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iN]'심해수'·'오!단군' 노미영 작가 "고향에서 인정받은 기분"

CBS노컷뉴스 김민수 기자 2024. 4. 1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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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세계관과 뛰어난 작화력으로 단숨에 화제
일본만화 시장 진출 대표작 '공각기동대 어라이즈'
2018년 국내 복귀 "만화시장 지켜준 작가들에 감사"
한국만화가협회 산하 웹툰작가협회 이사로 활동
웹툰 '오!단군'의 노미영 작가. 김민수 기자


만화계 입문 25년 차의 중견 노미영 작가는 인터뷰 내내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눈을 반짝거렸다.

2018년 각종 만화·콘텐츠상을 휩쓴 수작 웹툰 '심해수'의 마보타·카나 등신대가 노 작가의 스튜디오 방문을 맞았다. 올해 1월부터 네이버웹툰에서 새롭게 연재 중인 '오!단군' 마감 작업 중인 직원들의 손놀림은 고요하면서도 섬세했다.    

그의 만화 인생은 짝사랑이었다. 순정만화가의 꿈을 키웠던 노 작가는 중학교 시절 80년대 대표 순정만화가였던 김영숙 작가를 동경해 무작정 문하생이 되고 싶다며 편지를 썼다고 한다. 어린아이의 치기로 생각했을까, 답은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만화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더 커졌지만 부모님의 반대는 더 컸다. 90년대 후반 출판만화 시장은 어려웠고 '불건전'하다는 사회인식도 여전했던 시절이었다. 진로를 고민하던 수험생의 마음은 흔들렸다. 용케 조카의 마음을 알았던 삼촌이 흘리듯 "공주에 만화학과가 있는 대학이 있다더라"는 말에 원서를 넣어 보기 좋게 합격했다.

대학을 졸업 후에는 팬이자 '리니지' 연재 중이던 신일숙 작가(현 한국만화가협회장)의 문하생에 지원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게임회사에서 잠시 일했던 그는 공모전에 다시 도전한다. 당시 대표 순정만화 월간지였던 '화이트'에 원고를 냈지만, 편집자로부터 소년만화에 도전해보라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저는 어릴 때부터 순정만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제 그림체가 소년만화에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죠. 그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년만화 잡지를 처음으로 샀는데, 그게 '영챔프'였어요."

1999년 단편 만화 '싸이코'로 대원신인만화대상에서 당선됐지만 연재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1년 정도 기다린 끝에야 새롭게 창간된 소년만화 월간지 주니어챔프에 고려사를 배경으로 한 역사판타지 '살례탑'을 연재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잡지가 폐간되며 완결하지 못했다. 노 작가는 데뷔작에 대한 아쉬움이 커 마무리 작업을 거쳐 따로 단행본을 출간 한다.

노미영 작가의 데뷔작 '살례탑'. 노미영 작가 제공


'살례탑'은 우연히 고려시대 대몽항쟁기로 타임슬립한 주인공이 고려군의 장수가 되어 고려를 침공한 몽골 장수 살리타이와 대결을 펼치는 내용이다.

출판만화 시장이 저물며 당장 먹고 살 길이 갈급했던 노 작가는 학습만화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주로 역사 만화를 그리며 틈틈히 작품을 구상하던 노 작가에게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다.

일본 출판사 아키타쇼텐이 발간하는 만화잡지 플레이코믹의 편집자가 작화를 맡아 줄 한국 만화가를 찾고 있다고 했고, '살례탑' 단행본을 일본으로 보내 호응을 이끌어냈다. 10년간 이어진 일본 만화계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심해수'·'오!단군'의 스토리를 쓴 이경탁 작가는 노 작가의 남편이다. 같은 대학 만화학과 CC(캠퍼스커플)이었던 그는 졸업 후 게임 회사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며 다른 길을 걸었지만, 노 작가의 권유로 퇴사하고 함께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로봇과 기계, SF를 좋아했던 이 작가는 2006년 제1회 SICAF 다음웹툰 공모전 '떡볶이'로 아이디어상 수상, 편의점용 만화 '2030코믹스'에 '아스팔트위의 앨리스' 연재, 일본 '플레이 코믹'에 한국 형사를 소재로 한 '형사 기토' 스토리 작가, 2012년 일본 월간지 히어로즈 공모전 '본 네크로멘서' 스토리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노 작가의 일본 진출은 순항하는 듯 했지만 일본 만화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일본 공모전에서 당선작을 냈지만 연재처를 찾지 못해 출판사를 찾아다니기 일쑤였다. 그러다 노 작가의 원고를 본 일본의 유명 출판사 고단샤 편집자가 인기 애니메이션이자 만화 '공각기동대' 프리퀄 작품에 함께 참여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어려운 제작진 면접 과정을 거쳐 결국 '공각기동대 어라이즈' 정식 작화가로 선정됐다.

