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돈선의 예술인 탐방지도 -비밀의 방] 72. 시는 나를 위해 켜놓은 등불 같은 것 - 시인 김창균

최돈선 2024. 4. 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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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도 침범할 수 없는 나의 바다, 나의 시
시집 ‘슬픈 노래를 거둬 갔으면’ 발견문학상 수상
초교 2학년 중앙일보 동시 입선…1997년 등단
‘먼 북쪽’‘징검돌을 놓다’ 등 27년간 4권 출간
평생 고성서 교편생활 현 한국작가회 강원지회장
2019년 고성산불 서재 제외 터전 대부분 소실
피해 딛고 건물 개축 아내 최혜경 화가와 새시작
▲ 김창균 시인과 아내 최혜경 화가

2019년 4월 4일 저녁 7시 고성군 야산에서 산불이 났다. 불은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민가를 덮쳤다. 거대한 불덩이가 휙휙 날아다녔다. 소나무 숲도, 집도, 외양간도 불길에 휩싸였다. 속초 시내에 번진 불로 주민 1만여 명이 긴급대피했다. 공중을 나는 새도 바람에 휩쓸려 바다에 처박혔다. 강릉에도, 삼척에도, 미시령 넘어 인제에도 거대한 불덩어리가 포탄처럼 날아가 불을 질렀다. 정부는 이 지역에 긴급재난을 선포했다.

문득 나는 김창균 시인이 걱정되었다. 그는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 살고 있었다. 불길이 진화된 며칠 뒤, 나는 김창균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놀랍게도 불은 그의 집 뒷동산에서 일어난 불이었다. 시인이 아내와 저녁을 먹으려 할 무렵, 불길이 순식간에 집을 덮쳤다. 다급한 나머지 시인은 서재에서 노트북과 USB만 달랑 들고 집을 빠져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서재만 온전히 남고 다 탔어요. 그럴 줄 알았더라면 아내의 방에 있는 앨범이나 가져왔을걸요.”

가족사가 고스란히 담긴 앨범이었다. 그 아름답고 고마운 추억들이, 때로는 눈물겨웠고 때로는 웃음이 번지는 장면 하나하나가, 이젠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것이 시인은 두고두고 마음이 아팠다.

▲ 김창균 시인의 시집들

그리고 5년이 지나갔다. 봄은 어김없이 다시 고성을 찾아왔고, 국어 교사였던 김창균 시인도, 역사 교사였던 그의 아내 최혜경 님도 학교에서 퇴직했다. 그리고 나는 2주 전 강원도민일보에 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김창균 시인이 시집 ‘슬픈 노래를 거둬 갔으면’으로 제9회 발견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심사위원들은 “쓸쓸함으로 기우는 삶의 정서를 채록해 내는 시인은, 서정의 미학이 처음부터 끝까지 절차탁마의 표현력으로 입증되고 있다”고 평했다. 김창균 시인은 수상소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시는 나를 위해 켜놓은 등불 같은 것이지만 곁에 누군가가 있어 줘서 고마웠다” 그만큼 그는 곁을 사랑하고 고마워했다. 아마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아닐까. 김창균 시인이 유일하게 쓴 산문집 ‘넉넉한 곁’엔 그런 사연들이 가득했다.


조용한 카페 이층에서 내다보는 바다는 하늘과 경계가 없었다. 분명치 않은 파스텔의 바다는 옥빛이었다. 김창균 시인과 나는 그곳에서 한 시간여를 머물렀다. 흰 갈매기 한 마리가 빨간 등대를 비끼어 날았다. 산골 벽촌 출신인 김창균 시인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강릉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때 바다를 처음 보았다. 그리고 쭉 고성군에서만 교편생활을 했다. 바다는 시인의 발목을 꼬옥 붙잡고서 놓아주지 않았다.

“찬바람 일 때/항구쪽으로 이마를 맞댄 집에 사는 여자들은/저마다 항구에 나와 명태의 배를 가르는” 그 비린내의 바다를 시인은 떠날 수가 없었다.

▲ 김창균 시인의 모태가 된 고성 바다 풍경.

바다는 시인의 모태였다. 자신의 내장까지 다 내어주는 명태의 바다였다. 그의 첫 등단작품이 ‘빈집’이었듯, 온전히 비어있음은 또 다른 채움임을 김창균 시인은 깨닫게 되었다.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시는’ 명태 시인. 그가 바로 텁수룩한 수염의 김창균이었다. 이제 마악 바다에서 돌아온 어부처럼 시인은 익숙한 풍경에 스며들어 오래 머물렀다. 하지만 시끄러운 시장 터에서, 어둡고 비좁은 골목길에서, 외진 오솔길에서 우린 흔히 만나는 들꽃인 양 무심히 그를 스쳐만 갈 뿐이다.


