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문익점·듀폰·리먼 브러더스…문명 발달을 엮어낸 ‘직물’[책과 삶]
패브릭
버지니아 포스트렐 지음 | 이유림 옮김
민음사 | 536쪽 | 2만2000원
현대 문명의 토대가 된 산업혁명은 방적기의 개량에서 시작됐다. 섬유를 모으고 연결해 실의 형태로 뽑아내는 작업을 방적이라고 한다. 방적기가 없던 인류 대부분의 역사에선 실이란 대단히 만들기 어려운 것이었다. 리바이스 청바지 한 벌에는 약 10㎞의 실이 쓰인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로 실을 뽑고 엮을 수 있게 되면서 인류의 기술과 복지는 획기적으로 도약했다.
미국 저널리스트 버지니아 포스트렐은 <패브릭>에서 직물을 통해 인류 문명을 이해하려 시도한다. 현대사회에서 직물은 빛이나 공기처럼 당연하게 존재하지만 인류 대부분의 역사에선 직물이 무척 귀했다. 인류가 직물을 얻으려는 노력이 문명의 혁신을 일으켰다. 포스트렐은 세계사의 가장 중요한 장면들에서 직물을 찾아낸다.
직물은 세계 경제를 엮어 발전시킨 물질이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해체됐지만 한때 미국의 4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 브러더스의 시작도 직물이었다. 리먼 형제들은 목화 무역업으로 부를 축적해 다른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복식부기와 아라비아 숫자를 확립하고 환어음을 발명한 이들은 중세 이탈리아의 직물 상인들이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5세에게 상환을 독촉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푸거 가문도 직물로 돈을 모았다.
직물을 얻으려는 노력이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1806년 미국인 탐험가 월터 벌링이 멕시코시티의 목화씨를 인형에 숨겨 미시시피로 밀수했다. 그 결과 미국 남부에 목화 농장들이 번성하며 노예제도가 굳건해졌다.
선사시대에서 인류는 천연섬유를 얻기 위해 동식물의 번식을 통제했지만, 현대 인류는 합성섬유를 발명해 자연을 초월하는 능력을 얻었다. 나일론은 화학 회사 듀폰이 출시했을 때 ‘기적의 섬유’라고 불렸다. 처음에는 여성 스타킹 재료로 인기였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낙하산, 밧줄, 방탄조끼 등으로 활용됐다.
포스트렐은 “직물의 이야기는 인류의 이야기 그 자체이며, 모든 곳과 모든 시대에 존재하는 전 지구적 이야기”라고 적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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