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종교적 색채 짙어지는 트럼프 유세

여론독자부 2024. 4. 1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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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서울경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 방식이 새롭게 바뀌고 있다. 그의 대중 유세는 종교부흥회를 연상시킨다. 뉴욕타임스는 “즉흥적이고 불안정했던 트럼프의 집회가 지금은 잘 짜인 엄숙한 종교행사 분위기를 풍긴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지지자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지지자들이 누구인지 분석한 자료를 샅샅이 훓어보았을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된 그의 가장 든든한 우군은 미국 전체 인구의 14%를 아우르는 백인 복음주의자들이다. 2020 대선에 참여한 유권자의 25%가 백인 복음주의자들로 채워졌고, 이들 가운데 75%가 트럼프에게 표를 몰아줬다. 더욱 놀라운 일은 한 달에 최소한 한번 이상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백인 유권자 중 71%가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20년 사이 미국인들의 생활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 다시 말해 극적이고도 급속한 미국 사회의 세속화라는 배경 아래서 살펴봐야 한다. 미국의 기독교 인구는 2007년 이후 급격히 줄어들었다. 미시간대학 교수이자 정치학자인 로널드 잉글하트가 보여주듯 2007년 이후 미국의 종교 인구 감소세는 설문에 참여한 49개국 가운데 가장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다. 오늘날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종교적이지 않은 12번째 국가다. 제너럴 소셜 서베이에 따르면 1990년 종교를 갖지 않은 미국인은 전체 인구의 10% 미만에 불과했다. 오늘날 이 수치는 30%선을 넘어섰다.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가 그의 저서 ‘미국의 복음주의 : 보수적 종교와 현대화의 혼란’에서 지적하듯 복음주의 신앙이 대세를 이룬 것은 교리와 신앙으로부터 멀어져가는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에 재빨리 적응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죄·이단·가톨릭주의·간음·이혼·물질주의와 엄격한 기독교의 도덕률로부터의 이탈에 대한 경고로 채워졌다. 그러나 제리 폴웰 목사와 같은 복음주의 전도사들은 기독교를 사용자 친화적이고, 교리 부담이 적은 종교로 만들었다. 신앙 교리가 빠져나간 빈자리는 정치로 채워졌다.

지난 수년간 복음주의는 신앙을 낙태, 동성혼과 트랜스젠더 권리 반대 등 전적으로 정치적인 측면에서 규정하며 독실한 기독교인을 자처해온 사람들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교분리원칙에 익숙한 민주당계 교인들의 탈교회화로 나타났다. 갤럽에 따르면 20년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지지자들의 71%에 달하던 기독교인의 비중이 2020년에는 46%로 곤두박질쳤다.

노터데임 대학의 학자인 데이비드 캠벨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기독교를 공화당과 연결짓는 미국인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스스로 공화당 지지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교회를 등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파가 종교를 이용하거나 심지어 무기화하는 것은 미국, 혹은 기독교 신앙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이 아니다”라며 “브라질· 엘살바도르·이탈리아·이스라엘·투르키예·인도를 비롯한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애틀랜틱지의 데릭 톰슨이 지적했듯 불가피한 추세인 종교의 세속화는 신앙심과 공동체 의식 상실 등 오늘날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외로움의 핵심을 이루는 감정적 요인을 불러온다. 정치 해설가 월드 립프만은 “인간은 왜 그들이 태어났고, 일을 해야 하며, 누구를 사랑해야 할지, 무엇을 존중해야 할지, 어디로 슬픔과 패배감을 돌려야 할 지에 관한 확실성을 박탈당했다.”며 세속화된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같은 공허감 속으로 포퓰리즘·민족주의·권위주의가 걸어 들어온다. 현대적인 정치세력들은 공허감에 빠진 사람들에게 ‘새로운 신앙’과 그들이 헌신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을 제공한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지난해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가족, 국가와 신 등 나보다, 혹은 나의 에고보다 중요한 어떤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말로 이를 간략하게 표현했다.

이것은 우리 시대가 직면한 커다란 정치적 도전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종교·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억압과 통제를 없애고 전에 없이 큰 자유를 안겨줄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인 쇠렌 키르케고르가 기술했듯 불안은 자유의 어지러움이다. 현대사회는 우리 모두에게 부와 기술, 자율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들은 한때 신과 신앙이 떠나면서 남긴 가슴 속의 깊은 구멍을 채우지 못한다. 정치로 이를 채우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앞으로 우리의 눈앞에서 전개될 세상의 모습처럼 보인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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