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열린 또 하나의 창 [나는 왜 NGO]

한겨레 2024. 4. 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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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포영화, 특히 오컬트 장르를 좋아한다.

코로나19가 '내 탓'이라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알게 된 게 어딘가?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내 역할을 탐색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 시간을 잘 보내면 에정연을 아끼는 분들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고, 에정연에서 이어갈 나의 삶이 더욱 단단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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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깃발. 필자 제공

홍소영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지원팀장

나는 공포영화, 특히 오컬트 장르를 좋아한다. 반면 남편은 로맨틱한 영화를 좋아한다. 이런 우리가 공통으로 꼽는 가장 무서운 영화가 있다. ‘인터스텔라’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먼지와 옥수수로 가득한 세상, 그런 세상이 정말 올 것 같아서다.

그때부터 텀블러를 가지고 다녔고, 내가 일하던 센터에서는 홍보물을 만들 때 가급적 재생용지, 콩기름 잉크를 사용했다. 사용하던 현수막을 모아 카드지갑을 만들어 기념품으로 재사용했다. 그렇지만 환경이나 기후가 나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었다.

내 관심사에 기후 이슈가 들어오게 된 계기는 코로나19 바이러스였다. 코로나19가 한창 위세를 떨치던 시기, 세상은 멈춰 섰다. 일자리 양극화는 점점 심화됐고, 취약한 사회안전망의 민얼굴이 드러났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원인이 기후 변화라니. 기후 변화에 인한 위기는 생각보다 너무 깊고 빠르게 내 삶에 들어왔다. 그 무렵 한 강좌를 들었는데 주제가 바로 ‘기후 위기와 노동’이었다. 인터스텔라를 소개하며, 가장 현실성 있는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강의를 듣고 나서 한동안 침울한 시기를 보냈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사용해도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니. 남편과 매해 한 번씩 해외여행을 다녔는데 비행기의 탄소 배출량이 운송수단 중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니. 경유차를 타는데 왜 전기차를 선택하지 못했을까. 코로나19가 ‘내 탓’이라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른 시일 내에 탄소 배출량을 효과적으로 줄이려면 에너지·제조 산업의 축소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발전량의 약 40%에 이르는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면 그곳 노동자들은 어디로 가지? 자동차 산업에 연결된 원자재, 제조업, 서비스업과 같은 거대한 산업망에 속한 노동자들은? 이건 텀블러나 에코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왜 대선 토론회에서 기후 문제가 이렇게 가볍게 다뤄지는 거지? 물음표가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죄책감과 의구심으로 가득 찬 내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정연)의 활동가 모집 공고는 기회처럼 다가왔다. 보다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창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에정연은 기후에너지 분야에서 꽤 오래 활동한 연구소다. 에정연에서 활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한 지인들은 한결같이 ‘너 같은 기후 초보가 어떻게?’라며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인다. 난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어’라는 표정으로 화답한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알게 된 게 어딘가?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내 역할을 탐색하는 중이다.

지금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일은 6월에 열릴 15주년 후원행사 준비다. 직전 후원행사가 2019년이었으니, 5년 만에 열리게 된 거다. 컴백 무대를 준비하는 기분이다. 그동안 에정연의 존재가 잊힌 건 아닌지, 아니면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에정연다운’ 행사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지만, 솔직히 이제 갓 1년을 넘긴 내게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 시간을 잘 보내면 에정연을 아끼는 분들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고, 에정연에서 이어갈 나의 삶이 더욱 단단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각자도생의 시대 나는 왜 공익활동의 길을 선택했고, 무슨 일을 하며 어떤 보람을 느끼고 있는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투고(opinion@hani.co.kr)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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