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도시의 정원사] 교통 체증 샹젤리제, ‘녹색 정원’ 변신 중

박원순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국립세종수목원 전시원실장 2024. 4.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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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백형선

정원에서 발생하는 식물성 폐기물을 자체 순환시키면 해마다 정원을 훨씬 더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 가지치기한 나뭇가지, 시든 꽃과 잎을 잘 썩혀서 퇴비로 만들면 좋은 미생물이 가득한 최상의 흙이 된다. 충분히 숙성된 퇴비는 짙은 갈색을 띠고 촉촉한 숲 냄새가 난다. 천연 토양 개량제이자 보약과도 같은 양질의 퇴비를 주기적으로 정원 토양에 얹어주는 멀칭(mulching) 재료로 활용하면 잡초 방제, 토양 수분 유지, 양분 제공 등 식물에 매우 유익한 효과를 준다.

풀과 잎 종류로 만든 고운 퇴비는 주로 꽃 화단에 섞어주고, 나무를 잘게 분쇄하여 썩힌 멀칭 재료는 나무 뿌리 주변에 뿌려주는데, 특히 4월은 정원의 모든 식물들에 보약을 주는 행복한 시간이다. 한때 찬란했던 잎과 꽃들, 왕성했던 줄기들이 소임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세대의 식물들에 자양분이 되어주는 이 순환 과정이야말로 탄소 중립을 위한 지속 가능한 가드닝의 핵심이다.

정원에서 나오는 유기물을 퇴비화하면 폐기물 매립에 따른 처리 비용과 온실가스의 주범인 메탄 가스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페어마운트 파크 유기물 재활용 센터를 통해 공원과 녹지, 도시 숲에서 나오는 다양한 식물 폐기물을 열 곳 남짓 장소에 수집하여 퇴비로 만드는데, 매년 평균 5000톤의 유기물을 재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퇴비는 다시 녹지에 활용하거나 시민들에게 나누어준다. 이는 현대의 도시 생태계를 위한 가장 모범적이며 친환경적 자원 순환 사례로, 우리나라의 주요 도시뿐 아니라 전국의 수목원, 식물원, 크고 작은 정원에도 반드시 구축해야 할 시스템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120년 전통의 롱우드 가든에서도 1990년대부터 퇴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만㎡ 면적의 퇴비 시설에서 6100㎥의 유기물 쓰레기를 처리하며, 정원 전역에서 수집한 풀과 나무 재료를 지역 마구간에서 가져온 말 분뇨와 혼합한 후 4개월에 걸친 퇴비화 과정을 거친다. 그 결과 3800㎥에 이르는 퇴비와 멀칭 재료를 생산하는데 그중 450㎥는 롱우드 가든 정원에 다시 사용하고, 남는 물량은 가든숍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판매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롱우드 가든은 연간 쓰레기 매립 비용을 5만~20만달러까지 절약한다.

2015년 파리 협정을 통해 많은 국가가 탄소 중립 목표와 할당량을 자발적으로 설정하게 되면서 국가와 기업들은 탄소 중립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도시 숲과 정원은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산화탄소를 스펀지처럼 바로 흡수하는 ‘그린 카본(green carbon)’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애플과 구글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사옥에 대규모 정원을 조성한 것은 직원들의 복지 향상과 창의성 증진을 목적으로 할 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공간을 통해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고 탄소 중립에 기여하는 세계 흐름에 적극 동참하기 위함이다. 프랑스 파리의 명물 샹젤리제 거리 역시 올해 올림픽 개막 전에 완성을 목표로 대대적 새 단장 공사를 진행 중이다. 교통 체증과 환경오염으로 피폐해진 거리를 자연과 사람, 탄소 중립을 위한 ‘녹색 정원’으로 변모시켜 전 세계인들에게 친환경적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목적이다.

탄소 흡수력이 뛰어난 식물이 가득한 숲과 정원을 가능한 한 많이 조성하면 자동차 배출 가스 등으로 발생하는 막대한 온실가스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소속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국립세종수목원, 국립한국자생식물원 등 세 수목원에서 나무들이 흡수하는 탄소량은 중형 자동차 약 3만5000대가 1년간 내뿜는 양과 맞먹는다. 종류와 나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큰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연간 수십 킬로그램 흡수하고, 줄기와 뿌리에 오랜 세월에 걸쳐 탄소를 수백, 수천 킬로그램 저장한다.

도시의 정원에 널리 퍼져 있는 관목들 역시 빠르게 성장하며 이산화탄소를 왕성하게 빨아들이는 탄소 흡수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국립세종수목원 도시생물다양성실의 연구 결과로는, 관목들의 연간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종류마다 다르다. 가령 히어리, 박태기나무, 병꽃나무처럼 탄소 흡수량이 높은 상위 그룹 나무들은 하위 그룹에 비해 연평균 탄소 흡수량이 여덟 배 이상 많게 나타났다. 하지만 한 가지 종류를 대군락으로 심기보다 높이와 크기, 형태가 다른 식물을 여러 층으로 배치하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며 탄소 흡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시의 정원사들이 각자 탄소 중립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가드닝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영국에서는 3000만 명에 이르는 정원사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최근 왕립원예협회에서 탄소 중립을 위한 실천 방안으로 제시한 사항이 있다. 가령 정원 폐기물, 플라스틱, 유리, 금속 등 반영구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정원의 재료를 재활용하여 순환시키는 것이다. 또한 정원을 관리하는 장비와 차량을 친환경 전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바꿔 휘발유 사용을 줄이자는 내용도 있다. 탄소를 잘 흡수하는 꽃과 나무를 많이 심었더라도, 일회용품이나 자동차 등으로 탄소를 더 많이 배출했다면 탄소 줄이는 효과가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런 내용을 적극 실천할 수 있는 정책과 지원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제는 예쁘게 자신만의 정원을 만드는 일이 지구와 생명 공동체를 보호하고 살리는 모두의 노력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 때문에 아름다운 정원 디자인과 더불어 탄소 중립을 위한 환경 친화적 계획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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