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맺어 반격… 전기차 속도 내는 일본 車

정한국 기자 2024. 4.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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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업체끼리 협업 잇따라

지난달 15일 일본에선 세계 자동차 업계를 술렁이게 한 발표가 나왔다. 지난해 판매량 기준 일본 2위 자동차 기업 혼다(419만대)와 4위 닛산(337만대)이 손을 잡고 전기차, SW(소프트웨어) 등 미래차 핵심 기술 공동 개발을 추진한다고 밝힌 것이다.

일본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오던 두 기업이 손잡은 이유는 뭘까. 이날 나란히 발표에 나선 미베 도시히로 혼다 CEO와 우치다 마코토 닛산 CEO의 말 속에 힌트가 있다. “지금 같은 100년에 한 번 있는 자동차 산업 변화의 시기에 새로 나타난 기업들과 경쟁할 수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차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 점유율이 약 25%(이하 2022년 기준)다. 자동차 산업 본고장인 유럽(26%)을 바짝 추격하는 세계 2위다. 하지만 미래차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전기차로 눈을 돌려보면 ‘지각생’이나 ‘열등생’이다. 도요타는 작년 글로벌 1031만대를 판매해 세계 1위를 했지만 순수 전기차는 약 1%인 10만대에 그쳤다. 테슬라(181만대), BYD(158만대), 현대차그룹(45만대) 등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닛산은 전기차 2만대를 팔았고 혼다는 작년까지 전기차를 만들지도 않았다.

이런 모습에서 1980~1990년대 일본 전자·가전·반도체 기업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전문가들이 적잖다. 소니, 샤프, 파나소닉 등 가전 ‘빅3′와 히타치, 도시바, NEC, 후지쓰 같은 반도체 기업 등은 당시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다. 하지만 이들은 시대 변화를 반영해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개척하고 서로 협력하기보다 홀로 자신들의 장기를 갈고 닦다 삼성, LG 등에 자리를 내줬다. 일본 자동차업계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어제의 라이벌과 과감하게 손잡는 동맹으로 반격에 나선 것이다.

그래픽=김하경

◇반도체·배터리 동맹 맺고 속도 내는 도요타

세계 1위 도요타와 혼다, 닛산, 마쓰다, 스바루 등 일본의 자동차 기업 5곳과 덴소,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 등 부품사 7곳 등 일본 12개 기업은 작년 말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위한 연구 조직을 만들었다. ‘자동차용 첨단 시스템온칩(SoC) 기술 연구조합’(ASRA)이다. 자동차에 SW, 자율주행 등 IT 기술이 겹겹이 쌓여가면서 반도체는 미래차의 핵심 부품이 됐다. 최신 내연차에는 반도체가 200~300개 들어가는데 전기차에는 500~600개, 자율주행차에는 1000개 이상이 필요하다. 일본 고유 기술을 만들어 여기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도요타는 또 작년 10월에는 일본 대표 석유화학 기업인 이데미쓰코산과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기차용 전고체 배터리 공동 개발도 시작했다. 적은 용량으로도 1000km 이상을 달릴 수 있게 하는 배터리다.

닛산과 일본 7위 미쓰비시도 1t짜리 전기 픽업트럭 등 미국용 전기차를 공동 개발한다. 두 회사는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에 속해 원래부터 협업 관계에 있지만,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별도의 협업 방안을 만들었다. 미쓰비시는 현재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만 판매 중이고 닛산은 전기차만 판매 중이라, 서로 기술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신차 개발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업계를 넘어 IT 가전 기업과의 협업도 활발하다. 혼다는 또 소니와 2022년부터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강화한 고급 전기차 ‘아필라’를 개발 중이다. 파나소닉은 지난 1월 CES에서 닛산의 고급 브랜드 인피니티와 전장 분야 협력을 통해 자동차 오디오 시스템 등을 개발한다고 밝혔다.

◇캐즘이 호재됐다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지금 전기차 시장이 주춤한 캐즘(Chasm·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기)이 호재라는 분석이 나온다. 동맹과 공동 연구 등을 통해 테슬라, 폴크스바겐, 현대차그룹 등 선두 주자를 추격할 시간을 벌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앞으로 미래차 주도권을 두고 각국 기업 간 경쟁이 심화할 전망이다.

미·중 갈등 같은 지정학적 변수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는 일을 겪은 뒤 자동차업계 안팎에선 자국 기업 또는 우호적인 기업 간 합종연횡은 갈수록 더 잦아지고, 중요해지고 있다. 독일 폴크스바겐그룹은 작년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샤오펑 지분(약 5%)을 7억달러(약 9600억원)에 인수했다. 그리고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샤오펑과 공동으로 중국용 전기차 플랫폼 등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현대차그룹을 중심으로 삼성, LG, SK그룹이 자동차 산업에서 협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대차는 삼성이 개발한 배터리, 반도체, 오디오 시스템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SK·LG와는 미래차 배터리나 수소 분야에서 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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