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젠더 이슈 ‘원활한 소통 기술’[책과 삶]

백승찬 기자 2024. 4. 1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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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대화 공부
켄지 요시노 등 지음 | 황가한 옮김
위즈덤하우스 | 324쪽 | 1만8500원

<어른의 대화 공부>에 나오는 한 상황을 한국적으로 옮겨보자. 대기업을 나와 스타트업을 만들어 성공한 30대 미혼 남성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30대 여성이 대화 중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가진 특권’을 언급하자, 남성은 “내가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한 줄 아느냐”며 발끈한다. 실제 남성은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숱한 좌절 끝에 현재의 위치에 이르렀다.

동성애자이자 법학자인 켄지 요시노, 데이비드 글래스고는 “사람들이 당신의 특권을 언급할 때는 대개 당신의 인생이 탄탄대로였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당신이 삶의 특정 측면에서 특권을 가졌다는 뜻이다”라고 말한다. 위 대화의 남성은 군대에 다녀오고 대기업 문화에 좌절했고 스타트업을 하며 고초를 겪었지만, 성희롱에 노출되지 않았고 불법 촬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른의 대화 공부>는 이를 두고 ‘피드백을 부풀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당신이 들은 말과 상대방이 한 말이 동일한지 확인”하라는 것이다.

<어른의 대화 공부>란 번역 제목을 보면 화술·협상법을 알려주는 자기계발서 같지만, 실상은 젠더 이슈, 정치 성향 등 싸움이 벌어지기 쉬운 주제를 두고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알려주는 실용적 인문서에 가깝다.

법학자인 저자들은 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공존의 지혜를 전하려 한다. 젠더, 성정체성, 인종, 계급 등 측면에서 소수자 편에 서되, 상대적 권력자를 악당으로 몰아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진보주의자들이 언어와 매너의 복잡한 미로를 만들어가며 스스로의 미덕과 기교를 만끽”하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는 편이다. 아울러 소수자를 지지하지만 말 한마디 잘못해 ‘매장’당할까봐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대화의 기술과 용기도 준다.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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