가 바로 이날 이뤄졌다. 그로 미루어보아 일본 대사관 관계자는 교섭을 위해서라기보다 총리의 의향을 전하고 북측이 갑자기 왜 그러는지 탐문하기 위해 연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장 방중의 미스터리

북·일 관계의 틀 안에서 보면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북·일 관계를 객체로 놓고 보면 오히려 설명하기 쉬워진다. 지난해 3월과 5월, 6월 북·일 간 접촉이 있었지만 당시 북한 외교의 중점은 북·일 관계가 아니었다. 메인은 따로 있었다. 지난해 3월 왕야쥔 평양 주재 중국 대사의 부임 직후 4·5월에 걸친 북·중 담판이 메인이었다(〈시사IN〉 제860호 ‘기시다가 말한 ‘대담한 현상 변경’은 평양 연락사무소?’ 기사 참조). 당시 북한은 코로나 봉쇄로 북·중 접경지역에 머물던 노동자 약 10만명 송환 이후 같은 수만큼의 재파견 문제와 유엔안보리 제재로 중단되다시피 한 북·중 교역 정상화라는 요구사항을 내걸고 중국과 담판을 벌였다.

특히 북·중 교역 재개는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초부터 심혈을 기울여온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성패가 달린 중요한 문제다. ‘매년 20개 군에 현대적인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해 10년 안에 전국 인민의 초보적인 물질문화 생활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키겠다’는 20×10 정책을 위해서는 많은 양의 원부자재가 필요하다. 북한이 그것을 조달할 곳은 중국밖에 없는데, 안보리 제재로 북·중 교역이 막혀 있으니 그것을 열어달라는 것이다. 사활이 걸린 중국과의 교섭을 앞두고 북·일 접촉을 협상의 지렛대로 사용한 게 지난해 양상이었던 것이다.

지난해 4·5월의 북·중 교섭에서 북한은 중국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북한이 을의 처지였고 더군다나 중국이 국제사회 책임 대국으로서 안보리 제재를 어길 수 없다고 하는 데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후 양상이 변했다. 지난해 9월의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이 더 이상 북한을 무시하기가 어려워졌다. 왕야쥔 대사가 정성일 북한 국가관광총국장과 9월에 만나 “(2024년) 북·중 수교 75주년을 맞아 양국 관광 교류협력이 새롭고 큰 발전을 이루며 양국 관계 발전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믿는다”라고 서로 합의했는데, 이는 곧 2024년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올해 초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서로 친서를 교환하며 올해를 ‘조·중 친선의 해’로 정하기도 했다. 문제는 지난해 불발로 끝난 북·중 교섭이 올해 안에 언제 어떤 형태로 재개되는가이다. 대개 북·중 교섭은 상반기에는 4·15 태양절 전에, 하반기에는 10월10일 당 창건기념일 전에 이뤄진다. 올해 상반기 눈에 띄는 북·중 교섭의 장은 중국-베트남-라오스 순방차 3월21∼22일 중국을 첫 방문지로 다녀간 김성남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 방문단 외에는 없다. 당 우위 국가인 북한에서 노동당 국제부장은 외교부의 수장인 외무상보다 위다. 그러니 그의 방중은 중국 관련 북한 최고위직 인사의 방문이라 할 만하다.

3월21일 김성남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왼쪽)과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만나 담화를 나눴다.ⓒ평양 조선중앙통신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의 이번 방중은 예사롭지 않았다. 노동당 국제부장의 중국 측 카운터 파트너는 류젠차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다. 그런데 방중 첫날인 3월21일 류젠차오뿐 아니라 권력 서열 4위인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이 등장했다. 그다음 날인 3월22일에는 ‘실세’로 통하는 서열 5위 차이치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 겸 중앙판공청 주임과 왕이 외교부장까지 등장했다. 이 중 시진핑 주석의 비서실장 격인 차이치 주임은 중국 내 공식 서열은 5위이지만 당내 통일전선부·조직부·선전부·정법위원회·감찰위원회·공안부를 총괄하는 안보 라인의 수장으로서 실제 위상은 더 높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북한 문제에 관여하는 중국 지도부 내 최고위직이 총출동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으로서는 그리 편한 자리가 아니었다. 지난해 교섭의 연장선에서 보자면 국제사회 책임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 입장에서 들어주기 곤란한 요구사항에 맞닥뜨려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도 이렇게 최고위급들이 다 나온 것은 중국 측에서도 절박한 뭔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북·일 관계다. 그리고 배후에서 어른거리는 미국의 그림자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 객원교수가 3월25일자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평양에서 열릴 3·26 북·일 축구 예선전에는 일본 외무성 관계자 14명이 파견될 예정이었다. 파견팀 단장은 외무성 정책과장이 맡았다. 이들 외무성 팀은 2011년 11월 평양에서 열린 북한 대 일본 경기 당시와 같은 방식으로 북측과 접촉할 예정이었다. 당시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 담당 대사와 북한 외무성 일본 연구소 연구원들이 고려호텔에서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연 바 있다. 양측은 2월부터 이와 관련한 사전 협의를 진행해왔다. 2월이라면 김여정이 2월15일 담화에서 기시다 총리의 평양 방문 가능성을 언급한 시점이다. 그러고 나서 3월26일 평양에서 축구경기와 별도로 북한 내 북·일 국교정상화 담당 최고 실무자인 송일호 대사까지 참여하는 양측 접촉이 이뤄진다면 그 목적은 단 한 가지, 기시다 총리의 방북과 북·일 정상회담을 위한 것이다. 양측은 지난해 접촉 과정에서 북한에 거주하는 납북 일본인 한두 명의 송환을 위해 기시다 총리가 방북하고 후속 조치로 납북자 추가조사를 위해 일본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진출하는 밑그림을 그린 상태다.

