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미디어 동향] "팔레스타인·점령 쓰지 말라" 뉴욕타임스 보도지침 내부폭로

김예리 기자 2024. 4. 1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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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탐사매체 인터셉트, NYT 내부 문건 입수
팔레스타인·점령·난민촌 등 표현 사용 제한 "UN·국제규범 위반"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팔레스타인 국기. ⓒunsplash

뉴욕타임스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살상 보도에서 '팔레스타인' '점령' '학살' 사용을 피하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내부 고발이 나왔다. 해당 지침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이라는 사안 본질을 가리는 데다 유엔(UN)과 국제법 규범마저 위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 탐사보도매체 인터셉트(The Intercept)는 NYT 뉴스룸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살상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팔레스타인'이나 '점령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고 '대량학살'과 '인종청소'라는 용어 사용을 제한하는 지침을 입수했다며 지난 15일(미국 현지시간) 보도했다.

인터셉트는 NYT의 해당 지침은 “가자 전쟁을 보도할 때 객관적 저널리즘 원칙을 유지”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돼 있으며, 수잔 웨슬링 스탠다드에디터와 필립 팬 국제에디터 등이 작성했다고 보도했다.

NYT 지침 문건은 “유엔 총회가 팔레스타인을 옵서버 국가로 승격하거나 역사적 팔레스타인을 언급하는 등, 매우 드문 사례를 제외하고는 기사 발신지나 본문·헤드라인에 '팔레스타인'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인터셉트는 이를 두고 “팔레스타인은 영토이자 UN이 인정하는 국가(state)로서 널리 쓰이는 용어”라고 지적했다. NYT는 또한 '난민촌(난민캠프)' 대신 '동네' 또는 '지역'이라 지칭하라고 했다.

이 같은 보도 원칙은 유엔과 국제 인도법이 정하는 규범에 위배된다. '팔레스타인'은 유엔과 세계 다수 국가에 의해 공식 인정된 용어다. 유엔은 가자지구 내에서 8개 난민촌, 60만 명의 난민을 인정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유엔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별도 난민구호사업기구(UNRWA)를 세워 구호지원 활동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15일 인터셉트 보도

인터셉트는 이스라엘 당국이 팔레스타인인의 난민 지위에 대해 적대적인데, 이는 해당 용어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돌아갈 권리가 있는 땅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10월7일 이후 자발리야, 알 샤티, 알 마가지, 누세이랏 등 가자지구의 난민 수용소를 반복적으로 폭격하고 있다.

NYT는 점령지(occupied territory)라는 단어도 “가능하면 피하고 '가자지구' '서안지구' 등으로 쓰라”고 했다. 유엔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을 1967년 이스라엘이 불법점령한 점령지로 인정한 것과 배치된다. NYT 뉴스룸 직원은 익명으로 “(NYT지침이) 실제 핵심인 점령을 보도에서 기본적으로 배제한다”며 “'분쟁이 10월7일에 시작됐다'는 미국과 이스라엘 주장에 힘을 싣고 분쟁의 현실을 모호하게 만든다”고 인터셉트에 밝혔다.

NYT는 '대량학살 및 기타 선동적인 언어' 섹션에선 “학살(slaughter), 대학살(massacre), 대량살인(carnage) 같은 단어는 종종 정보보다 감정을 더 많이 전달한다”며 사용을 제한하도록 했다. '제노사이드(대량학살)'과 '인종청소' 단어 사용도 “국제법적 기준의 맥락에서만 이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며 엄격한 요건을 뒀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구호지원 반입 봉쇄로 아사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뉴욕타임스는 보도에서 이스라엘을 주체로 표기하지 않아 소셜미디어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NYT 보도 “미국 관료가 가자지구 북쪽에서 기근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다” 갈무리

반면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인 공격 묘사에는 '학살'이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인터셉트가 10월7일~11월24일 NYT, 워싱턴포스트(WP), LA타임스 보도를 분석한 결과 이들 신문은 팔레스타인에 의해 사망한 이스라엘 민간인에 “학살” “대학살” “끔찍하다” 등 용어를 독점적으로 썼다. 이는 이스라엘에 의해 숨진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해선 거의 쓰지 않은 표현들로 나타났다. 최근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는 최소 어린이 1만5000명을 포함해 3만3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NYT는 하마스가 주도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들의 10월7일 공격을 묘사할 때에는 '테러'라고 쓸 것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묘사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NYT 지침은 이스라엘이 민간인과 병원 등 민간인 보호시설을 표적·무차별 공격하는 데에 이 단어를 쓰지 않았다고 인터셉트는 짚었다.

인터셉트와 인터뷰한 복수의 NYT 직원들은 'NYT 뉴스룸이 이스라엘의 서사에 복종(deference)한다는 증거를 보여준다'고 토로했다. 한 직원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갈등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이것이 얼마나 이스라엘을 변호하는 내용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했다. NYT 측은 인터셉트에 '보도에 정확성과 일관성, 뉘앙스를 확보하기 위한 지침을 발행하는 것은 표준적 관행'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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