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사라진 세상, 인간이 고기가 돼 식탁에 [책&생각]

최재봉 기자 2024. 4. 1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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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사육하고 도축하는 세상
끔찍한 설정·묘사에 읽기 힘들어
서로를 잡아먹는다는 점에서
육식 문화와 자본주의는 동일
아르헨티나 소설 ‘육질은 부드러워’는 동물 고기가 사라진 뒤 인육 섭취가 허용된 사회를 가상한 작품이다. 사진은 한 도살장에서 직원이 도축된 동물 사체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클립아트코리아

육질은 부드러워

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 지음, 남명성 옮김 l 해냄 l 1만7500원

독서의 즐거움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읽는 일이 괴로울 때도 적지 않다. 극도로 지루하거나 난해해서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을 때 독서는 고역으로 몸을 바꾼다. 저자의 주장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비논리적이거나 비윤리적일 때는 읽던 책을 덮어 버리고만 싶다. 책 속에 묘사된 상황이 너무도 잔인하고 끔찍할 때 독자는 두려움과 고통에 몸을 떨게 된다. 마지막 경우에 해당하는 책이 ‘육질은 부드러워’다.

아르헨티나 작가 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가 2017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사회를 그린다. 가축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인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동물은 씨가 말랐고, 동물성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명분 아래 인육 섭취가 제도화한다. 고기로 소비될 인간은 별도의 시설에서 사육되고 도축장에서 도살되어서는 정육점에서 판매된다. 가죽은 가죽대로 따로 팔린다. 소, 돼지, 닭 같은 가축이 고기가 되어 식탁에 오르는 과정에 인간을 대입시키면 소설 속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파리 북동부 라 빌레트에 1867년 문을 연 도살장에서 직원들이 돼지를 도축하는 장면을 담은 1874년작 판화. 게티이미지뱅크

“개체들은 천장의 자동 레일에 매달려 안으로 들어온다. 세 개의 몸통이 머리를 아래로 한 채 매달려 있다. 첫 번째는 목을 칼로 가른 상태이고 나머지 둘은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작업자는 재빠른 움직임으로 개체의 목을 칼로 가른다. 몸이 살짝 꿈틀거린다. 홈통으로 피가 쏟아진다.”

주인공이 근무하는 육류 가공 공장의 방혈실 작업을 묘사한 대목이다. 인용문 속 ‘개체들’은 식용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고, 방혈실에 오기 전에 이들은 타격실 담당 직원이 휘두른 방망이에 이마를 맞아 기절한 상태다. 방혈실에서 순수한 고기로 바뀐 개체들은 탈모기와 절단실, 내장 처리실을 거치며 가죽이 벗겨지고 부위별로 나뉘어 상자와 서랍에 저장된다. 방혈실에서 모은 피는 비료를 만드는 데 쓰인다…. 비위가 약한 이라면 독서를 포기하고픈 대목들이 이어진다.

소설 주인공인 마르코스 테호는 얼마 전 어린 아들을 갑작스럽게 잃었고, 그 충격으로 아내는 친정에 머무르고 있다. 바이러스가 발흥하기 전 육류 가공 공장을 운영했던 아버지는 노화에 치매가 겹쳐 요양원에 가 있고, 마르코스는 요양원 비용을 벌기 위해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직장에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사장의 오른팔 역할을 하며 거래처에 출장을 다니거나 신입 직원들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일을 맡고 있다.

“고통이 뭔가 다른 것으로 바뀌려면 얼마나 많은 심장을 떼어내 저장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고통은 그가 숨 쉬는 유일한 이유라는 걸 그는 알고 있다. 슬픔 말고는 그에게 남은 것이 없다.”

도살장의 고리에 걸려 매달려 있는 양 사체들. 게티이미지뱅크

사육장과 수렵장, 정육점, 연구소, 가죽 공장 같은 거래처로 출장을 나간 마르코스 덕분에 독자는 식용 인간들이 놓인 끔찍한 상황을 엿보게 된다. ‘인간’이라고는 했지만 소설 속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그것들을 인간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인간으로 부르는 순간 그 고기들에는 없던 인격이 부여된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들을 그저 제품이나 고기, 식품이라고 부를 뿐이다. 사육장에서는 개체들을 통제하고자 성대를 제거하고, 부유층에서는 개체를 집에 두고 기르면서 산 채로 조금씩 살을 잘라 먹는다. 수렵장에서는 식용 인간들을 풀어놓고 사냥을 즐기고, 연구소에서는 나치 수용소나 관동군 731부대 뺨치는 생체 실험을 자행한다. 공공 요양원에서 사망한 노인들의 주검은 암시장으로 팔려 나가고, 교회 광신도들은 자신을 희생해 지구를 구하겠노라며 도살장 안으로 자진해 들어오며, 육가공 공장의 전기 철조망 너머에는 저질 부산물과 병들어 죽은 고기를 얻어 먹는 무등록 하층민들이 우글거린다.

‘육질은 부드러워’는 인육을 먹는 세상이라는 설정의 힘에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작품이다. 동물 고기의 자리를 인간 고기가 대체한다는 설정은 거꾸로 동물의 처지에서 인간의 육식 문화를 돌아보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채식주의자인 지은이는 “이 소설은 잔인함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만드는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이라고 지난해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상징적인 방식으로 서로를 잡아먹고 있고,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와 육식 문화는 사실상 동일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설정의 힘에 크게 의지하는 만큼 이 소설에서 인물의 변모나 사건의 발생 및 전개는 오히려 부차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소설 속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면 거래처에서 마르코스를 회유하고자 고기용 암컷 인간 한 마리를 뇌물로 보낸 일을 들어야 할 것이다. 아들이 죽은 뒤 육식을 끊은데다 인육 산업과 동물 바이러스 자체에 대해 회의와 의심의 태도를 지닌 마르코스는 어쩔 수 없이 암컷 인간을 헛간에 두고 먹이를 주며 보살피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미묘한 감정이 싹튼다….

도축장 직원들이 소를 도살하는 모습을 담은 1861년작 판화.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잡아먹는 이 잔혹한 세계에서 마르코스는 드물게 합리적이며 온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태도와 성격이 비정상적인 체제와 충돌한다는 점에서 그는 조지 오웰 소설 ‘1984’의 주인공 윈스턴을 닮았다. 다수 언론의 서평에서 이 작품을 가리켜 오웰식 디스토피아라 평가한 것이 그런 맥락에서일 텐데, ‘1984’와 이 작품의 유비는 깜짝 놀랄 만한 결말 장면으로까지 이어진다.

“어쨌든 세상이 생겨난 뒤로 우리는 서로를 먹어왔어요. 변이(인육을 먹는 행위)라는 과정이 우리를 덜 위선적으로 만든 겁니다. (…) 나온 음식에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모든 요리는 죽음을 담고 있어요.”

수렵장 주인 우를레트는 사람 고기 요리를 먹지 않으려는 마르코스를 이런 말로 설득한다. 그는 또 수렵장에서 희생된 록 가수의 혀 요리에 김치를 곁들인 메뉴를 소개하며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 독자들의 눈에 반갑게 들어올 법한 대목이다. “김치는 한 달 동안 발효시킨 채소로 만드는 음식입니다. 원래는 한국 전통 음식이죠. 좋은 점이 아주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는 유산균이 많다는 겁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육질은 부드러워’의 아르헨티나 작가 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 ⓒ Rocío Pedro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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