웹툰 '심해수'·'오!단군'의 노미영 작가. 김민수 기자


'심해수'의 시작도 일본 인기 만화 '진격의 거인'의 대히트로 일본 만화 업계에서 크리처물이 각광을 받으면서 일본 편집자의 제안 때문이었다. 크리처물에는 관심이 없던 이 작가는 거절했지만 그의 노트에는 잠수함과 잠수복 스케치가 가득했다고 한다. 두 부부 작가는 처음으로 의기투합해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디젤펑크와 수상 크리처를 결합한 '심해수'를 함께 기획한다. 하지만 일본 편집자가 다른 일을 맡게 되면서 '심해수'는 좌초 위기에 몰린다.  

황혼기를 맞았던 한국 만화시장은 2010년 전후 웹툰이라는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며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었다. 먼저 중소 플랫폼인 투믹스 측에서 적극적인 러브콜이 왔다. 두 부부 작가는 그렇게 한국에 복귀작 '심해수'를 론칭하고 2018년 한국 SF 어워드 대상 수상, 부산 웹툰 페스티벌 웹툰 어워즈 골든 브릿지 수상, 오늘의 우리만화상 선정에 이어 2019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하며 국내 웹툰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신작 '오!단군'은 올해 연재와 동시에 AI 논란에 휩싸일 정도로 화려하고 뛰어난 작화로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 복귀 첫 작품으로 2018년 최고의 찬사를 받은 해상 크리처물 '심해수'와 올해 네이버웹툰 연재와 동시에 화제를 모은 '오!단군'의 노미영 작가를 노컷뉴스 [만화인]이 만났다.

이경탁·노미영 작가의 웹툰 '심해수'·'오!단군' 타이틀

순정만화가 꿈꿨지만 소년만화 조언에 인생 반전  

- 올해 1월부터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인 '오!단군'이 AI 논란을 부를 정도로 뛰어난 작화로 화제를 모았다.  

= 그렇게 봐주신 분들이 계셨다.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오!단군'은 단군신화라는 한국 전통 스토리를 모티브로 인간이 되지 못한 짐승들과 귀신, 요괴가 곳곳에서 등장하는 코믹과 판타지, 퇴마액션을 더한 현대판 '미녀와 야수' 이야기다. 주인공 나래와 견우가 여러 요괴들을 만나고 악귀를 사냥하면서 진정한 사랑과 인간의 의미를 찾아가는 성장물이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에서 역사물과 현대물, SF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들을 그렸다. 내 그림에 욕심을 내기보다 작품 스토리에 어울리는 캐릭터나 그림체를 표현하려고 계속 바꾸며 노력했던 것들이 독자분들께서 좋게 보셨던 것 같다.  

- 벌써 데뷔 25년차다. 대표작인 전작 해상 크리처물 '심해수'를 통해 큰 주목을 받았는데, 일본에서의 활동이 많았다.

= 1999년 대원 신인만화대상 공모전에서 '싸이코'라는 단편으로 당선돼 2000년 월간 소년만화지 주니어챔프에서 고려 대몽항쟁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 판타지 '살례탑'을 연재했다. 출판만화 시장이 저물던 시기여서 잡지가 폐간되며 연재는 마치지 못했다. 이후 따로 작품을 완결해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이후에 먹고 살기 위해 학습만화 일을 꽤 했는데, 인연이 있던 편집자로부터 일본에서 한국 만화가를 찾는다는 얘기에 '살례탑'을 보내자 현지서 마음에 들어 했다.

2008년 '검은 사기'라는 인기 작품의 일본 스토리 작가가 '갱스터즈'라는 새 만화를 연재하는데 한국인 작화가를 원한다고 하더라. 일본 야쿠자와 한국인 형사가 등장하는 작품이어서 한국 문화를 잘 아는 작가와 함께 만들고 싶어했다. 이후 일본의 유명 출판사 고단샤(講談社)를 통해 공각기동대 원작 전의 이야기를 다룬 프리퀄 작품 '공각기동대 어라이즈'를 연재했다.

