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신인류의 사랑법

경기일보 2024. 4. 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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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수 아이알컴즈 고문

우리 삶의 양태 중 가장 무비판적으로 수용체화된 문화가 있다면 그건 아마 일부일처제일 것이다. 포유류 중에서도 영장류의 사회적 일부일처제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인용하면 현재 인류의 본성과 심리 속에는 수렵 채집 생활의 잔재들이 장기간의 진화 과정에서 뿌리 깊게 스며 있다. 이렇게 내재된 습성과 특질이 농경 정착 이후 더욱 발전해 간 종교의식 등과 합성돼 현재의 모습으로 제도화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현대의 최첨단 문명과 맞물려 호모 사피엔스들의 사랑법은 과거 터부시되던 성적 특질을 뛰어넘어 향후에는 다양한 형식의 라이프스타일로 진화하리라 본다.

‘매기스플랜(Maggie’s Plan)’이라는 로맨스 영화가 있다. 아이는 갖고 싶어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수정을 시도하면서도 결혼 생활 자체는 원치 않는 감성파 뉴요커 ‘매기’의 연애 스토리를 그린 작품이다. 미래에는 우리가 자연스레 맞이하게 될 우주시대의 ‘로미오와 줄리엣’일지 모른다. 소설가를 꿈꾸는 철없는 대학교수 ‘존’를 만나 우연히 사랑에 빠져 동거하며 귀여운 딸도 낳고 가정도 꾸민다. 하지만 이들의 불 같은 사랑은 ‘존’의 변해 가는 모습에 ‘매기’가 실망하며 결국 운명적 사랑을 믿기보다는 행복한 관계를 선택하는 인간 이성의 로직이 작동하며 가정은 해체된다.

요즘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적 관심을 끌 정도로 비상이다. 지난해 4분기의 합계 출산율이 0.65명으로 역대 최저다. 혹자는 전쟁국가인 우크라이나보다 낮고 중세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대보다 위태롭다고 주장하니 심각성이 피부로 와 닿는다. 출산의 첫 번째 관문인 결혼도 중대 결심을 해야 하는 형국이라면 이제는 새로운 형태의 부부관, 라이프 스타일의 정립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프랑스는 시민연대계약(PACS)이라는 제도를 통해 결혼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차별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르고 부부에 준하는 사회적 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다. 1999년 도입돼 출산율 상승에도 도움이 됐다고 하며 동성 커플이나 비혼 부모도 가족을 이뤄 사회 구성체의 일원으로 손색없이 살아간다.

우리나라도 결혼을 선택하는 시기를 늦추거나 결혼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평균 초혼 연령도 2022년 기준 남자 33.7세, 여자 31.2세로 높아졌다. 미래에는 가족이라는 집단 형식을 자유로이 선택하는 세상으로 변모할 것이다. 일부일처제를 포함한 결혼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과 성 역할이 바뀌고 공동의 육아 시스템도 불가피하게 도입될 것이다. ‘혈연 중심’에서 ‘관계 중심’의 가족 형성이 지배적이 되고 원활한 자녀 입양과 이민자 귀화 포용, 미혼모 권리 신장, 공공주택 개념의 확산 같은 사회적 이슈도 중요 어젠다가 될 것이다. 요즘 가부장적 유교문화에서 스스로 탈피하는 MZ세대 사이에서 소위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자를 의미하는 ‘없던 남편’, ‘없던 아빠’가 등장하며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가족 가치관이 확산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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