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백년전쟁, 건국전쟁 그리고 4월

김요아킴 시인·부산 경원고 교사 2024. 4.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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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다룬 영화 ‘건국전쟁’ 과대한 공적 포장, 과오 덮어
반공·극우 이데올로기 편승, ‘백년전쟁’ 역사적 잘못 조명
김요아킴 시인·부산 경원고 교사

지난 2월에 개봉한 영화 ‘파묘’가 벌써 1000만 관객을 상회하는 기록을 달성하며 오컬트 장르로서의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통해 자신만의 영화적 감성을 구축한 장재현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공포 스릴러라는 기본 프레임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무속신앙과 풍수지리를 결합시키면서 불편한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를 곳곳에 드러내고 있다.

이에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만든 김덕영 감독이 자신의 SNS를 통해 “반일(反日)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이를 덮어버리기 위해 ‘파묘’로 분풀이 하고 있다”며 이념논쟁을 부추기는 극단적 발언을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재조명한 ‘건국전쟁’은 영화 제작사의 표값 환급 이벤트와 관객 강제 동원, 그리고 보수 언론의 우호적인 기사 등 영화 외적으로도 논란의 소지를 가지고 있었던 데다가 내용 구성에서도 편향된 시각이 주를 이룬다. 새롭게 발굴된 자료라는 요란한 선전 속에 이승만의 행적을 끊임없이 왜곡 미화하면서 그를 영웅이라 치켜세우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독립운동의 성과와 대미 외교력, 그리고 농지개혁과 참정권으로 여성의 인권을 실현했다는 공적을 과도하게 부각시키며 민주주의의 신봉자로 탈바꿈시켰다. 수많은 과오와 범죄행위에 대해선 오히려 침묵과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광복 이후 발생한 제주 4·3 사건을 단독정부 수립을 방해하려는 남로당의 무장투쟁에서 비롯됐다는 역사 인식과 더불어 한국전쟁 때 국민보도연맹과 관련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언급은 생략한 채 당시 한강 인도교 폭파 민간인 인명 피해와 1960년 3·15 부정 선거는 이승만과 무관하다는 등의 논리를 펴고 있다.

문제는 이 영화를 관람한 정부 여당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역사를 올바르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이제 영웅은 외롭지 않다고 말하면서 이에 동조하는 많은 여권 인사 또한 관람 인증 릴레이에 동참했다. 이미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진정한 자유와 민주를 요구했던 거대한 시민의 혁명을 통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망령처럼 우리 사회에 반공(反共)과 극우적 이데올로기에 편승해 여전히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려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한 인물에 대한 공과(功過)는 늘 양면적이지만, 이승만에게 있어 그의 과오를 단지 그 공적으로 덮어버리기엔 너무도 감당키 힘든 상황임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건국전쟁’을 통해 다시 주목받는 영화가 ‘백년전쟁’이다. 이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합한 1910년부터 2011년까지 우리 근현대사 100년 속에 대립하는 세력들을 시리즈 형식으로 김지영 감독에 의해 2012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인데, 그 1부로 ‘두 얼굴의 이승만’ 편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영화 첫머리에 ‘우리가 어떤 나라에 쳐들어가면 한쪽엔 저항세력(resistance), 다른 쪽엔 협력자(collaborator)가 있고, 그 사이에 머뭇거리는 대중이 있다’는 나치 선동가 괴벨스의 말을 인용하며, 포스터 사진으로 안중근 김구 윤봉길 여운형 장준하와 이승만 서정주 방응모 박정희 백선엽을 각 세력의 대표로 등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승만을 김구를 비롯한 동시대 독립운동가와 그 행적을 교차시키며 그가 얼마나 겉과 다르게 권력지향적이고 사적 이익만을 추구한 인물인지를 신랄하게 파헤치고 있다. 물론 이로 인해 이승만 유족으로부터 제작자들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되기도 하고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제재 조치를 받기도 했지만, 모두 무죄 판결이 남으로써 다시 한번 그에 대한 평가가 역사적으로 검증되기도 했다.

이승만이 일제강점기 임시정부부터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리고 하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치적으로 탄압받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는지 한번 곰곰이 따져봐야 할 아침이다. 오늘은 이승만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온 국민이 거리마다 피로써 진정한 자유를 쟁취해 낸 4·19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그때의 거대한 함성이 다시 지금 우리의 현실 속으로 새롭게 뿌리내리길 간절히 바라며 김수영 시인의 시 한 구절로 4월의 그날을 떠올려 본다.


‘선량한 백성들이 하늘같이 모시고 / 아침저녁으로 우러러보던 그 사진은 / 사실은 억압과 폭정의 방패이었느니 / 썩은 놈의 사진이었느니 / 아아 殺人者의 사진이었느니’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씻자’ 중에서)

※외부 필자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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