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사태의 책임과 교훈 [윤석헌 칼럼]

한겨레 2024. 4. 1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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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엘에스 사태의 책임이 금융권 전체에 있다고 본다. 우선 판매자인 은행의 책임이 큰데, 세가지로 요약된다. 고객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풋옵션의 판매, 그것도 부당한 가격으로 판매를 했다면 잘못이 크다. 면피성 사인 확보만으로 대량 판매에 나선 것이나,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한 설명 부족 등도 모두 은행 책임이다.
홍콩에이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중구 엔에이치(NH)농협은행 앞에서 집회를 열어 홍콩이엘에스 투자 원금 전액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헌 | 전 금융감독원장

은행들이 ‘홍콩에이치(H)지수 주가연계증권’(홍콩ELS) 자율배상을 서두르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실태조사 및 분쟁조정 결과를 토대로 대부분의 은행들이 투자자 손실의 20~60% 배상 비율을 적용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투자자 불만이 지속된다. 은행이 제시하는 배상 비율에 투자자가 합의하면 법적으로 화의의 효력이 생기고, 아니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번 홍콩이엘에스 사태의 발단은 은행의 비이자이익 확대 전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은 수익원 다변화를 위해 비이자이익 업무 확대에 주력했다. 그런데 고객이 필요로 하는 중개 서비스를 발굴·제공하여 수수료를 취득하기보다 금융투자 상품과 보험 상품을 은행 점포망에서 판매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특히 위험이 크고 성과 구조가 복잡한 금융투자 상품을 전문성이 부족한 은행 창구에서 판매하다 보니 불완전 판매가 발생하여 고객 손실을 초래했다.

대표적으로 2008년 키코(KIKO) 사태와 2019년 디엘에프(DLF) 사태를 거쳐 홍콩이엘에스 사태로 이어졌는데, 이들 간에 몇가지 공통점이 눈에 띈다. 첫째, 은행이 고객에게 일종의 풋옵션을 판매했다. 증권사(발행사)가 외부에서 가져온 위험을 은행(판매사)이 받아 고객에게 판매하고 수수료를 취득했는데, 그 결과 고객은 위험에 노출되었고 금융사들은 위험에서 벗어났음에도 수수료를 취득하는 모순이 발생했다. 은행이 수익 창출을 위해 고객에게 위험을 부담시킨 것인데, 금융 중개가 역방향으로 일어난 것이다. 은행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둘째, 가격의 적정성 문제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상품의 발행사와 투자자 사이에 위험과 수익에 관한 정보의 비대칭성이 공통적으로 의심된다. 키코 사태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원화 가치의 평가절하 전망, 그리고 디엘에프 사태에서는 2019년 글로벌 금리 하락세 아래 독일 국채의 마이너스 금리 전망 등에서 발행사 쪽의 우월한 정보가 의심된다. 기초자산 변동성이 높고 상품 구조가 복잡한 이번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셋째, 상품 판매가 전사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고객의 자산 상태 점검이 형식적이었고, 투자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한 설명 부족도 공통된다.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마이너스 금리가 어렵다’거나 ‘비보호지만 원금 상환이 안 된 적이 없고 무조건 나온다’는 등의 가짜 정보로 투자자를 유인했다. 특히 이번 사태에서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을 앞둔 시점에서 영업행위 준수 사항의 형식적 충족이 피해를 오히려 키웠을 가능성도 있다.

필자는 홍콩이엘에스 사태의 책임이 금융권 전체에 있다고 본다. 우선 판매자인 은행의 책임이 큰데, 앞서 지적한 세가지로 요약된다. 즉 고객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풋옵션의 판매, 그것도 부당한 가격으로 판매를 했다면 잘못이 크다. 투자 성과가 고객의 자산 상태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면피성 사인 확보만으로 대량 판매에 나선 것이나,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한 설명 부족 등도 모두 은행 책임이다.

애초 은행에 이런 고위험·고난도 상품 판매를 허가했던 금융위원회 책임도 작지 않다. 디엘에프 사태 뒤인 2019년 11월 금융위는 은행의 고위험 금융투자 상품 판매 금지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달 뒤인 12월 발표한 보도자료에서는, 업계 의견을 수렴하여 ‘투자자 보호 강화’를 약속받고 판매 허가로 물러섰다. 이러한 입장 변화는 금융산업 진흥과 금융 감독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쫓는 금융위 설립 목표에 비추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모든 부담이 투자자에게 귀착되는 상황에서 긍정적인 평가는 어렵다. 은행의 일부 고객이 고위험·고난도 상품을 원했어도 이를 직접 판매하는 대신 (계열)증권사로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키코와 디엘에프 사태를 거치고도 소비자 피해에 대해 충분한 교훈을 얻지 못했던 점도 아쉽다.

금융감독원의 부실 감독 책임을 나무라는 목소리도 높다. 미스터리 쇼핑과 소비자 경보 발령 및 상시 감시 등 사전적 감독을 통해 불완전 판매를 억제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미스터리 쇼핑은 단순한 상품의 대량 부실 판매 적발에는 적합할지 모르나 전문성이 요구되는 고위험 상품 판매 억제 효과는 의문시된다. 데이터에 의존하는 상시 감시 역시 고난도 상품의 불완전 판매 방지 효과는 제한적이다. 게다가 금감원의 점검과 감시의 강화는 인적·물적 자원 및 실효성 있는 규제 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이들은 모두 금융감독 정책 업무다.

이제 이번 사태가 국내 금융 발전에 던지는 교훈 몇가지를 살펴본다. 첫째, 은행은 홍콩이엘에스 판매로부터 수수료 수익을 올렸으나, 결과적으로 고객에게 손실을 끼친 데 대해 ‘자율배상’에 나서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고객의 자기 책임을 주장하나, 고객이 이해할 만큼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면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낮다. 여하간 은행의 고위험 금융투자상품 판매는 비이자이익 확대에는 기여했을지 모르나 고객의 신뢰 상실을 초래하여 지속가능 경영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 따라서 금소법 규정을 뛰어넘는 실질적 ‘고객 최우선 경영’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은행은 금융투자 및 방카슈랑스 상품 위탁판매 일변도의 비이자이익 전략에서 벗어나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충족시킴으로써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방향 전환이 바람직할 것이다.

둘째, 그간 금융위는 금융산업 진흥을 건전성 감독이나 소비자 보호보다 우선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해왔는데 이번 홍콩이엘에스 사태는 이런 정책 기조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무엇보다 금융산업 진흥에 따른 위험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상황에서 금융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추락하여 금융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따라서 차제에 금융산업 진흥 업무를 분리하여 기획재정부로 보내는 방식의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 ‘공룡 기재부’에 대한 비판은 예산 업무를 대통령실 산하로 옮겨 대응할 수 있다.

셋째, 금융감독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금융산업 진흥 업무를 기재부로 보낸 뒤) 금융위와 금감원의 조직 통합이 필요하다. 당분간 조직 통합이 어렵다면 현재 금융위가 보유하고 있는 금융감독규정 제·개정 제안권을 금감원에 부여하여 금융감독의 효율성과 독립성 제고에 나서야 한다.

고령화가 빠르게 지속되는 한국 경제에서 금융권이 고객 자산관리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제22대 국회의 금융개혁 추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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