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뉴욕 메트 총감독 겔브의 사과
지난달 20일 오후 7시 30분, 미국 뉴욕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메트) 오페라 콘서트홀, 세계적인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의 ‘투란도트’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막이 오르지 않은 가운데 검은색 정장을 입은 키 큰 신사가 무대 중앙에 섰다. “여러분께 정말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메트 역사상 처음으로 무대장치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저희는 노력했지만 시간 내 고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평소처럼 완벽한 모습을 보여 드릴 수가 없습니다. 환불을 원하시는 분이 있으면 지금 바로 해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잠시 웅성대던 관객 중 일부는 겉옷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대부분 관객은 오히려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당신의 사과에 감사하며 그럼에도 우리는 메트의 공연을 즐기겠다’는 표시였다. 이 신사는 세계 최고 수준 오페라하우스로 꼽히는 메트를 이끄는 피터 겔브 총감독이었다. 며칠 뒤 메트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할 때 “원래 무대에 가끔 올라오시느냐”고 묻자 겔브는 미소를 지으며 “나는 사고가 났을 때만 올라간다”고 했다. 다시 한번 “안내 방송을 할 수도 있었던 것 아니냐.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느냐”고 묻자 겔브는 대답했다. “우리는 메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최고 수준의 공연을 바라고 오는 분들에게 저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것입니다.”
사과에도 종류가 있다. 상황을 모면하려는 ‘거짓 사과’는 오래 못 간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당선인은 선거 전에는 ‘편법 대출 의혹’ 등과 관련해 “사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당선된 뒤에는 “조선일보 징벌 법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본지는 이 의혹을 처음 보도했다. 일반적인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이 정말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창피해서라도 이렇게 말하지 못한다. 그런 사과는 ‘거짓 사과’와 다르지 않다.
때로는 잘못이 완벽하게 이해가 되지 않아도 사과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너무 소중해 깨지지 않게 그것을 지켜내고 싶다고 느낄 때다. 이 경우엔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는 사과라는 점에서 거짓 사과라고 할 수 없다. 사과를 받는 사람은 마음이 너그러워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하고, 때로는 노력을 해도 결과가 좋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비록 평소의 10%밖에 볼 수 없었던 무대였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킨 기자를 비롯한 관객들은 배우들이 무대 인사를 할 때 목청을 높여 환호하고 손뼉을 쳤다. 그 배경에는 공연 시작 전 있었던 겔브의 사과와 마음으로 응원한 관객들의 진심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와 다른 동선(動線)으로 움직여야 했던 오페라 배우들도 평소보다 더 힘을 내 공연했을 것이다. 리더가 보여주는 사과의 힘은 그렇게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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