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정의당의 퇴장, 김준우 대표 “함께 해법 찾겠다”

이은기 기자 2024. 4.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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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정의당이 원외정당으로 밀려났다. 경기 고양갑에서 5선 도전에 실패한 심상정 의원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민주당과 손잡은 진보당은 3석을 얻어 녹색정의당과 결과가 엇갈렸다.
4월10일 녹색정의당이 0석이라는 출구조사가 발표된 가운데 김찬휘(앞줄 왼쪽 두 번째)·김준우(앞줄 왼쪽 세 번째) 녹색정의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심상정 의원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5선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이번 총선에서 심상정 녹색정의당 의원(경기 고양갑)은 18.4%로 낙선했다. 김성회 더불어민주당(민주당) 후보(45.3%), 한창섭 국민의힘 후보(35.3%)에 이어 3위다.

정치인 심상정은 한국 진보정당이 낳은 최대 정치 자산이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제17대 국회에 입성했다. 제19~21대 총선에서는 지역구에서 내리 세 번 당선됐다. 진보정당 소속으로는 유일한 4선 정치인이다.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는 진보정당 역대 최고 득표율 6.17%(202만 표)를 얻었다. 그런 그가 “진보정당의 지속 가능한 전망을 끝내 열어내지 못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2004년 비례대표 1번 심상정을 필두로 원내에 진입한 민주노동당(녹색정의당 전신)도 20년 만에 국회에서 자리를 잃었다. 이번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이 받아든 성적표는 정당 투표 득표율 2.14%(61만 표)다. 3% 이상 득표해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는다. 4년 전 총선에서 정의당은 9.7%(270만 표)를 얻었다.

녹색정의당 입장에서는 최악의 결과다. 당장 이번 선거에서 전면에 내세운 기후정치, 노동정치, 성평등 정치를 실현할 녹색정의당 국회의원이 사라졌다. 현실적인 문제도 남았다. 현재 녹색정의당이 진 부채는 3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당에서는 선거 때마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선거비용 일부를 후보자에게 지원해왔다. 제21대 총선 당시 지역구 후보자 75명을 냈지만, 대부분 선거비용을 보전받지 못하면서 빚이 쌓였다(득표율 10% 미만이면 선거비를 보전받지 못한다). 의석수에 따라 받던 국고보조금도 더는 받을 수 없다. 중앙당 당직자와 시도당 당직자를 대폭 감축해야 한다. 당의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녹색정의당을 향한 경고음은 제21대 국회 내내 울렸다. 정의당(녹색정의당 전신)은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 2.37%, 2022년 지방선거에서 9석(2018년 지방선거 37석)을 얻는 데 그쳤다. 지난해 10월11일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는 권수정 당시 정의당 후보가 1.8%를 득표하는 데 머물렀다.

제22대 총선을 불과 5개월 앞둔 지난해 11월, ‘정치 신인’ 김준우 변호사가 비상대책위원장(대표)을 맡으며 구원투수 역할을 자처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때부터 평당원이던 그는 “우리 사회에 진보정당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 위기의 당을 우리 공동체가 같이 살려보자는 마음”이라고 했다. 당초 정의당은 노동당·녹색당·진보당과 ‘선거연합정당’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2월3일 정의당은 녹색당과만 선거연합정당을 꾸리고 녹색정의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선거를 겨우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4월11일 심상정 의원이 정계 은퇴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은주 전 의원과 포옹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진보정당 뿌리가 흔들렸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의 등장은 1970~1990년대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학생운동 같은 사회운동의 성과가 집약된 결과였다. 사회운동 자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성장해온 활동가들이 각 지역에 포진해 있었다. 동네별로, 공장마다 ‘분회’라고 불렸던 민주노동당 당원 모임이 촘촘하게 조직됐다.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우리 사회를 바꿔보려는 열망에 가득 찼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2000년대 진보정당 한가운데서 활동했던 강상구 노회찬정치학교 교장의 말이다.

진보 정치는 사회운동과도 달랐다. 진보적 가치를 지켜가면서도 구체적인 현실의 조건을 고려해 정치적 성과를 만들어내야 했다. 합의와 타협을 하는 진보정당 정치인에게는 쉽게 ‘우경화’ ‘배신자’라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진보정당은 “상대가 망해야 내가 사는 것은 전쟁이지 정치가 아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 그것을 진보가 해야 한다”라던 정치인 노회찬과 함께 20년간 양당 구도에 균열을 내왔다.

녹색정의당은 이번 선거를 ‘진보정당의 존재 의의를 확인하는 선거’라고 규정했다. 녹색정의당의 진보 정치란 “소외되고 배제된 시민들, ‘6411 버스’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 투명 인간들의 곁을 지키는 일(김준우 대표)”이다. “존재를 부정당하고 권리를 잃어버린 시민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응답할 정치세력”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강상구 교장은 “진보정당이 새롭게 등장한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들과 더 긴밀하게 결합하지 못하고 뿌리가 흔들렸다”라고 짚었다. 페미니즘,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에 다양한 불평등이 교차하는 지점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했다”라는 의미다. 진보정당 건설의 동력이자 당원들의 자부심이던 지역 기반이나 대중조직 같은 ‘대중적 저변’도 지난 20년간 점차 쪼그라들었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민주노동당, 이후 진보신당에서 활동했다. 그는 “(이번 결과가) 녹색정의당만의 책임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전반적인 사회운동의 토대가 양당 중심으로 쓸려가면서 무너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2004년 5월31일 민주노동당 의원단과 보좌진이 제17대 국회 개원을 맞아 국회 본청 앞에서 ‘국민에게 드리는 감사와 다짐’을 발표하고 있다. ⓒ시사IN 포토

