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차별을 강요하는 노동에서 권리를 생산하는 노동으로

이동영 2024. 4. 1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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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영 가톨릭관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강릉시 사회복지사협회 회장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맞아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은 복지 수급에 의존하는 ‘기생적 소비자’로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 가치를 생산하는 ‘주체적 노동자’로 살아야 할 것인가? 장애인도 한 사람의 시민이라고 한다면, 후자에 정당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동의하는 많은 사람들조차 장애인이 노동을 통해 주체적 삶을 산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수긍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상당하다. 이처럼 정의로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라는 불편한 진실은 왜 발생하고 왜 해결되지 않는가? 기존의 노동개념으로의 편협한 접근에 입각한 정책은 해안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4차 산업혁명을 필두로 포스트 노동사회로의 진입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고, 변화하는 사회 속 장애인의 참된 노동권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기존 산업사회의 노동개념은 기본적으로 ‘장애 차별적’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장애인’이라는 개념의 탄생 자체가 노동기반의 초기 산업사회에서 만들어진 산물인 것에 연유한다. 자본논리로 규정한 노동을 기준으로 이윤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몸(일할 수 있는 몸·the abled body)과 그렇지 않은 몸(일할 수 없는 몸·the disabled body)을 구분했는데, 후자가 바로 노동불가능한 사람으로서의 장애인(disabled people)이라 규정된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고, 노동능력에 따른 경제적 가치산출의 잣대에 사람을 정상과 비정상, 인정과 불인정으로 재단하며 상품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이 노동기회를 갖기란 매우 어렵고, 설사 갖는다 해도 매우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일 수밖에 없다. 복지에 의존하는 기생적 소비자의 삶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차별로 이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장애인의 약 70%가 비경제활동인구로서 실업자조차 되지 못하는 그림자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노동개념의 정립 없이는 ‘장애인 노동’은 개념 모순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 부적합하다. 이에 기반한 논의와 정책 역시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제 새로운 개념의 재구성과 체계적용이 요구된다. 출발은 기존 산업사회에서의 전통적 노동개념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노동은 가치창출을 통해 사적 성장과 공적 공헌을 하며 드러내는 삶 자체여야 한다. 고용주 일방의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타인과 공동체에 기여하는 공통자원이어야 한다. 노동은 이윤창출의 수단이 아니라 가치를 만들어가는 실존이고, 다양한 본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포스트 노동사회에서 장애인은 더 이상 일률적 노동능력에 따른 원천적 배제나 불가피한 소외에 매몰되지 않고, 서비스 대상자가 아닌 권리 주체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최근 이러한 개념을 토대로 추진 중인 시범사업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사업’은 그 접근과 시도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기존 공공일자리사업과 달리 장애인이 단순 서비스 대상이 아닌 주체자로 참여한다는 점이 다르다. 장애특성 등 상황과 개인이 처한 환경적 맥락을 고려해 노동의 내용과 정도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일의 성격과 범위가 권리중심적이라는 점(이윤 극대화가 아닌 권익옹호 등 가치의 다양성을 감안), 충분한 보상이 수반된다는 점(최저임금 혹은 생활임금 이상의 보장) 등이 있다. 향후 강원특별자치도에서도 이 사업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권리중심적 노동으로 착근하기 위해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통적 노동에 대한 관점을 과감히 변화시키고, 공고한 법적 근거 마련과 적정한 예산담보를 통해 확장해 나가야 한다.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노동이 장애인에게 차별이 아닌 권리가 되어 단말마적 몸부림이 아닌 가치발현의 과정으로 장애인의 ‘삶’ 자체에 온전히 스며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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