웹툰 '오!단군'의 노미영 작가. 김민수 기자
노미영 작가의 '공각기동대 어라이즈' 작화

- '공각기동대' 작품에 참여했다는 것은 일본 만화계에서도 노 작가의 실력이 통했다는 의미 아닌가

= 한국과 일본의 만화 연재 시스템은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데뷔하고 일본에서도 연재 경험이 있지만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일본 만화에 진출한 신인인 셈이다. 편집자가 발굴하거나 지속적으로 연재 제의가 있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일본 신인작가들은 공모전을 통해 이름을 알린 후 자신의 작품을 들고 출판사 편집자를 찾아다니며 정식 계약을 따내는 식이다.

2010년 초반까지 한국 웹툰은 아직 주류가 아니었기 때문에 만화 시장이 큰 일본에서 자리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갱스터즈' 연재가 끝난 뒤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나름 만화 왕국인 일본에서 러브콜 받은 작가라고 자부심을 가졌는데 현실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더라. 자존심이 한 번 바닥을 치니까 껍질이 깨지며 내가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노력의 결실이 아니었을까 싶다.    

- 프리퀄 만화 '공각기동대 어라이즈' 참여 계기가 궁금하다.

= 작품 투고를 위해 신인처럼 일본 월간 만화잡지 히어로즈 공모전에서 출발해 장편과 단편 작품을 들고 출판사들을 찾아다녔다. 어느날 일본의 유명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 편집자를 만났는데, 내 작품을 보더니 '너무 순정만화 같다. 소년만화풍으로 바꿔보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더라. 곧장 돌아가 내가 고집하던 캐릭터와 그림체도 바꾼 뒤 다시 편집자에게 내밀었더니, 마음에 든다면서 3회분 연재를 결정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일본은 특유의 문화가 있어서 면전에 직설적으로 거절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적당히 부족하다는 조언을 해주고 완곡하게 돌려보내려는 뜻이었는데, 내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수정해서 가져온 것을 보고 근성이 있구나 생각해 연재를 받아준 것이 아닌가 싶다. 작품을 준비하는데 편집자에게서 뜻밖의 제의가 왔다.

인기 애니메이션 만화 '공각기동대'도 담당하고 있던 편집자가 공각기동대 원작 전의 이야기를 다룬 프리퀄 '공각기동대 어라이즈' 코믹스 제작에 참여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거였다. 작화가를 찾는데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선뜻 나서는 작가들이 없었다. 이전에 보여줬던 원고들에서 메카닉(기계·로봇만화) 작화도 있어 기억했던 것 같다. 틈틈이 시간을 내 원화를 그렸는데, 편집자는 안 될 수도 있으니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하더라. '공각기동대'라는 대작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는 절실함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결국 기획회의에 들어가 내 원화를 내밀자 모두 흡족해했다.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 '심해수'는 원래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작품일 뻔(?) 했다고 들었다.

= 2014년 일본 주간잡지 '영 매거진' 부편집장이 바다에서 괴수가 나오는 만화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일본에서 '진격의 거인'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독특한 소재의 크리처물 수요가 늘고 있었다. 이미 다른 한국 작가들에게도 제안이 있었는데, 남편인 이경탁 작가님이 거절했다. 괴수가 나와 사람을 잡아먹는 크리처물 취향이 아닌데다가 다른 작가들과 먼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후에 다른 작가와 진행이 중단됐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이 작가님이 문득 자신의 아이디어 노트를 열어보니 잠수함과 잠수복을 스케치한 그림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는 아포칼립스, 디젤펑크, 바다의 괴수를 한데 섞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 그 담당 편집자가 다른 부서로 옮기면서 기획이 전면 중단됐다. 화실도 운영해야 하고 직원 월급도 줘야 하고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있다 보니 결국 국내 연재용으로 돌리기로 했다. 중소 플랫폼인 투믹스에서 좋은 제안을 주셨고 2018년부터 '심해수'를 선보일 수 있었다. 어찌보면 국내 복귀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웹툰 '오!단군'의 노미영 작가. 김민수 기자

- 10년간 떠나있던 한국 첫 복귀작 '심해수'로 2018년 각종 만화·콘텐츠상을 휩쓸었다. 기분이 어땠나?

