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하나로 '아메리칸 드림'…늦깎이 테너, 뉴욕 사로잡다

최다은 2024. 4. 1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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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표 위의 사람들
뉴욕 메트오페라 달군 테너 백석종
30대 늦은 나이에 음역대 다른
바리톤에서 테너로 새로운 도전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실력 쌓아
2022년 런던 로열오페라 데뷔
연초 뉴욕 메트오페라 주연 발탁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제공


‘목소리 하나로 기적을 만든 사람.’

테너 백석종(38)을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4년 전 바리톤에서 테너로 전향한 그는 음악가들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 이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MET)에 잇따라 주연으로 발탁되며 화제를 모았다.

백석종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유명 무대에 서는 성악가여서가 아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재능이 반짝이는 영재도 아니었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않았다. 30대의 늦은 나이에 음역대가 다른 바리톤에서 테너로 길을 바꾸기까지 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그는 오직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실력을 쌓았고, 기회를 잡아 지금의 자리에 왔다. ‘개천에서 난 용’이 사라진 시대, 그의 스토리가 한층 특별한 이유다. 유럽 순회 연주 준비로 분주한 백석종을 이메일로 만났다. 그의 글에는 ‘믿음’ ‘꿈’ 같은 단어가 빈번히 등장했다.


▷올해 초 뉴욕 MET에 테너로 데뷔했습니다. 현지 반응은 매우 뜨거웠고요. (MET로부터) 캐스팅을 제안받았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생각했죠. 2022년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대타로 ‘삼손과 데릴라’ 무대에 서게 된 것도 운이 좋았는데, 그때 MET 캐스팅 디렉터가 영국 출장을 와서 제 무대를 보게 됐어요. 정말 운이 좋았죠. 특히 투란도트 칼라프 역은 제가 늘 꿈꿔오던 역할이에요. 세계 최고의 극장에서 제가 꿈꾸던 역할을 할 수 있다니…. 다른 말이 필요 있나요, 행복했죠.”

그가 테너로 전향하게 된 건 학창 시절, 바리톤이 낼 수 없는 고음이 나기 시작하면서였다. 홀로 성부 전향을 고민했지만 모두가 ‘너는 바리톤’이라고 했다. 그러던 중 선배 테너 이용훈의 조언이 그의 고민을 확신으로 바꿨고, 그는 테너의 길을 걷기 위해 다니던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극장을 관뒀다.

▷바리톤으로 쌓아온 안정된 커리어를 이어가는 대신 모험을 택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도전을 할 수 있었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팬데믹 기간에 소리를 다질 시간이 있었어요. 샌프란시스코 한인 교회 예배당에서 매일 연습하며 소리에 집중했어요. 1년6개월 정도 하니까 원하는 테너의 소리를 찾을 수 있었고, 고음을 내는 부담도 없어졌습니다. 제가 원하는 정확한 소리와 발성이 있었고, 그걸 스스로 공부했습니다. 이후 콩쿠르에서 잇따라 좋은 성적을 내면서 데뷔의 기회도 찾아왔죠.”

‘아메리칸 드림’은 그와 어울리는 단어다. 한국에서 전주예고와 추계예술대를 다니다 자퇴한 그는 한국 클래식계에서 주류가 될 수 있는 스펙과는 거리가 있었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더 많은 배움과 기회를 얻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간에 한국에 돌아와야 했지만, 그럼에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맨해튼이라는 도시에서 얻을 수많은 기회 때문이었다.

▷뉴욕에 10년 넘게 살았습니다. 뉴욕이란 당신에게 어떤 도시인가요.

“2010년부터 맨해튼 음대에서 학·석사를 했어요. 뉴욕은 꿈과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분야에서 최고들이 뉴욕에 모이지요. 기회를 찾으면 그만큼 구할 수 있는 곳이라고 봅니다. 이런 환경과 기회에 감사하고 좋은 결과를 낸다면 뉴욕에 있는 한인 음악가들, 동양인 음악가들에 대한 시선도 바뀌고 기회도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투란도트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요즘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지금은 제가 하는 투란도트 ‘칼라프’ 역을 마스터하는 게 목표예요. 제 트레이드 마크가 될 때까지 더 갈고 닦으려고 해요. 다음으로는 베르디의 작품들과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사실주의 오페라)에 도전하고 싶어요.”

그는 후배 음악가들에게 “길게 봐야 한다”고 줄곧 이야기해 왔다. 굳은 믿음을 바탕으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신념을 그는 강조했다.

▷세상에는 음악, 특히 오페라 외에 즐길 것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오페라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더 많은 가수가 크고 작은 프로젝트로 노래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연스럽게 대중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경험도 중요합니다. 오페라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극장에 오셔서 경험해봐야 압니다. 영상과 스피커 소리가 아니라 직접 극장에서 라이브 소리와 무대 경험을 하면 오페라가 다르게 보이실 겁니다.”

▷한국 무대에서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향후 3~4년 스케줄이 모두 차 있습니다. 아직은 계획이 없지만 한국 데뷔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훨씬 더 성장하도록 하겠습니다.”

최다은 문화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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