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수급자 가족, ‘24시간 돌봄’ 유지 위해 쉴 틈 없어

서울앤 2024. 4. 1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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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진 사회복지사와 함께하는 ‘재가요양’ ④ 치매 어르신의 재가요양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치매등급 어르신, 겉보기엔 멀쩡해도

외출 뒤 집에 못 돌아오는 사례들 발생

가족들, 개인희생 속 ‘치매와 무한전쟁’

치매수급자 보호자, ‘연 10일 휴가’ 보장

단기보호시설 부족 등으로 효과 미미

재가요양 중인 어르신 가운데 외견상 멀쩡해 보이고 걸어 다니는 데도 거의 문제없지만, 인지능력이 떨어져서 일상생활을 자신의 힘으로 꾸려나갈 수 없는 분들이 있다. 이른바 ‘치매등급’으로 불리는 5등급과 인지지원등급(6등급)을 받은 어르신들이 그렇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현재 노인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고 집이나 요양원에서 요양 중인 110만2012명 가운데 5등급은 12만3364명, 6등급은 2만5512명을 차지하고 있다.

ㅂ어르신(74, 마포구)은 5년 전 지방의 도시에서 살 때 치매 증상으로 5등급 판정을 받았다. 든든하게 의지했던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자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게 주원인이었다.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지 못한 채 방황하는 일이 생기자 맏아들은 결단을 내렸다. 자신이 직장생활을 하는 서울로 어머니를 모셔왔다. 그때부터 맏아들은 치매와의 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ㅂ어르신은 요즘 하루하루 빠듯하게 짜인 일정을 보내고 있다. 평일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맏아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한 뒤 오전 8시까지 주야간보호센터(데이케어)에 간다. 동료 어르신들과 함께 노래 부르기, 물건 보며 회상하기, 그림 그리기, 맨손체조 등 인지자극훈련을 받으면서 오후 5시까지 지낸다. 귀가하면 요양보호사와 저녁식사를 하는 등 방문요양서비스가 3시간가량 이어진다.

맏아들은 늦어도 밤 9시30분까지는 귀가해서 요양보호사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물어보는 등 말벗 역할을 한 뒤 어머니 곁에서 수면을 취한다. 주말에는 외부 약속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어머니와 함께 보낸다. 재래시장에 모시고 가기도 하는데, 조금만 한눈팔아도 사라지기 십상이어서 어머니 손목에 묶어놓은 끈을 놓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운다.

맏아들은 어머니의 기억력과 인지능력을 조금이라도 향상하고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치매환자에게는 정기적인 병원 진료를 통한 약물치료 못지않게 사회적 관계 맺기와 신체활동을 활발하게 유지해주는 게 매우 효과적이라는 정신의학계의 권고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다.

맏아들은 어머니를 위한 24시간 돌봄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사회생활을 상당 부분 포기하는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부담을 안고 있다. ㅂ어르신은 현재 4등급인데 월한도액이 134만원으로 5등급에 비해 조금 늘어났다. 하지만 이 금액에서 평일에 꼬박꼬박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제외하면 남는 게 수십만원에 불과하다. 평일 저녁시간에 매일 3~4시간씩 이용하는 방문요양서비스는 상당 부분 100% 자부담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ㄷ어르신(88,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은 치매 증상과 함께 걸을 때 부축이 필요할 정도로 보행능력이 떨어져 2019년 11월 4등급을 받았지만, 지난해 초 등급을 갱신할 때 5등급으로 한 등급 내려갔다.