미국도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대양주 담당 선임보좌관은 3월4일 〈중앙일보〉-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포럼 특별대담에서 “미국의 목표는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면서도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 중간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중간 조치’는 통상 북한의 핵 동결 혹은 감축에 상응해 대북 제재 일부 완화 등 대가를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 박 국무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는 3월18일(현지 시각) CSIS 팟캐스트 프로그램에서 북한과 제재 문제에 대해 얘기해볼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측의 잇따른 대북 유화 메시지는 곧 기시다 총리의 평양 방문을 염두에 둔 북·미 대화의 허들 낮추기다. 기시다 총리는 4월10일 미국을 방문해 북·일 수교 배상금 관련 논의를 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일본 측 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미국과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 미국은 미국대로 기시다의 평양행을 북·미 대화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중국 안심시키려는 발언?

미국이 꿈꾸는 것은 2018년 평창 모델일 터이다. 당시는 남북 관계가 북·미 대화를 견인했다. 이번에는 북·일 관계가 서울이 아닌 평양을 무대로 그 역할을 대신한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중국 외교는 어떻게 될까. 남·북·미 접촉이 활발했던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중국 외교는 지옥을 맛보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면 그보다 더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미국 대선 직후 첫해가 되는 내년은 2027년까지 예상되는 타이완해협 분쟁의 입구가 될 것이다. 일본 〈문예춘추〉 2월호에는 트럼프가 올해 미국 대선에서 승리해 ‘하나의 중국’ 정책을 폐기할 것을 상정한 중국 측 대응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국가통일법’을 제정해 타이완의 영토·영해·영공을 중국령으로 선언하고 해양경찰을 동원한 임검(臨檢)과 중국 군의 해상 군사훈련을 통해 타이완해협 일대를 봉쇄한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선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와 역할이 중국 입장에서는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북한이 무력시위로 주한 미군을 붙잡아두면 최선이다. 반대로 평양에 일본 연락사무소가 들어서고 미국과 일본이 평양까지 진출하면 최악이다. 배후에 적을 두는 상황이니 어떻게 해서라도 막아야 한다. 내년부터 펼쳐질 동북아의 격랑에서 타이완해협이 주전선이라면 승부처는 바로 한반도다. 특히 올해 한반도의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가에 타이완해협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1월1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평양 조선중앙통신

이 같은 정세 인식을 배경에 놓고 보면 3월21일부터 시작된 김성남 부장 방중 전후로 북·일 관계가 타깃이 된 이유가 분명해진다. 북한이 평양 월드컵 예선전을 김성남 부장 방중 하루 전인 3월20일 전격 취소한 데에는 중국 측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중국은 최고위층들이 김 부장 영접에 나선다는 점을 강조하며 기시다 총리 방북을 위한 막후 교섭의 장으로 눈엣가시인 월드컵 예선경기 취소를 압박했을 것이다. 이후 김 부장은 이틀간 중국 측 최고위층들과의 접촉에서 “‘조·중(북·중) 우호의 해’가 양국의 영역별 교류·협력을 촉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중 교역 정상화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반면 중국 측 요구는 왕후닝의 “단결·협력을 심화하고,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며, 평화롭고 안정적인 외부 환경을 함께 만들어갈 용의가 있다”라는 말에 집약돼 있다. 정치·군사·안보 협력에 방점이 찍혔다. 김여정이 기시다의 방북 의사를 흘린 3월25일은 그 뒤에 이어진 후속 회담이 막바지 고비에 처했을 때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일본과 더 이상 만날 일이 없다고 한 것은 전날 교섭이 북한이 원하는 대로 잘 끝났음을 보여준다. 일본이 연락해왔지만 어떤 급에서도 접촉하지 않겠다는 리용남 대사나 최선희 외무상 발언 역시 중국을 안심시키는 내용들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짚을 대목이 있다. 북한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일본이 아닌 중국을 택한 결정적 이유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바로 평양종합병원 진단설비 지원 문제였다. 평양종합병원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3월 김정은 위원장이 민심 수습의 일환으로 밀어붙였지만 고가의 진단설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서 그동안 개원을 못하고 있었다. 지난해 5월 북·일 교섭 과정에서 북한 측이 일본 측에 일제 진단설비 지원을 타진한 바 있다고 한다. 일본 측은 검토해보겠다고 했지만 최종적으로 들어줄 수 없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지난 1월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에 평양종합병원을 완공하여 개원하겠다”라고 말했다. 일본 대신 중국이 진단설비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북한에게 일본 수교 자금은 먼 미래의 일인 반면 진단설비는 당장 눈앞의 현실이다. 누구 손을 잡을지 승패가 이미 결정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일 수교 카드가 완전 폐기됐다고는 볼 수 없다. 중국이 하는 걸 봐서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다.

남문희 편집위원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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