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칼럼] 22대 국회 '역대 최대' 법률가들의 4가지 책무
과거 일보다 미래 아젠다 집중
지금은 경제살리기 힘 모을 때
지대추구·직역이익 극복도 중요
野 율사들 사법부 흔들고 겁박하면
스스로에 돌아올 부메랑 될 것
허원순 수석논설위원
로스쿨 도입은 김영삼 정부가 시작했지만 실제 발족은 노무현 정부 때였다. 특정 정권의 모험적 구상을 10년 뒤 다른 정파가 제도로 실행했다. 법 전문가, 특히 변호사를 많이 길러 서민도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를 받게 하자는 취지가 진영논리를 넘어섰다. 로스쿨이 세계화 과제에 담겼을 당시만 해도 ‘사시는 3대까지, 행시 합격하면 당대는 먹고 산다’고 했다. 판사든 검사든 전관예우는 지금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만연했다. 변호사는 구름 위에서 그들만의 세상에 있었다. 논란도 있었지만 어떻든 변호사의 대중화는 어느 정도 이뤄졌다.
적어도 문제지만, 너무 많아도 문제인 것은 법조인도 마찬가지다. 굶주린 변호사는 배고픈 사자보다 더 무섭다는 말 그대로다. 변호사 천국인 미국에서는 교통사고라도 나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게 구급차도, 경찰도 아닌 변호사라는 냉소적인 말이 있지 않나.
로스쿨 정착으로 한국도 벌써 변호사 3만 명 시대에 들어섰다. 법 전문가는 확 늘었는데 법률서비스의 보편화, 서민에 다가서는 변호사는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법치주의 성숙, 준법의식 고양, 법률자문시장 선진화는 또 얼마나 이뤄졌는지 실감이 안 난다. 확실한 것은 ‘생계형 변호사’가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치솟는 로펌 빌딩, 커지는 송무 시장, 기업자문 시장 같은 외형 성장보다 대폭 늘어난 율사들이 법 문화와 준법의식 고취에 얼마나 제대로 기여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늘어난 법률 전문가들이 국회까지 장악했다. 22대 국회의원 당선자 중 61명, 역대 최고다. 단일 직업군으로는 단연 1위다. 사법부를 넘어 입법부 권력까지 쥔 것이다. 직능별 안배·균형이 무너졌다. 미국 의회에 변호사가 많다지만 경우가 다르다. 그쪽은 검사장·부장 판사 등 재조 경력을 선거에 바로 전용하기보다 기초 자격증으로 변호사를 딴 뒤 정치를 직업 삼아 바닥에서 다져올라가는 게 관행이다. 진입 경로가 다르다.
22대 의원 5명 중 한 명꼴인 법률가들은 법치주의의 선봉장이 될 것인가. 법원을 보호하고, 판사들이 법과 사법적 양심에 따라 전체 국민만 보면서 재판 바로 하라고 응원하는 법의 수호자가 될까.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선거 과정에 드러난 행태, 변호한 사건들, 전관예우를 누린 경력을 보면 이들의 준법정신과 보편적 상식이 더 선량하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더 큰 걱정은 총선 후 며칠을 못 참고 내뱉는 놀라운 말이다.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무서운 말이 30대 변호사 당선인 입에서 공개적으로 나왔다.
법률가 직역의 본질과 책무를 깊이 성찰하길 바라면서 61명 법조인 의원에게 네 가지를 당부한다. 무엇보다 진정한 법의 수호자가 돼야 한다. 법원에 대한 공격자가 되어선 안 된다. 법률 전문가가 사법부와 법의 정당한 권위를 선봉에서 공격하면 나라 미래는 없다. 좋은 법을 만들고 악법은 철폐하는 국회의원의 기본 역할도 응당 필요하지만, 사법부를 정치로부터 떼어 홀로 서게끔 돕는 것도 중요하다.
둘째, 과거 일보다 미래 아젠다 발굴에 나서고 협력해주기 바란다. 검사든 판사든 법조인은 기본적으로 지나간 일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기업인, 일반 공무원, 사회운동가들과 큰 차이점이다. 그런 직업의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셋째, 경제 성장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형평도 좋고 분배도 좋다. 정파적 관점에 따라 격차 해소에 관심을 갖는 것도 좋다. 하지만 지금은 한두 해라도 경제부터 살려놓고 성장잠재력을 조금이라도 올려놓은 뒤 그렇게 가도 늦지 않다. 이대로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진 채 악순환 고리에 빠져들면 최소한의 복지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파이를 키워나가야 증세도, 친노조도 가능할 것이다. 넷째, 법률가들끼리 여야를 넘나드는 ‘변호사 계파’를 만들어선 곤란하다. 누구라도 ‘걸면 걸리는’ 배타적인 변호사법을 고수하면서 직역 이익을 지켜온 게 역대 국회 율사들 행태였다. 서로 ‘투쟁’하는 척하면서도 뒤에서 변호사끼리는 따로 손잡는 지대추구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37명을 위시한 거대 야당 법조인 당선인들은 특히 법원을 손아귀에 넣으려거나 재판을 압박해선 안 된다. 3권 분립 흔들기일뿐더러 스스로 소수파가 됐을 때 부메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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