건강이 호전돼 요양등급이 내려가는 일은 흔치 않다. ㄷ어르신은 둘째 아들(64)의 헌신적인 돌봄을 받고 있다. 평소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 아버지가 갑자기 별세하자, 둘째 아들이 자신의 자영업을 접고 어머니를 돌보는 일에 전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2022년부터는 서울과 인접한 그린벨트 지역에 있는 텃밭 딸린 단독주택을 마련한 뒤 그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요양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은 물론 2023년도에 어머니가 5등급으로 내려가자 치매 교육도 별도로 받았다. 5등급일 경우에는 인지활동형 방문요양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춰야 가족요양사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아들은 어머니의 어린 시절 농촌과 같은 편안한 거주환경에서 어머니와 함께 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다. 원예치료 같은 효과를 겨냥한 듯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어머니를 차에 태우고 강화도 등 인근 지역으로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한다. 제철 음식을 손수 만들어드리기 위해 근처 농수산물 종합시장을 적극 활용한다.

두 가지 사례 가운데 ㅂ어르신은 60대 말의 이른 나이에 갑자기 치매가 발병해 진행 속도가 빠른 편이고, ㄷ어르신은 80대 중반을 앞두고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주변 환경이 극적으로 크게 개선된 데 힘입어 느리게 진행되는 것 같다.

4~5등급 치매 어르신들은 신체활동 능력이 일반인 못지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길을 잃고 배회할 수 있고, 단기기억소실증으로 가스레인지 불을 켜는 등 자신이 방금 한 일을 잊어버려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두 어르신처럼 24시간 밀착 돌봄을 해야 한다.

장기요양 가족휴가제 ‘낙타 바늘구멍 지나가기’

치매 또는 중증 어르신을 가정에서 돌보는 보호자들은 단 하루라도 24시간 연속해서 휴식을 취할 수 없다. 주야간보호센터와 방문요양을 이용하는 평일 낮시간대에는 휴식도 취하고 개인적인 활동도 할 수 있으나, 평일 밤시간대와 주말에는 전적으로 보호자가 책임져야 한다. 취업 중이거나 자영업에 종사하는 보호자들은 평일 낮시간대에도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부터 1·2등급 수급자를 돌보는 가족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명칭도 ‘치매가족 휴가제’에서 ‘장기요양 가족휴가제’로 바꿔서 치매 및 중증 수급자의 가족이 연간 10일 이내에서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연간 10일 이내에서 단기보호급여를 이용하거나, 1회당 12시간인 종일방문요양급여(2회 이용시 1일로 산정)를 20회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놓았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단기보호시설은 지난 1월 말 현재 전국에 115개뿐이어서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단기보호시설은 운영이 쉽지 않기 때문에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치매 수급자의 가족들은 종일방문요양급여 쪽에 노크하지만 조건이 까다로워서 포기하기 일쑤다. 종일방문요양급여는 방문요양과 함께 방문간호 또는 주야간보호를 제공하는 재가급여기관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종일방문급여를 제공 중인 시간대에 간호(조무)사가 1회 이상 수급자 가정을 방문해 수급자 상태 확인과 요양사의 급여제공 내용을 지도 감독하고 업무수행 내용, 방문일시 등을 작성해야 한다.

방문간호 기관은 전국에 828곳에 불과하고, 욕창 관리 등 방문간호 고유 업무에 주력하고 있다. 주야간보호기관은 전국에 5227개가 있지만 대부분 방문요양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장기요양 가족휴가제의 가장 큰 장벽은 치매 보호자가 휴가를 간 사이에 입주 간병인처럼 돌봐줄 요양사를 구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보호자 없이 치매 수급자를 여러 날에 걸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보는 일에 선뜻 나설 요양사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1·2등급 수급자와 3·4·5등급 치매 수급자들은 대부분 1만여 개에 이르는 방문요양 전문 재가기관에서 방문요양서비스를 받기 때문에 가족휴가제를 위해 방문간호센터나 주야간보호센터를 일시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치매나 중증 수급자의 보호자가 휴가로 부재한 사이에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휴가제의 규정을 엄격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가요양업계는 치매 수급자 가족이 휴가 중 안심하고 치매 수급자를 맡길 수 있는 단기보호시설을 대폭 확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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