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 선생이 들려주는 4·19

한겨레 2024. 4. 1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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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 선생은 군사정권 때 대학에서 세번 제적되고 고문을 당했다.

"4월19일 오전 분노한 서울시민들이 탑골공원에 있는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려 광화문까지 질질 끌고 갔다. 이런 역사를 기억한다면, 다시 이승만 동상을 세우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이날 낮 학생 시위대가 "중앙청 쪽 담을 돌 때, 불우한 청소년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사람들이 돌팔매질 같은 걸 막 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면서 많이 죽었다. 오후 1시40분 무렵 경찰이 콩 볶듯이 총을 쏘기 시작한다." 4월25일에 교수들이 시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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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서중석 (1948~)

서중석 선생은 군사정권 때 대학에서 세번 제적되고 고문을 당했다. 그래도 공부를 멈추지 않아 ‘한국 현대사 1호 박사’가 됐고 성균관대 교수를 지냈다. 다음은 서중석 선생이 들려주는 4월혁명.

한국은 일찍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컸다.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보통선거 취지가 이미 1919년에 나타났다. 해방 후엔 그런 분위기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민주주의를 짓밟았다. 1960년 3월15일에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마산에서 시민들이 들고일어나자 경찰이 총을 쐈다. “‘공산당 지하 조직이 좌익 폭동을 일으켰다’는 거로 몰고 가려고 했다. 그래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세 젊은이의 시체 호주머니에다가 ‘인민공화국 만세’ ‘이승만 죽여라’ 이런 쪽지까지 집어넣었다.”

이날 마산의 학생 김주열이 최루탄에 맞아 숨졌다. 바다에 버려진 그의 주검이 4월11일에 떠올랐다. 마산의 어머니들이 들고 일어섰다. 2차 마산 의거다. “4월11일에 어머니들, 여자들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하는 사진이 있다. 그 플래카드를 보면 ‘이승만 정권 물러가라’고 쓰여 있다.”

4월18일에 대학생 시위가 시작됐다. “4월19일 오전 분노한 서울시민들이 탑골공원에 있는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려 광화문까지 질질 끌고 갔다. 이런 역사를 기억한다면, 다시 이승만 동상을 세우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이날 낮 학생 시위대가 “중앙청 쪽 담을 돌 때, 불우한 청소년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사람들이 돌팔매질 같은 걸 막 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면서 많이 죽었다. 오후 1시40분 무렵 경찰이 콩 볶듯이 총을 쏘기 시작한다.” 4월25일에 교수들이 시위를 했다. 이 시위가 “얼굴에 먹칠할 뻔한 상황인 한국의 모든 지식인을 구해줬다.” 4월26일에 이승만이 하야를 결정한다.

4월혁명의 기억은 강렬했다. 이듬해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조차 “1972년에 가서야 유신을 할 수 있었다. 4월혁명 이념을 말살하는 데 박정희 정부로서도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린 것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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