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스드메’도 벅찬데 총액 3000만~4000만원”···‘웨딩 파생상품’ 너무해

전지현 기자 2024. 4. 1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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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신부 박모씨(29)가 친구의 결혼식에서 지난달 받은 부케. 박씨는 이 부케를 건네 받아 ‘부케 기프트’ 업체에 맡겼다. 본인 제공

예비 신부 박모씨(29)는 지난달 친구의 결혼식에서 신부로부터 부케(꽃다발)를 받았다. 뒤이어 결혼할 친구가 가져가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던 박씨는 당황스러운 말을 들었다. ‘부케를 잘 말려서 100일 안에 친구 부부에게 돌려줘야 그 부부가 행복하게 산다’는 속설이었다. 이를 대행하는 ‘부케 기프트’ 업체가 따로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부케를 변색되지 않게 말린 후 그 꽃잎을 넣은 보석함이나 등, 액자를 장식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가격은 4만~10만원 이상까지 천차만별이었다. 꽃을 말리는 비용만 2만원 이상이었다. 박씨의 친구도 앞서 결혼한 다른 친구에게서 부케를 받고 부케 기프트를 했다고 했다.

18일 부케기프트를 인스타그램에 검색하면 보석함, 등, 액자 등 다양한 말린 부케로 만든 장식물이 검색된다. 인스타그램 갈무리

“웨딩 파생상품이 생각지 못하게 많다는 걸 결혼 준비하면서 알게 됐다”는 박씨는 “몇 년 전엔 없었던 상품이 요새는 필수였고 너무 비싸서 한숨만 나왔다”고 말했다.

최근 1~2년 전부터 웨딩업계에는 결혼식 필수라고 불리던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메이크업)’ 사이에 새로운 파생상품들을 만들어냈다. 예비 부부들 사이에서는 “가성비 웨딩을 생각했다가도 정신차려보면 3000만~4000만원을 금방 쓰겠더라”는 푸념이 나온다.

헤어변형·플라워디렉팅·아이폰스냅, 들어보셨나요?
지난달 19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웨딩거리에서 한 시민이 웨딩드레스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에 할 결혼 준비를 막 시작한 직장인 김모씨(29)는 웨딩플래너가 ‘스드메’ 예산을 평균 400만~600만원으로 잡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가성비, 평균, 고급, 명품으로 급을 나누는데, 명품으로 진행하려면 800만원 이상은 잡아야 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마저도 추가금은 포함하지 않은 가격이다.

“다른 건 몰라도 ‘헤어변형’이 필수라는 말을 다들 하더라고요.” 김씨가 말했다. 헤어변형은 쉽게 말해 출장 미용사를 웨딩 촬영·결혼식장에 부르는 것이다. 미용사들은 결혼식 옷 착장을 바꿀 때마다 머리 형태를 웨이브·반묶음·생화 장식 등으로 현장에서 수정해준다. 가격은 3시간에 30만~45만원쯤이다.

스튜디오 촬영장을 생화로 꾸미는 것은 ‘플라워디렉팅’이라고 불린다. 본식 당일에는 ‘아이폰 스냅’이 대세다. 사진 작가가 일반 카메라가 아닌 아이폰으로 결혼식 현장 사진을 찍는 것인데, 일반 카메라로 촬영할 때보다 원본과 보정본을 몇 주 빠르게 받아볼 수 있다는 이유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파생상품’들은 언제부터 웨딩 업계에 정착했을까. 20년차 웨딩플래너 A씨는 “헤어변형과 플라워디렉팅 모두 지난해 초에서부터야 유행처럼 번졌다”고 말했다. 상품을 찾는 부부들이 알음알음 늘어나면서 기존 부케·헤어·메이크업 업체들이 영역을 확장한 것이 빠르게 퍼졌다고 한다.

18일 인스타그램에 ‘헤어변형’을 검색하면 16만9000여개의 게시물이 검색된다. 인스타그램 갈무리

통상 결혼이 처음인 소비자들과 결혼식 베테랑인 웨딩업체들 사이의 정보 비대칭은 ‘새로운 유행’이 마치 늘 있어왔던 것과 같은 착시를 낳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유행을 키우는 데 일조한다. A씨는 “스드메 업체가 인스타그램을 안 하면 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키워드를 검색하면 관련 사진·영상이 한 번에 뜨니 ‘이게 유행이구나’라고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결혼식을 올린 직장인 장모씨(29)는 “한 번뿐인 결혼이라는 마음과 복잡한 결혼 준비과정이 중간에 붙는 추가금들을 감내하게 만들더라”고 말했다. 8개월여의 준비 동안 스드메 각각의 가격을 SNS로 문의하며 지쳤다고 했다. 그는 “메이크업을 새벽에 받으려면 ‘얼리 스타트 비용’이라며 추가금이 붙고, 메이크업 실장을 지정하는 것에도 돈을 내야 한다는 얘기를 계속 듣다 보면 그냥 추가비를 내서 만족하고 말자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둔 박씨는 헤어변형·플라워디렉팅은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안 해서 후회하는 신부는 있어도, 해서 후회하는 신부는 없다’는 업계의 말이 지금 돈을 쓰지 않으면 일생일대의 날을 망칠 수도 있다는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으로 들린다고 했다. 그는 “이런 상품들을 다 해야 하는 분위기가 과소비”라고 말했다. 김씨는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을 예고한 결혼서비스 가격 표시제에 기대를 표했다. 그는 “파생상품까지 적용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인 식장과 스드메 비용이라도 정확히 미리 알 수 있다면 답답함이 덜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스드메’ 거품 빠질까…웨딩서비스 가격표시제 도입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2403132125015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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