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경고[이준식의 한시 한 수]〈260〉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2024. 4. 18.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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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을 때 짐은 먼저 일어나고, 신하들이 이미 잠들었어도 짐은 잠들지 못하노라.
황제인 내가 강남의 부자 영감만 못하다니, 저들은 해가 중천에 떠도 아직 이불 뒤집어쓰고 있거늘.
한데 거리에 떠도는 황제의 이 시를 예사로이 넘기지 않은 강남의 한 부호(富豪)가 있었다.
의심 많고 잔인한 황제가 개국공신을 포함하여 수만 명의 신하와 그 가족들을 처단한 사례를 보았던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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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을 때 짐은 먼저 일어나고,
신하들이 이미 잠들었어도 짐은 잠들지 못하노라.
황제인 내가 강남의 부자 영감만 못하다니,
저들은 해가 중천에 떠도 아직 이불 뒤집어쓰고 있거늘.
(百僚未起朕先起, 百僚已睡朕未睡, 不如江南富足翁, 日高丈五猶披被.)
―‘무제(無題)’ 명 태조(1328∼1398)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시로 전해진다. 황제의 어투가 분명한데 문학적 세련미라곤 없고 투박하기까지 하다. 빈민 출신으로 홍건적에 가담하여 거칠게 성장한 데다 학문을 접해본 경험조차 없었으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얼핏 보면 황제가 객쩍은 불평을 늘어놓은 것 같지만 꽤 치밀한 시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른바 ‘타유시(打油詩)’의 형식을 취했는데 이는 시라기보다는 언어유희에 가깝다. 유머러스하고 직설적이며 때로 풍자적이기도 해서 남의 주목을 끄는 데 유리하다. 황제는 타유시의 이런 특징을 십분 활용하여 자신이 국사에 매진하는 명군이라는 선전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신하들이 이미 잠들었어도 짐은 잠들지 못하노라.
황제인 내가 강남의 부자 영감만 못하다니,
저들은 해가 중천에 떠도 아직 이불 뒤집어쓰고 있거늘.
(百僚未起朕先起, 百僚已睡朕未睡, 不如江南富足翁, 日高丈五猶披被.)
―‘무제(無題)’ 명 태조(1328∼1398)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시로 전해진다. 황제의 어투가 분명한데 문학적 세련미라곤 없고 투박하기까지 하다. 빈민 출신으로 홍건적에 가담하여 거칠게 성장한 데다 학문을 접해본 경험조차 없었으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얼핏 보면 황제가 객쩍은 불평을 늘어놓은 것 같지만 꽤 치밀한 시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른바 ‘타유시(打油詩)’의 형식을 취했는데 이는 시라기보다는 언어유희에 가깝다. 유머러스하고 직설적이며 때로 풍자적이기도 해서 남의 주목을 끄는 데 유리하다. 황제는 타유시의 이런 특징을 십분 활용하여 자신이 국사에 매진하는 명군이라는 선전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한데 거리에 떠도는 황제의 이 시를 예사로이 넘기지 않은 강남의 한 부호(富豪)가 있었다. 심만이(沈萬二), 이 시를 보는 순간 그는 등골이 오싹했다. 이제 올 것이 오는구나. 의심 많고 잔인한 황제가 개국공신을 포함하여 수만 명의 신하와 그 가족들을 처단한 사례를 보았던 터다. 다음 차례가 부자 집단이란 걸 직감한 그는 자산을 처분해 멀리 도피했고, 그의 권유를 무시한 동생은 결국 파산을 맞고 오지로 유배되었다. 해학적이다 싶던 이 시에 이토록 살벌한 음모가 감추어져 있었다니.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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