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다 함께 씩씩이를 살렸습니다” [사람IN]

김다은 기자 2024. 4.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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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태어난 고양이 씩씩이는 얼마 전 죽을 고비를 넘겼다.

홍제천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상공에서 나는 가느다란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 씩씩이를 발견했다.

'저 고양이는 이제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죽게 되는 건가요? 눈앞에 있는데 정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나요?'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아이도, 학생들도 매일 씩씩이의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씩씩이는 박병욱씨 집의 셋째 고양이로 입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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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박병욱씨와 고양이 씩씩이. 씩씩이는 고가도로 아래 그물망에 나흘간 갇혀 있다가 구조됐다. ⓒ시사IN 조남진

두 달 전 태어난 고양이 씩씩이는 얼마 전 죽을 고비를 넘겼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을 가로지르는 20m 높이의 고가도로(내부순환로) 아래에 나흘간 갇혀 있었던 것이다. 홍제천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상공에서 나는 가느다란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 씩씩이를 발견했다. 3월16일, 아직 도톰한 겉옷을 입어야 하는 쌀쌀한 초봄이었다. 밤에는 4℃까지 기온이 떨어졌다. 어미 없는 새끼 고양이가 밥도 물도 없이 홀로 견디기엔 추운 날씨였다.

주말 내내 중고거래 앱 ‘당근’의 동네생활 게시판에는 씩씩이를 구조할 방법을 찾는 글이 올라왔다. 며칠 새 조회수가 2000이 넘었다. ‘민원을 넣었는데 인명구조가 우선이라 장비 사용이 어렵다고 한다.’ ‘동물단체들도 구조가 어렵다고 한다.’ 기대와 우려 속에 이런 댓글도 달렸다. ‘저 고양이는 이제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죽게 되는 건가요? 눈앞에 있는데 정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나요?’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아이도, 학생들도 매일 씩씩이의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30여 년간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친 박병욱씨(61)는 홍제천을 지나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고가 아래에 고양이가 갇혀 있어서 구조 요청을 했다고 했다. ‘곧 살겠구나’ 하고 지나쳤다. 다음 날 그곳을 다시 찾은 박씨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의아했다. 혹시 몰라 구청에 연락을 했다. 구청에서는 고양이를 구조할 계획이고, 구조 후에는 자연 방사를 할 거라고 했다. “오래 굶고 다친 어린 고양이가 구조된다 해도 길고양이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죠. 입양 전까지 제가 임시 보호를 하겠다고 말해두고 구조 당일 현장에 갔습니다.”

씩씩이가 갇힌 지 나흘이 되던 3월19일, 소방대원들이 구조를 시작했다. 이날 오전 10시30분에 현장에 도착한 박씨는 저녁 6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구조 과정은 길고, 힘들었다. 고가도로 일부를 막고 소방대원들이 뜰채를 집어넣어 고양이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겁을 먹은 고양이는 이리저리 달아났고 결국 포획틀만 설치한 채 소방대원들은 철수했다. 지켜보던 주민들의 실망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 어린이가 작은 목소리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저 고양이 이제 죽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박병욱씨는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문득 이사할 때 부르는 사다리차가 떠올랐다. 높이가 닿지 않아 사다리차를 두 번이나 다시 부른 뒤, 박씨는 직접 사다리차에 올랐다. “그물망 사이로 눈이 딱 마주쳤는데 놀라서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어요. 그래도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었는지 결국 제 손에 잡히더라고요. 주민분이 준 고양이 간식이 있어서 그걸 내밀었더니 자길 해치러 온 건 아니구나 싶었던 것 같아요.”

씩씩이는 박병욱씨 집의 셋째 고양이로 입양됐다. 첫째는 품바(4), 둘째는 자몽(3)이다. 박씨는 자신이 씩씩이를 도운 게 아니라, 씩씩이가 오히려 자신에게 큰 선물을 줬다며 말했다. “살면서 앞으로 이렇게 칭찬을 많이 들을 일이 있을까 싶어요. 제 평생에 들을 수 있는 고맙다는 말은 다 들은 것 같습니다. 저희 집 아이들이 ‘아빠, 이런 사람이었어?’ 하면서 제가 다르게 보인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주민들은 사비로 구조 경비를 지불한 박씨를 위해 모금을 했다. 박씨는 모인 돈을 전부 동물구조단체에 후원했다. 그는 ‘생명을 살리는 일’은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혼자는 힘들다. ‘함께’일 때 가능하다. “주민분들이 다 같이 응원하고, 걱정하고, 관심을 가져줬기 때문에 저도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씩씩이가 구조될 때 옆에서 좋아해주던 어린이들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추위와 배고픔, 두려움을 씩씩하게 이겨냈다는 뜻으로 박병욱씨는 고양이에게 씩씩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시사IN 조남진
현재 왼쪽 앞발을 다쳐 치료받고 있다. 그 외에 건강에 이상은 없어 잘 먹고, 잘 논다. ⓒ시사IN 조남진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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