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의 나라’ 된 아이티...“대지진 구호물자 이권 싸움이 조폭 키워”

김동현 기자 2024. 4.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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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물자가 독이 돼… 현지 교민들에 실상 들어보니
/로이터 연합뉴스지난달 25일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대통령 궁 인근에서 갱단의 방화로 불에 탄 차량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공단 앞에는 시체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살인자들이 범행한 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일부러 쌓아놓은 겁니다. 총알이 공장 건물 창문을 뚫고 들어와 테이블 위에 떨어지는 일도 종종 벌어졌어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구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버티는 것뿐이었습니다.”

지난달 24일 미국 해병대가 급파한 헬기 편으로 중미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를 탈출해 미국 뉴욕으로 대피한 재미 교포 선교사 하명진(72)·노혜영(72) 부부가 전화로 본지에 전한 상황이다. 이들은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소나피 공단’이 무장 세력에 의해 봉쇄돼 있다”고 말했다. 이 공단은 가구 제조 업체 등 한인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17일 아이티에서 한 아이가 보호자와 길을 걷고 있다./AP 연합뉴스

이들을 위협하는 무장 세력은 침공한 외국군도,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도, 분리주의 반군도 아니다. 속칭 ‘깡패’ ‘건달’이라고도 부르는 조직폭력배(조폭)들이다. 만성적인 부정부패와 치안 불안을 극복하지 못하고 조폭 일당이 나라를 손에 넣으며 아이티는 무정부 상태에 빠져 있다. 노예들이 프랑스 식민 세력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여 1804년 중남미 최초로 세운 독립국인 아이티는 빈곤과 정정 불안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해 왔다.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 당시 대통령이 집에서 괴한들에게 피살된 뒤 국정은 마비 상태로 빠져들었고, 지난달엔 조폭들이 교도소를 습격해 죄수 4000여 명을 탈출시키는 등 사실상 정부를 장악하면서 나라는 아수라장이 됐다.

통신 불안에… 손편지 써서 사진으로 전송 - 지난 8일 아이티에서 도미니카공화국으로 탈출한 지준구씨가 본지에 보내온 인터뷰 서면 답변. 통신이 불안정해 손으로 한꺼번에 적은 후 사진을 찍어 스마트폰 메신저로 보냈다.

‘조폭이 접수한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극도의 혼란과 무질서로 뒤덮인 아이티의 실상을 듣기 위해 현지에서 활동해온 선교사 등 교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국가 시스템이 마비된 탓에 전화 연결이 자주 끊겨 여러 날에 걸쳐 인터뷰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비교적 부유한 축에 드는 외국인들은 몸값을 노린 조폭들의 납치 공포에 직면한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 8일 헬기 편으로 포르토프랭스를 떠나 국경을 맞댄 이웃나라 도미니카공화국으로 탈출한 지준구씨의 증언이다. (통신 상태가 좋지 않아 그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종이에 손으로 쓴 후 이를 찍어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19살 우리 아이가 납치돼 수소문 끝에 협상하여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이는 구타를 당해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포르토프랭스에선 지금 갱들과 경찰이 수시로 교전을 합니다. 하지만 경찰이 갱들을 공격하기엔 병력도 부족하기에 간신히 방어만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도시의) 90%는 갱들 손에 있습니다.”

1844년 분리될 때까지 아이티와 한 나라였던 도미니카공화국은 외국인들의 대피처가 되고 있다. 아이티로부터 한인들이 대피하도록 도운 최상민 도미니카공화국 한인회장은 “조폭이 사람들에게 세금 명목으로 거금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총으로 쏘거나 내쫓는다더라”고 말했다.

외교부가 진행한 철수 작전으로 최근까지 한인 13명이 아이티를 탈출했지만 60여 명은 현지에 머물고 있고, 일부는 앞으로도 떠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주민과 경찰이 합심해 어렵게 조폭의 침투를 막아내고 있는 북부 카프아이시앵에 머물고 있는 이현우 한의사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북부는 비교적 안전해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은 없지만, 넉 달 동안 식량이 반입되지 못해 극도로 열악하다”고 했다. “공항은 폐쇄되고 항구는 갱이 모두 장악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아이티인 목사님이 미국에서 지인이 보낸 사역 물품을 챙기려고 상자를 열었더니 알지도 못하는 무기가 가득 담겨 있더랍니다. 어느 과정엔가 갱들이 무기 반입을 위해 바꿔치길 한 겁니다.” 장마르탱 바우어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아이티사무소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공항과 항구가 막혀 물자가 반입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아이티는 인구 절반인 500만명이 식량 위기를 겪는 ‘비상사태’에 처했다”며 “지난해 3월과 비교해 옥수수 가격은 42%, 쌀은 35%나 올랐고, 그나마 있던 WFP의 재고도 이달 말쯤이면 고갈 위기”라고 했다.

지난 8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한 무장 경찰이 총을 들고 거리에 서 있다./AFP 연합뉴스

아이티를 무정부 상태로 빠트린 조폭 집단은 연합조직인 ‘G9′이다. 군부독재와 쿠데타, 정파 간 권력 다툼이 계속되는 이곳에서 조폭들이 비공식적인 ‘해결사’로 동원된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들을 통제하던 정치 세력들이 갈등과 리더십 부재로 혼란에 빠져 있는 동안 조폭들은 미국 등에서 총기류를 밀반입해 중무장하며 통제불능의 무장 세력으로 거듭났다. 22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0년 대지진 당시 쏟아졌던 막대한 지원이 이곳의 조폭들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포르토프랭스에 체류 중인 박창환 선교사는 “(2010년 지진 후) 각 나라로부터 들어온 구호물자와 구호자금은 가난한 나라인 아이티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며 “구호 물자를 둘러싼 이권 싸움이 시작된 후부터 아이티에 총을 든 조폭들이 수면 위로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2004년 쿠데타 당시 혼란 수습을 위해 파견된 유엔 평화유지군이 2017년 철수하면서 생긴 치안 공백 상황이 아이티 조폭들에게는 세력 확장의 기회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달 아이티를 방문했던 최현덕씨가 갱단이 공항으로 가는 길을 막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오토바이를 타고 막히지 않은 길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최현덕

통화한 교민 중 다수는 지금의 상황을 개탄하면서도 국제 사회가 아이티를 ‘구제불능의 나라’라고 버려두지는 않기를 호소했다. 박창환 선교사는 “아이티는 6·25 전쟁 후 가난에 허덕이던 한국을 도왔던 나라”라며 “지금 아이티의 처지는 한국과 너무나도 상반되지만, 지금의 불행에 가려진 아름답고 정감 가는 모습 또한 많은 사람들이 알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이티 아이들을 후원하는 장학재단 ‘라이징 스타’를 2021년부터 운영하며 아이티를 자주 방문해온 최현덕(43)씨도 그런 당부를 했다. (그는 지난달 아이티를 찾았다 돌아가려던 중 공항 가는 길을 갱단이 장악하는 일을 겪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도미니카공화국 국경을 넘어 간신히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그곳에 희망의 싹을 틔우려 헌신하고 있습니다. 중남미 최초 독립국이라는 저력을 가진 아이티가 하루빨리 평화를 되찾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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