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선거 때마다 ‘늑대’가 튀어나올지도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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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운씨, 지금 아산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요."
그날 오전 부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습격한 60대 남성 ㄱ씨가 충남 아산시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데, 모든 언론사가 그의 정보를 캐기 위해 아산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기자가 1월 한달 동안 아산과 강남을 뒤졌건만, 두 피의자와 범행을 공모하거나 교사한 세력은 결국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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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운 | 이슈팀 기자
“채운씨, 지금 아산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요.”
수습기자 생활이 석달째로 접어들던 지난 1월2일. 퇴근 시간을 10분 남겨두고 저녁 맛집을 찾고 있는데 선배로부터 다급히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 오전 부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습격한 60대 남성 ㄱ씨가 충남 아산시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데, 모든 언론사가 그의 정보를 캐기 위해 아산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한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할 새도 없이 급하게 회사 차에 몸을 실었다.
“채운아, 미안한데 지금 바로 강남으로 가야 할 것 같아.”
3주 동안의 아산 취재를 마치고 최종 기사를 넘긴 1월25일, 일을 마치고 회사로 들어오자마자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강남구의 한 미용실에서 중학생 ㄴ군에게 피습당했다는 속보였다. 그렇게 또 며칠을 강남 길거리를 헤매며 보냈다. 기사를 마무리하니 선배들은 내게 ‘정치인 습격 전문 기자’라는 웃지 못할 별명을 붙였다.
두 정치인 습격 사건을 현장에서 취재하며 가장 놀랐던 것은 ‘외로운 늑대’의 범행이었다는 점이다. 수많은 기자가 1월 한달 동안 아산과 강남을 뒤졌건만, 두 피의자와 범행을 공모하거나 교사한 세력은 결국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ㄱ씨가 사는 동네에서 만난 공인중개사들은 그가 20년째 동네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한 ‘터줏대감’임에도, 이웃 부동산 업자들과 거의 교류가 없었다고 했다. 강남 학원가에서 만난 ㄴ군의 중학교 동창들은 “친구가 전혀 없고, 말하는 것도 별로 보지 못한 아이”라고 말했다.
주변과 정서적 교류가 없던 이들이 선택한 방식은 고립과 몰입이었다. ㄱ씨는 늘 부동산 사무실에 틀어박혀 온라인 바둑이나 정치 유튜브를 보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ㄴ군은 정치 뉴스를 즐겨 보며 이태원 참사, 이재명 대표 법원 출석, 경복궁 낙서범 구속심사 등의 현장에 나타나곤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정치적 극단주의, 또는 소영웅주의에 심취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었다. 외신들은 “한국 정치를 물들인 분열과 증오가 강해지고 있다는 징후”라며 한국의 정치 양극화를 원인으로 짚었다.
‘이대로라면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곳곳에서 ‘늑대’들이 튀어나오겠구나.’ 투표일까지 남은 석달 동안 가장 큰 걱정은 언제 어디서 또 이런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배후 세력’이 있다면 이를 추적하면 되지만, ‘늑대’의 출몰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피습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작은 불씨들은 여전했다. 1월8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의정보고서를 빼앗고 가방을 휘두르며 욕설을 한 60대 남성이 붙잡혔고, 3월7일에는 국민의힘 원희룡 후보자 후원회장을 맡은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이천수씨가 선거운동 중 시민으로부터 폭행 및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본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양극화된 정치 지형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표심은 동서로 갈렸다. 그런데 대화와 타협으로 이를 중재해야 할 대통령은 16일 총선 뒤 첫 입장을 밝히며 “국정 방향은 옳다”고만 할 뿐, 야당과의 협치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선거 때마다 고조되는 갈등에 또 언제 ‘늑대’들이 튀어나올지 모를 일이다. 정치 과몰입, 정치 양극화는 결국 정치가 풀어야 하지 않을까.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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