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착화되는 고물가…대내외 변수에 사실상 물건너간 ‘3월 정점’ 전망

안광호 기자 2024. 4. 1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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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고객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경제의 고물가 현상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갈수록 심해지는데다 고환율·고금리 등에 따른 생산비용 압박이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해소될 현상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최근 흐름을 봐선 정부의 ‘3월 정점, 하반기 2%대 초중반 안정화’라는 물가 전망은 사실상 물건너가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고물가 고통이 상대적으로 크게 와닿는 취약계층에 대한 재정 지원을 늘리고, 농산물 등 생산성 안정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유가에 고환율…거세지는 물가 압박

3월 소비자물가지수가 1년 전보다 3.1% 오르며 두달 연속 3%대를 기록했다는 통계청 발표가 나온 지난 2일에도 정부는 향후 물가 추이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내놨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같은 날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3월에 연간 물가의 정점을 찍고 하반기로 갈수록 빠르게 안정화될 것”이라고 했다. 주요국 대비 낮은 2%대(2.4%)의 근원물가(에너지·식품 제외), 기상여건 개선, 기저효과 등을 감안한 전망이다. 지난해 8~10월 물가는 3.4~3.8%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흐름은 정부 전망과 어긋나고 있다. 국제유가와 환율이 올라 공급측 상방 압력이 커지면서 먹거리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쳐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지난 2월 배럴당 80달러 수준에서 최근엔 90달러 선에서 횡보하고 있다. 중동위기가 고조되고 국제원유 주요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배럴당 최고 13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 고유가는 2~3주 시차를 두고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끌어올리는데, 기업의 비용 상승을 가중시키고 부진한 내수 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 환율 상승으로 수입물가도 계속 오르는 중이다. 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이어지고 미국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강달러 현상이 단기간 해소되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무엇보다 전세계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극한 날씨로 농작물 생산이 감소해 먹거리 물가가 오르는 기후플레이션이 현실화하고 있다. 커피와 카카오, 설탕, 올리브유 할 것 없이 극한기후 때문에 주산지 작황이 부진해지면서 글로벌 가격이 치솟아 식탁 물가를 위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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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대란 등 부실한 정부 대응도 한 몫

상황이 심각하지만 정부 대응은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사과 대란’이 대표적이다. 사과 냉해 피해는 2018년 이후 매년 반복되고 있다. 그럼에도 냉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상팬(송풍기) 등 재해 예방시설 보급률은 전국적으로 2%에 그치고, 올해는 관련 예산을 편성조차 하지 않았다. 과일가격을 낮추려는 목적의 납품단가 지원 등은 오히려 소비 수요를 부추겼다. 윤병선 건국대 경제통상학과 교수는 “언제 어디서나 품목에 관계없이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쿠폰 지급을 늘렸다면 소비 수요를 줄이면서 지원 효과를 높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연간 물가 전망치는 수정이 불가피해보인다. 올 1~2월 주요 기관들이 전망한 물가 수준은 정부와 한국은행이 2.6%, 한국개발연구원(KDI) 2.5% 등이다. 당초 정부와 KDI는 배럴당 81달러(두바이산)를 기준으로 전망했는데, 최근 국제유가 수준은 90달러 안팎으로 오른 상태다.

물가당국인 한국은행 입장도 정부 전망과 결이 다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예상한 하반기 월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인데, (유가 등 영향으로) 이 경로보다 높아지면 하반기 (금리) 인하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시장에선 여름까지 3%대 물가 상승률을 보이다 4분기 들어서야 2%대 후반에 안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2월 전망) 당시와 비교해 유가가 많이 올라 물가 상방 압력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고유가 영향이 국내 다른 품목으로 확대되고 있는데, 5월에 (새로운) 물가 전망치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물가에 취약한 계층 지원과 농산물 생산성 안정화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고물가에 고통받는 영세 자영업자와 취약계층에 대해 세제 지원이나 부채 상환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병선 교수는 “농산물 수입 물량을 늘리는 방식의 땜질식 처방보다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농가 생산성 안정화에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 고물가·고환율·고금리에 중동발 위기까지···‘3고’에 갇힌 한국 경제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2404151704001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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