= 뭐랄까 고향에서 인정받았다는 느낌이었다. 2018 SF 어워드 만화/웹툰 부문 대상, 부산 웹툰 페스티벌 웹툰 어워즈 골든 브릿지 수상, 오늘의 우리만화상 선정, 이듬해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문화체육부장관상까지 너무 감사하고 값진 상들이었다.

잊지 못하는 일화가 있는데, 대학교 졸업 후 문하생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되지 못했던 신일숙 작가님이 SF 어워드 심사위원으로, '심해수' 시상자로 나오신 거다. 20년 만에 내가 존경하는 작가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 작품들의 퀄리티나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풀컬러에 방대한 세계관, 작품을 연출하는 면에서 제작 강도가 높을 것 같은데?

= 데뷔 첫 작품부터 월간 연재를 했고, 전작인 '심해수'도 월간과 격간으로 연재를 해오다 보니 충분히 시간을 갖고 작품의 퀄리티를 높이는 과정에 힘을 쓰는 것이 익숙하다. 성정이 다작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처음으로 주간 연재를 하는 '오!단군'의 경우 처음으로 주간 마감에 쫓기면서 어떻게 작품의 품질을 유지할 지 고민하게 된다. 스케치와 펜 터치까지는 내가 하고 있고 채색이나 배경 등은 우리 스튜디오 직원들이 담당한다. 최종 검수와 컬러조정 등 마무리는 다시 내가 하는 식이다. 이전부터 화실 분업화에 익숙한데, 함께 작업을 하는 동료 작가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 데뷔작부터 일본 활동 작품, 국내 선보인 작품들을 보면 작화 스타일이 매번 다르다.

= '내 스타일'을 버린 게 가장 컸던 것 같다. 데뷔 때부터 순정만화보다 소년만화가 어울린다는 이야기에 뜯어 고쳤고, 일본에서 들고 간 원고를 수정해오라 해서 며칠을 씨름하며 고치고, 공각기동대에 맞는 그림을 그리면서 깨달은 게 있었다. 사람의 데생 능력이 갑자기 늘지 않는다. 대신 온전히 내 것이라 생각했던 내 스타일과 내 캐릭터를 버리고 스토리에 가장 잘 맞는 그림체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작품 스토리에 맞춰 적합한 그림체를 찾아갔을 때 드라마틱한 결과를 경험했다. 연재 계약이 성사됐고, 특히 '공각기동대 어라이즈' 참여가 나에게 가장 큰 분기점이 됐다. 내 그림체가 작품에 녹아들 때 독자들의 호응도 늘어났다. 그런 경험이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새로운 그림체로 바꾸려 노력으로 이어진 것 같다.

노미영 작가의 '오!단군' 작화


- '심해수'와 '오!단군'은 이경탁 스토리 작가와 호흡을 맞췄다. 아무래도 부부가 함께 작업을 하면 불편하지 않나?

= '심해수'를 작업하면서 정말 자주 싸웠다. 보통 스토리 작가와 그림 작가는 서로 존중하고 침범하지 않아야 할 거리 같은 게 있다. 그게 무너지면 작품이 엎어지기 일쑤다. 아무래도 부부다 보니 그런 경계가 모호한 부분이 있다 보니 다른 스토리 작가와 일할 때보다 감정 소모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장점이 더 많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시간도 언제든 가능하다는 점이다. 작품에 필요한 수정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대학 때부터 동갑내기 CC였다보니까 서로를 알고 지낸 시간이 길다. 스토리 구성과 아이디어에서 이경탁 작가님의 세계관이 뚜렷하고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뛰어나다 보니까 나의 작화를 입혀 표현하는 힘이 배가 되는 것 같다. 물론 이경탁 작가님은 '오!단군' 이후 새 작품부터는 다른 작가와 일하고 싶다고 하더라. (웃음) 아무래도 부부라는 관계 이상으로 작품에서 합을 맞춘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 '심해수'는 더이상 투믹스에서 서비스되지 않는데, 아쉬워 하는 팬들이 있다.

= 5월 중 네이버웹툰 '매일 플러스'에서 서비스될 예정이다. 여기에 에필로그 3화가 추가 공개된다. 아직 구상 중이지만 '심해수' 세계관을 잇는 새로운 시즌별 프리퀄 스토리도 계획하고 있다. 연재 완결 이후 9권으로 구성된 단행본도 나와 있어 스크롤과는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 '오!단군'이 아직 초반인데, 앞으로 어떤 전개로 이어지나?

