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가족협 위원장 “이젠 슬픔보다 구명조끼·수영 알려줘야”

장윤 기자 2024. 4. 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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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주기] [4]
4월 18일 오후 경기도 시흥 큰나무교회에서 세월호참사 단원고가족협의회 김정화 위원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 장련성 기자

김정화(57) 0416단원고가족협의회(단가협)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로 딸 김빛나라양을 잃었다. 이후 많은 주변 사람을 미워했다고 한다. 정부도, 같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도 증오 대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누군가를 미워하면 살기가 더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대통령은 미워하고, 특정 정당만을 지지하는 것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이 앞으로는 ‘희생’ 아닌 ‘안전’을 돌아보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18일 경기 시흥의 집 근처에서 기자와 만났다. 그는 세월호 참사 2년 뒤 경기 안산에서 이곳으로 집을 옮겼다. 참사로 세상을 떠난 딸이 생각나 안산에 살 수 없었다고 한다. 딸 빛나라양은 단원고 학생이었다.

김 위원장은 “청소년들에게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아느냐고 물으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준석 선장’ 이야기부터 나오더라”며 “이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아야 할 이유가 아니다”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며 “사고가 발생하면 입을 수 있는 구명조끼가 배에 비치돼 있는지, 바다에 빠지면 수영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배에서 뛰어내릴 때는 머리 먼저 물에 닿도록 뛰어내리지 말고, 다리를 약간 든 상태에서 하체가 먼저 물에 닿도록 뛰어내려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머리에 충격을 입어 뇌 손상이 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18일 오후 경기 시흥 큰나무교회에서 만난 단원고가족협의회 김정화 위원장.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4월 16일이 국민안전의 날로 지정된 만큼 이날은 단순히 희생자들을 추모하기보다 안전에 대해 환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김 위원장은 ‘세월호 소식이 지겹다’는 말이 상처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유가족들도 ‘세월호’ ‘희생자’라는 말 자체만이 부각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날이기도 하지만, 국민 안전의 날이기도 하다”며 “매년 이날이 될 때마다 그저 희생자를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변을 점검하고 되돌아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단가협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모여 만든 세 단체 중 한 곳이다. 단원고 희생자 111명의 유족이 소속돼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6일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식에 참석했다. 그는 “유가족들에게 10주기라고 해서 다를 건 아무것도 없다”며 “오히려 10주기 행사가 진정 유가족을 위한 것이 맞느냐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행사장은 단체로 노란 옷을 맞춰 입은 이들로 붐볐고, 정치인과 시민 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곳곳에선 집회와 행진도 했다”며 “하지만 온통 노란색으로 꾸민 행사장 풍경이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시민이 만든 것이니 달라’며 노란 종이 나비를 나눠 주는 이들도 있었고, 한 지인은 기억식에 입고 가라며 노란 옷을 선물했다”며 “남편과 저는 검은 옷을 입었다. 그저 죽은 아이 엄마로 울고 슬퍼하고 싶었다”고 했다.

4월 18일 오후 경기도 시흥 큰나무교회에서 세월호참사 단원고가족협의회 김정화 위원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장련성 기자

김 위원장은 “참사 이후 민주당은 우리한테 여러 차례 손을 내밀었고, 5년간 정권을 쥐었다”며 “결국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행사장에는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이 참석했는데, 몇몇 유가족은 일부러 피하더라”며 “아이들을 추모하러 오셨는데 그래선 안 된다 싶어 이들과도 인사를 나눴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참사 직후에는 누군가 도움을 주면 ‘당신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아느냐’며 손길을 뿌리쳤다”며 “세월이 지나 되돌아보니 그때 받은 마음이 무척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당시 받은 배려를 되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단가협은 지난 2021년 청소년을 대상으로 분기마다 안전 홍보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경로당도 방문했고, 쌀 나눔 행사도 벌였다. 앞으로 단가협 차원의 봉사 횟수를 늘리고 봉사 단체로 정식 등록할 계획이라고 한다.

김 위원장 가족은 세월호 참사 2년 뒤인 2016년 2월 안산을 떠나 경기 시흥으로 이사했다. 그는 “큰딸을 키우며 안산 안 가본 곳이 없다”며 “어딜 가든 큰딸 생각이 나 살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일 큰딸을 생각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둘째 딸에게 보여주기 미안한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둘째 딸 나이가 큰딸이 떠난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에는 불안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요즘은 시흥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처음 이사 갔을 땐 주변에 한동안 세월호 참사 유가족임을 숨겼다. 김 위원장은 “둘째 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담임교사에게 ‘언니를 잃고 난 뒤 진정한 친구를 못 사귀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은 걸 계기로 세월호 유가족임을 밝히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사 간 지 한 달이 지난 뒤였다. 김 위원장은 이후 둘째 딸 반의 학부모들과 교류하며 자기 처지를 밝혔고, 이들에게 위로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사실을 밝혔을 때 주변 분들이 특별히 동정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며 “그저 묵묵히 기도해주는 주변 사람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때 인연을 맺은 어머니들과는 매달 만나 식사하며 수다를 떨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최근엔 지인에게 얻은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피아노 건반 앞에만 앉으면 모든 것을 잊고 집중하게 된다”며 “유가족이라고 계속 우울하게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피아노도 치고, 꽃밭도 가꾸면서 ‘힐링’하는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큰딸은 비록 떠났지만, 뜻을 함께하는 유가족들과 함께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며 “훗날 딸을 만났을 때 ‘엄마가 네 몫까지 잘 살고 왔다’며 끌어안고 인사할 것”이라고 했다.

☞0416 단원고 가족 협의회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이 모여 만든 단체 3곳 중 한 곳으로, 단원고 희생자 111명의 유족이 소속돼 있다. 다른 유가족 단체로는 4·16 세월호 참사 가족 협의회(136명), 세월호 일반인 유가족 협의회(42명)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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