시인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중앙일보에 동시가 입선되었다. 신기했다. 자신도 시를 쓰는 시인이 될 수 있을까. 1년 후배 김남극과 더불어 시인의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하기 시작했다. 수없이 낙방했으나 김창균은 독서와 시심 다듬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 김창균과 김남극은 나란히 심상에 등단하여 시인이 되었다. 그때가 1997년이었다.

영동에서 가까이한 시인은 박기동, 신승근, 박재상 시인이고, 심상 출신 시인들의 모임인 해변시인학교를 통해 윤용선 시인을 만났다. 그의 추천으로 ‘표현시’ 동인에 가입하여 현재 동인회장을 맡고 있다.

2023년 9월 <표현>은 30집을 발행하였다. 또한 김창균 시인은 현재 한국작가회의 강원지회장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 김창균 시인 집 뒤란에 산불로 탄 고목이 쓰러져 있다.

등단한 지 27년 동안 김창균 시인은 4권의 시집을 펴냈다.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 듣는다’, ‘먼 북쪽’, ‘징검돌을 놓다’, ‘슬픈 노래를 거둬 갔으면’. 과작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세월이면 보통 시인들은 열 권 이상을 묶어내는데, 김창균 시인은 시 한 편 내밀기를 몹시 조심스러워했다.

그만큼 그의 시는 단단했다. 화석처럼 분명한 결이 시어에 드러났다. 그렇게 오래 견디어 낸 그 결들은 날것인듯하지만 아름다웠다. 그의 시엔 풍부한 사유가 깃든 서정성이 짙게 배어 있다.

“미역에는 귀가 있다/심해의 소리까지 들었다 놓는 귀가...”

그런 바닷가의 쓸쓸한 풍경을 시에서 우린 떠올린다. 그러면 “소금기를 귓속에 묻으며/ 귀가 서서히 멀어지는 동안” 우린, 처마에 걸린 한 타래 미역 줄기로 변신하여 서걱서걱 마른 몸으로 겨울을 난다.

그의 시어는 찬찬히 읽어나갈수록 자신도 모르게 또 다른 사유의 세계에 몰입하게 된다. 시가 생각의 결이 깊다는 의미이다.

▲ 서재에 앉아있는 김창균 시인.

시인의 집으로 가는 길옆의 야산들은 거의 민둥산이 되어 있었다. 황량했다. 마치 서부영화처럼 뿌연 먼지가 이는 벌판을 보는 듯했다.

고성산불이 남긴 상처는 5년이 되어도 아물지 않았다. 모두 울창한 소나무 숲이었더랬다. 100여 년이 훨씬 넘은 소나무들이 수백 그루도 넘게 타버렸다. 뼈대만 남은 나무의 잔해가 허허로이 야산 능선에 늘어서 있었다. 집들은 대개 복구가 되었지만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웠다. 놀랍게도 시인의 집은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깔끔하게 개축된 건물이 햇빛을 흠뻑 받고 있었다.

화가인 시인의 부인이 마당에 나와 있었다. 보라색 작은 대문 안쪽 마당으로 백일홍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이 집에서 온전한 것은 백일홍나무와 시인의 서재뿐이라고 했다. 나머진 모두 불탔다. 검게 타고 그을린 슬래브 건물 전체를 허물고 다시 개축했다.

곁들여 아내의 작업실도 마련했다. 몬드리안의 색채가 연상될 만큼 건물은 밝은 색채로 칠해져 있었다. 부엌 벽엔 화가인 시인의 아내가 그린 유화 한 점이 걸려 있었다. 유일하게 남은 그림이라 했다. 희미한 색채에 잠긴 알몸의 검은 나무였다.

김창균 시인은 결혼 전까지 아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전공이 역사여서 그저 취미 삼아 하려니 했는데 상당한 실력을 갖춘 화가임을 알게 되었다. 산불의 피해 위에 건축된 아내 최혜경 화가의 작업실은 산뜻한 건물로 이 집의 면모를 일신했다.

▲ 알록달록한 밝은 색채기 눈에 띄는 아내의 작업실.

뒤란은 120년도 넘은 고목들이 쓰러져 있었다.

저쪽 능선으로 나란히 도열한 병사들처럼 불에 탄 나무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형해(形骸)가 된 나무 한 그루가 금강산 쪽을 바라보며 펭귄처럼 서 있었다. 나는 즉시 그 소나무를 펭귄나무라 이름했다.곁엔 나무 한 그루가 길게 누워 있는 모습이 꼭 펭귄나무와 친구 같았다.

동행하는 나무들은 모두 다 제가끔 사연이 있는 듯 싶었다. 시인

#김창균 #최돈선 #탐방지 #소나무 #고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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