= '오!단군'은 60~70화 정도로 계획하고 있다. 현재까지 원한을 가진 구미호가 등장했는데, 앞으로 도깨비나 귀신 같은 한국적 소재를 꾸준히 등장시켜 옴니버스 액자식 구성으로 이야기를 전개 시켜나갈 예정이다. 호랑이, 돼지를 비롯해 단군의 버림을 받은 또 다른 짐승들이 인간이 되기 위해 주인공 소녀와 퇴마액션을 펼쳐가는 모험 이야기를 계속 기대해주셨으면 한다.  

- 한국만화가협회 산하 웹툰작가협회 이사도 맡고 있다. 많은 과제들이 있을 텐데?

= 최근 메이저 포털 플랫폼을 중심으로 휴재권이 안착되어 가는 추세다. 만화가협회는 그동안 문화체육관광부와 기업, 단체들과 지속적으로 협의하며 작가들의 안정적인 휴재권을 보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작년에 '검정고무신'의 고(故) 이우영 작가님이 작고하신 후 협회 이사직 빈자리에 제가 들어왔다. 밖에서만 봐왔던 만화계의 다양한 문제들을 직접 마주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들이 많구나, 처우 개선이나 안정적인 작가 환경을 만드는 그 구심점 역할을 협회가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국내 웹툰 시장이 장르 편중화, 포화 상태라는 지적이 있는데?

= 글로벌 시장으로 적극 진출해야 한다. 네이버·카카오 등 메이저 포털 플랫폼을 중심으로 계속 진행해왔고, 그 결과 해외로 우리 만화가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 작가들 스스로도 자신의 작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스토리와 세계관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했으면 한다.

장르의 편중화도 고민해볼 거리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만화를 그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봐야 한다. 만화 소비자가 성장하고 어느 순간 만화와 멀어지면 시장이 자연 축소되는 것을 과거 출판만화 시장에서 경험한 바 있다. 특정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작품에 지나치게 편중되면 확장성이 떨어진다. 다양한 문화 콘텐츠, 오리지널 작품으로 대중성을 가진 만화가 확산되기를 바란다.

일본에서는 인기 만화의 경우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이어져 콘텐츠가 선순환 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지난 15년 사이 한국 웹툰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성공했다고 평가 받는 작품은 1~2개 정도다. 드라마와 영화로는 제작됐지만 최근에서야 메이저 플랫폼을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심을 가지는 정도다. 만화가 만화영화로 만들어지는 순환 시스템도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웹툰 '오!단군'의 노미영 작가. 김민수 기자

- '오!단군' 이후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나 장르가 있나?

= 이경탁 작가님이 제가 그리는 캐릭터들이 너무 착하다고 말하더라. '심해수'의 경우 디스토피아적 배경에 괴수가 등장하지만 결국엔 살아남은 인류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공동체 이야기다. '오!단군'도 주인공들이 특별히 모난데 없이 착한 지점이 있다. 고민되는 지점이다. 항상 캐릭터가 바뀌어 오긴 했지만 보다 색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봐야 할 시점에 있지 않나 싶다. 아무래도 자기복제나 정체성이 한 곳에 머물러 있다 보면 새로운 창작을 하기 어려운 부분이 생긴다. 보다 외연을 확장해서 다음 작품에서는 기존과 다른 캐릭터를 등장시켜 보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 드라마를 추구해서인가, 영화 한편 같은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꿈은 여전하다.  

그리고, 이경탁 작가님이 차기작은 메카닉(기계·로봇 만화) 장르를 하고 싶다고 한다. 원래부터 본인의 취향 장르인데, 한국에서는 그런 메카닉 작품을 보기 힘들다. 다른 작화가와 만들고 싶다고 하는데, 다시 함께 준비할지는 모르겠다.  

- 20대 순정만화가를 꿈꿨지만 소년만화가가 되어 있다. 앞으로는 어떤 만화가가 되길 원하나.

= 남은 시간을 보면(?) 더 많은 작품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뒤처지지 않고 '노미영 작가의 작품은 일단 재밌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로 남고 싶다. 그 꿈을 향해 여전히 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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