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거부 나선 野, 양곡법 또 강행

김상윤 기자 2024. 4.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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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된 법안 일부 수정해 직회부
18일 국회에서 열린 농해수위(위원장 소병철)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농해수위 위원들이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 등 5건의 안건이 처리되고 있다./ 이덕훈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18일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재표결을 거쳐 폐기된 법안을 일부만 수정해 다시 본회의에 올린 것이다. 야당은 “이 법안에도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반발해 온 야당이 총선 압승 기세를 몰아 ‘거부권 거부’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 회의를 열어 양곡관리법, 농산물가격안정법, 한우 산업 지원법, 세월호참사피해지원특별법 개정안과 농어업회의소 제정안 등 법안 5개를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반대하며 불참한 가운데 농해수위 위원 19명 중 민주당 의원 11명과 무소속 윤미향 의원 등 12명이 만장일치로 찬성표를 던졌다. 법안 설명이나 의사 진행 발언 없이 속전속결로 표결을 진행, 회의를 열고 산회하는 데까지 불과 2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해당 법안들은 지난 2월 민주당 주도로 농해수위를 통과했으나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됐다. 법사위로 회부된 법률안은 60일이 지나면 소관 상임위 위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본회의에 직회부할 수 있다. 농해수위 위원장인 민주당 소병훈 의원은 “법사위 때문에 야당 단독으로 본회의 부의 안건을 처리했다”고 했다.

민주당은 다음 달 말 본회의에서 이 법안들을 처리하려 하고 있다. 22대 국회 개원(5월 30일)을 40여 일 앞둔 21대 국회 막바지에 양곡관리법과 전세사기특별법, 채 상병 특검법 등 여러 쟁점 법안 처리에 나선 것이다. 원내 1당 자리를 이어가게 된 민주당이 한 박자 앞서 입법 드라이브를 거는 것으로 해석된다. 임오경 원내대변인은 “우리는 21대 국회 시작 때 밀어붙이지 않고 협의를 계속하다가 오히려 국민에게 질타받았다”며 “두 번의 실수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픽=김하경

민주당은 작년에도 양곡관리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법안이 폐기되자 개정안을 다시 발의했다. 새로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가격 폭락이 우려되는 경우 정부가 농협 등을 통해 쌀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을 매입하게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쌀 가격이 5% 이상 떨어지거나, 수요 대비 생산량이 3%를 넘어가면 정부가 쌀을 사들이도록 하는 이전 법안보다는 정부 의무 매입 부분을 완화했다는 게 야당 입장이다. 민주당 위성곤 의원은 윤 대통령이 재차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에 대해 “그건 농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개정안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양곡 강제 매수는 수급 불안과 시장 가격 교란을 가져와 농민을 오히려 어려움에 처하게 만들며, 이 때문에 지난 정부에서도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의 요구했을 때 법안과 비교해 강제 매수라는 본질이 바뀌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농촌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큰 법안”이라고 했다.

주요 농산물의 시장 가격이 기준 가격에 못 미치면 차액 일부를 정부가 보전하는 내용의 농산물가격안정법 개정안 역시 여야 간 견해차가 큰 법안이다. 야당 의원들은 “농산물 가격 변동성이 너무 커 농가 경영을 위협하고 있다”며 “지자체에서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국가적 차원의 시행이 필요하다”고 했다. 두 법안으로 소요되는 예산에 대해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쌀 등 주요 농산물 16품목에 대해 매년 1조원이 조금 넘는 예산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며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식량 안보를 위해 시행하는 제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도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 예산이 들어가고 있는 만큼 1조원가량이 100% 추가되는 예산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18일 국회에서 열린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농해수위 위원들이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 등 5건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을 무기명 투표를 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반면 농림축산식품부는 “보장 수준이 높은 품목 과잉생산이 우려되고, 정부 재정이 과도하게 소요될 수 있다”며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보조금 한도가 있어 국제 규범 위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입장문을 통해 “남는 쌀 강제 매수는 과잉생산 유발, 쌀값 하락, 재정 부담 증가 등으로 전문가와 농업인 단체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며 “과잉생산과 사회적 갈등만 초래할 우려가 많다”고 했다.

민주당은 두 법안과 기초·광역·전국 농어업회의소 설립 근거를 담은 농어업회의소법 제정안, 한우 농가 경영 안정 프로그램 도입을 담은 한우 산업 지원법 개정안 등을 묶어 ‘농업 민생 4법’이라고 했다. 세월호참사피해지원특별법 개정안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치료 지원 기한을 연장하는 내용이다. 해양수산부는 피해자 치료 지원 연장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심리 치료 취지와 달리 59%가 치과·한방 치료에 편중됐고, 자기 부담금 40%를 내는 독립 유공자 유가족과 비교해 전액 지원 혜택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5월 국회를 앞두고 각종 쟁점 법안 처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조사 방해 의혹에 대한 특검 법안은 패스트트랙을 거쳐 지난 3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도 재표결을 앞뒀다. 이재명 대표가 강조한 ‘선구제 후구상’이 담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은 지난 2월 국회 국토위에서 야당이 단독으로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오는 23일에는 정무위를 열어 민주화 운동 사망·부상자 등을 ‘유공자’로 우대하는 민주유공자법 등을 직회부하는 것을 논의 중이다.

민주당은 이러한 법안들을 5월 임시회에서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직회부 요구가 있고 나서 30일 이내에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본회의에서 부의 여부를 무기명 투표로 정한다.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5월 본회의 개최를 두고 협상 중인데, 만약 민주당 요구대로 5월 2일과 28일에 본회의가 열린다면 2일에 채 상병 특검 등 표결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결, 28일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비롯한 직회부 법안 표결 등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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