최전선에서 이번 총선을 치른 이들은 지난 4년간 녹색정의당의 역량 부족을 이야기했다. 김준우 대표는 “녹색정의당이 현실의 어려움을 핑계로 가끔은 여의도 문법에 흔들리기도 했다”라고 반성문을 썼다. 당 내부에선 지난해 2월 이른바 ‘쌍특검(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및 대장동 50억 클럽 관련 의혹 특검)’ 국면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당시 정의당은 민주당이 당론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에 태우려던 ‘쌍특검’ 법안에 제동을 건 뒤, 실효성을 이유로 비슷한 특검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과정에서 설득력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종현 녹색정의당 선대위 전략미디어본부장은 “당의 체력도 떨어져 있었지만, 총선을 준비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혼란과 분열이 반복됐다”라고 말했다.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류호정 전 의원은 정의당을 향해 ‘민주당 2중대’라고 비판하며 1월15일 탈당을 선언했다. 이후 금태섭 전 의원이 이끄는 새로운선택에 합류했지만, 새로운선택이 개혁신당과 합당하면서 개혁신당 소속으로 경기 성남분당갑에 출마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3월22일에는 “제3지대 정치는 실패했다”라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의당(만)으로는 안 된다’라며 당을 떠난 사람은 류호정 전 의원만이 아니다. 박원석 전 의원·배복주 전 부대표(새로운미래), 신장식 전 사무총장·김종민 전 사무부총장(조국혁신당), 한창민 전 부대표(더불어민주연합) 등 당에서 주요 역할을 하던 인사들이 줄줄이 떠났다. 한 녹색정의당 관계자는 “결국 낙선만 거듭했던 윗세대 진보 정치인의 삶을 반복하고 싶지 않고, 더는 당에서 자신의 정치적 전망을 찾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노동 중심성이든 진보적 가치든 당의 구심점이 형해화되면서, 그걸로 묶여야 할 사람들이 튕겨 나가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녹색정의당은 ‘정의로운 정권심판’을 외치고 꼼꼼하게 기후·노동·성평등 정책을 내놓는 한편, 김준우 대표를 필두로 한 새로운 인물들로 당을 향한 냉소와 불신의 시선을 바꿔내려 했다.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출신 나순자 후보(1번), 김옥임 농민 후보(5번), 대기과학자 조천호 후보(8번) 등이 녹색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로 합류했다. 장하나 전 민주당 의원은 ‘거리의 변호사’ 권영국 후보(4번) “단 한 사람”을 지지하기 위해 20년의 민주당 당적을 정리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하루 앞둔 4월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상상마당 앞에서 열린 녹색정의당 서울 마포을 장혜영 국회의원 후보의 마지막 유세를 지켜보는 녹색정의당 지지자들. ⓒ시사IN 이명익

0석은 완전히 다른 문제

지난 4년간의 녹색정의당 의정 활동은 당내에서도 ‘이념 및 정체성이 선명하지 않다(29%)’ ‘정책 차별성이 뚜렷하지 않다(17.4%)’는 평가(2022년 7월 당원 대상 여론조사)를 받았지만, 한편에서는 길을 만들어왔다. 3월29일 전세사기 피해자 25명은 “함께해주고 같이 울어주고 보듬어준… 서민을 대변할 수 있는 당이 꼭 필요하다”라며 녹색정의당에 입당했다. 최유경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수석부지회장은 “무급노동과 임금꺾기, 임금체불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일하던 우리가 녹색정의당을 만나서야 노동자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라고 지지를 호소했지만, 반향은 크지 않았다.

민주당과 손잡은 진보당은 녹색정의당과 결과가 엇갈렸다. 진보당은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합류해 비례대표 2석을 얻었다. 민주당 후보와의 경선 끝에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한 지역구(울산북)에서도 1석을 얻었다.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는 “다시 진보 정치의 밭갈이를 시작하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단병호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시사IN〉과 만나 진보당이 진보 정치의 길을 이탈했다고 비판했다. “거대 양당에 기생하지 않고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추진해온 게 그간 노동 정치, 진보 정치의 본질이다. (위성정당에 합류한) 진보당은 노동자, 진보 정치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반정치개혁적인 행보를 보였다.”

4월10일 ‘녹색정의당 예상 의석수 0석’이라는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가운데 녹색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 농민 후보 김옥임씨(오른쪽)가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출신 나순자 후보를 꼭 끌어안았다. ⓒ시사IN 이명익

‘위기’라는 꼬리표는 줄곧 진보정당을 따라다녔지만, 0석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김준우 대표는 4월11일 녹색정의당 선대위 해단식에서 “현시점에서 즉각 사퇴보다는 5월 차기 지도부 선출 때까지 대표로서 역할을 다하는 게 책임감 있는 자세라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해단식을 마친 김준우 대표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지금은 섣불리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6411 버스’를 가슴에 새기면서도 구체적 실현 경로와 방법에 대해서는 전당적 토론과 외부의 목소리 경청이 필요한 시점이다. 진보정당의 토대가 침식된 건 구조적인 문제와 지난 4년간 원내 정치의 부족함이 응축된 결과다. 하나하나 다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결 방안의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지도 중요하다. 함께 토론하고 결단할 과제다. 현실적으로는 당원을 늘리고, 진보 정치에 공감하면서도 진보정당 반 발짝 바깥에 있는 분들이 결합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진보정당에 냉소적이었지만 이렇게 가다간 정말 독립된 진보정당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큰 분들부터 먼저 만나서 함께 해법을 찾아가려고 한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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